나의 아버지는 4년 넘게 요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그 전까지는 어머니께서 간병하셨다. 어느 날 마당에서 운동 삼아 천천히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아버지의 대퇴골이 골절되었다. 그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했는데, 그 후 두 달간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다 그답 못 일어나셨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였다.그 후 나는 아버지의 요양원을 찾아 충남, 경기, 서울까지 안 가본 곳 없이 다녔다. 그때만 해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되기 전이라 요양원마다 비용이 천차만별이었고, 시설 또한 다 달라 직접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여러 면에서 낭
아랫글은 예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글이다.유비가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뵈러 길을 가고 있었다. 얼마를 가니 제법 넓은 개울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배도 사공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유비는 신을 벗고 바지를 걷은 채 물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물은 매우 차가웠고, 또 꽤 깊었다.유비가 겨우 물을 건넜을 때, 뒤쪽에서 어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거기 귀 큰 놈아! 나를 건네 주어야지. 사공도 없는데 어떻게 건너란 말이냐.”마치 유비가 배를 없애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유비는 갈 길도 멀고, 노인의
우리가 북극성을 바라봄은북극성에 가려고 해서가 아니다잃은 길을 되찾아우리의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다틱낫한 스님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베트남 출신 스님이다. 나는 스님의 강의를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불교의 진수를 몸으로 체득하여 그것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전하는 데 놀랐다. 깊은 명상에서 우러나온 말씀과 발걸음 하나하나에서 오랜 수행자로서의 사랑과 평화를 실현하려는 그분의 뜻이 전해져 왔다. 나는 강의를 듣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의 책 몇 권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그분이 쓰신 책에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시대 사람을 등용하는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다. 원래 이 말은 중국 당나라의 과거제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요즘엔 이 말을 별로 하지도 않고 사람을 판별하는데 더이상 기준이 되지도 않지만, 의미하는 바는 크다.신(身)은 몸이다. 그 사람의 외모와 외모에서 풍기는 풍채를 말한다. 요즘에는 외모가 다 잘생겼고 쭉쭉빵빵에 S라인 몸매이니 더 말할 게 없겠다. 다만 성형을 너무 해서 자기만의 개성 있는 외모를 찾기 어려우니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
하늘이 담뿍 잿빛으로 흐리다. 바람이 먹구름을 정처없이 몰아간다. 저 구름 지나는 곳에 비가 올 것이다. 바람이 구름을 몰아가듯 마음이 우리를 몰아간다. 인간의 오욕칠정도 가만 들여다보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백 가지 작용이 아니겠는가.그렇다면 대체 마음의 작용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생각을 감았다 푸는 사이 내가 만난 사람이 시몬느 베이유였다. 그는 이미 내가 품은 의문을 앞서 했으며, 명쾌한 통찰력으로 그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었다. 마음 작용도 사물의 작용과 다르지 않다. 풍선을 예로 들어보자. 바람이 들어 있는 풍선을 한쪽에서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낸시 벤뱅가가 쓰고 문종원이 옮긴 ‘학대받는 아이에서 학대하는 어른으로’라는 책이다. 책은 잘 팔리지 않으면 얼마 못 가 품절되거나 절판된다. 좋은 책인데도 구하려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폭력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책 제목대로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커서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고 한다. 그럴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일곱 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기계의 발명으로 시작됐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후 인류의 삶은 기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처음 인간에 의해 통제되던 기계는 이제 자기 뜻대로 현실을 개조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오늘날 기계는 단순히 어디에 사용되는 기계가 아닌 ‘기계문명’을 이루고 있다. 도시도 기계도시이고 시골도 기계시골이 되었다. 기계 사이에 사람이 끼어 생존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문명의 발달이란 곧 자연의 유기적인 것이 인공의 기계적인 것으로 재조립되는 과정이었다. 시골 부엌에서 다홍빛 불
마하트마 간디는 “단순함이 진보”라고 했다. 여기서 진보는 단순히 정치경제학적 차원의 개념은 아닌 듯하다. 그런 면을 포함한 인간 삶의 전체적인 문제를 통틀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단순함은 복잡함의 반대로 단순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 한두 가지에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함으로써, 정신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산만하지 않고 핵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단순함의 추구는 우리의 생명력을 키워주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 단순함은 실제 생활뿐만 아니라 영혼에서도 추구되어야 할 가치이다.삶이 단순할 때
인상파 화가 가운데 프랑스의 르누아르가 있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밝은 빛 속에 펼쳐진 대자연을 즐겨 그린 데 비해, 르누아르는 밝고 따뜻한 색조를 바탕으로 주로 인물 특히 여성과 아이를 많이 그렸다.우리에게 익숙한 ‘책 읽는 소녀’ 같은 그림이 대표적인데, 그가 그린 작품의 주된 메시지는 ‘행복’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는 밝고 따듯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넘쳐난다. 그는 삶이 비록 우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그림만은 밝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평소의 예술철학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그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손가락뼈가 녹
이반 일리치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내가 그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다. ‘학교 없는 사회’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에서 일리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의 가장 기본적 기능인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권위적이고 지식으로 무장한 교사가 그러지 못한 학생(민중)에게 지배이데올로기를 일방적이고 억압적으로 가르침(주입함)으로써, 그것이 사회의 불평등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했다.그러다 어느 글에선가 이반 일리치가 암에 걸려 뺨에 혹이 났는데, 그것이 처음엔 작았다가 나중에 점점 커져 목까지 뒤덮어 그렇게 거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 알 것 같은데, 말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 나훈아 씨의 노래 가운데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때 사랑은 남녀 간에 하는 연애 정도 되겠다. 사랑은 물론 연애를 포함한다. 그러나 연애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란 뭘까?에리히 프롬은 ‘소유와 존재’라는 책에서 인간의 생존 양식을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으로 구분한다. 소유 양식이란 재산 지식 사회적 지위 권력 등 소유에 전념하는 것이고, 존재 양식은 자기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여 삶의
허먼 멜빌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 ‘모비딕’이 있다. ‘백경(白鯨)’이라는 제목으로도 번역됐는데, 흰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물어뜯긴 에이하브 선장이 악착같이 모비딕을 추격해 사흘간이나 사투를 벌이지만 패배한다는 내용이다. 허먼 멜빌은 사후에 재평가돼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지위에 올랐지만 생전에는 불행했다. 그의 대표작인 모비딕이 평생 3천 부도 안 팔렸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전혀 예외라 할 소설을 썼는데 그게 바로 ‘필경사 바틀비’이다. 지난 1853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당시 미국 금융경제
한국을 대표하는 수묵화가 소산(小山) 박대성은 어려서 팔을 하나 잃었다. 박 화백은 1945년 경북 청도 출생이다. 박 화백이 다섯 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박 화백의 아버지는 한의사였는데, 반동 지주로 몰려 인민군이 휘두른 낫에 찔려 숨지고, 박 화백은 그때 왼쪽 팔을 잃었다. 그 후 고초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학교 가는 길이 괴로웠다. 아이들이 그를 향해 돌을 던지고 괴롭혔다.박 화백은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박 화백의 학력은 그게 다다. 청도의 자연과 화집을 스승 삼아,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율성’이 아닐까? 생명 다음으로라는 말이 있지만, 어쩌면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게 자율성일 것이다. 자율성이란 외부의 강압과 제약을 이기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곧 누구의 힘이나 요구, 사상이나 이념 심지어 종교에조차 매이지 않고 자기 삶을 오롯이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올은 이러한 사람을 ‘단독자(單獨子)’라고 했는데, 이는 신 앞에서마저 ‘홀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율성을 실현하는 사람을 말한다.자율성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내 힘의 80%까지만 써서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해도 그렇다. 팔굽혀펴기 백 개를 해야겠다 하면 80개 정도만 한다. 글도 마찬가지. 오늘 20매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15매 정도에서 그친다. 더 할 수 있는 힘이 남았어도 그 정도 선에서 멈춘다. 일상의 거의 모든 일에서 나는 이 ‘80% 철학’을 지키려 하고 있다. 오늘 못한 나머지 20%는 다음으로 미뤄 둔다.80%의 철학이 내 삶의 기본 철학이다. 그렇다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아니다. 오늘 할 일은 오늘 한다. 꾸준히 지속해서
이야기 잘 하는 연인은 안 헤어진다이야기 잘 하는 부부는 이혼 안 한다풀을 뽑아보라줄기가 끊길망정뽑히지 않는 것은풀뿌리에게흙과 나누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풀뿌리의 생명은흙과 하는 이야기매일 소곤대는 너와 나의사소한 이야기가우리 사이 오래 시들지 않게 한다매일 소곤대는 너와 나의사소한 이야기가우리 사이 오래 시들지 않게 한다전 세계의 인구가 약 75억 명이라고 합니다. 이 75억 명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뭘까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이야기가
사랑폭풍이 치면어부들은 말뚝에배를 묶어 맨다 그제야 배는 안심한다자기를 위해 밤새 싸워줄줄이 있으므로.-----------------------------------------시가 참 쉽죠? 어려운 데가 하나도 없어요. 폭풍이 치면 배가 난파되지 않도록 배를 줄로 묶어 맨다는 내용입니다. 참 시시하다, 싱겁다, 이런 것도 시인가?, 할 정도로 쉬운 시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사랑’이에요. 왜 제목이 ‘폭풍’, ‘배’, ‘줄’ 같은 것이 아니고 시인은 사랑이라고 했을까요?사랑에는 여러 의미가 있어요. 우리는 흔히 사랑하면 ‘연애감정’
집 뒤 산에 올랐다가 아는 이를 만났다. 전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이다. 나는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그가 나를 용케 알아봤다. 반갑게 악수하고 바위너설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는 지난해 퇴직했다. 32년 동안 근무한 학교를 떠난 지 7개월째라고 했다.“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심심한 거지, 뭐.”애써 웃음 짓는 그의 얼굴에 주름이 자잘했다. 50대 후반, 세월이 지나가며 새겨놓은 눈금이었다.“다른 건 다 좋은데, 이놈의 심심한 건 정말 참기 어려워.”그는 나와 이야기하는 동안 심심하다는 말을 여덟 번이나 했다. 돈은
나는 나의 일상생활이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만 같다. 은행에 가 일을 보고, 약속 모임에 나가고, 운전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마지못해 나도 따라하는 것 같다. 생활에 실체감이 안 든다는 말이다. 두 발이 땅에 야무지게 닿아 대지를 짱짱하게 딛고 서 있는 느낌이 아니라, 다리에 긴 의족을 달아 공중에 붕 떠서 어기적어기적 걷는 느낌이다.그렇게 남들 뒤나 쫓아다니며 흉내 내듯 살다 보니 생활이 엉성하고 불에 닿은 개가죽처럼 오그라들 수밖에 없다. 나는 생활인으로 최소한 자격 미달이 되지 않는 선에서, 남이 하니까 그 뒤나 열
나는 마음속으로 아끼는 그 무엇에 대해서는 겉으로 표나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도 그렇고 책 같은 것도 그렇다. 사람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이건 진국이다’ 싶은 것은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고 지낼 때가 많다.대학 2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은 책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책이 진국이었다는 느낌만은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가끔 ‘마르틴 부버는 지금 뭐할까? 그 후 다른 책은 안 썼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식으로 그와의 관계를 30년 이상 지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