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의 유래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걸까요? ‘작은 케이크’를 뜻하는 쿠오레(cuore)입니다.버터를 녹이고 설탕을 크림상태로 만들어 밀가루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갑니다. 버터를 넣지 않고 설탕과 밀가루, 그리고 베이킹소다가 들어간 과자는 비스켓이라고 합니다. 쿠키에는 발효 과정이 없기 때문에 이스트를 넣지는 않습니다. 베이킹파우더, 소다는 부피를 키우지만 이것은 발효가 아니라 굽는 과정에서 가스를 발생시켜 부피를 키우는 것입니다. 덕분에 효모 냄새가 쿰쿰하게 나는 일은 없습니다.말이라는 것이 여기저기 퍼지고 발전하면서 나라마다 이름과
홍차의 단짝인 스콘을 넘어 오늘의 주인공은 샌드위치(sandwich)입니다. 이제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즐기는 간식이자 주식이 되었습니다.샌드위치의 시작을 살펴보면 영국의 샌드위치라는 항구 도시에 해군 제독이었던 존 몬터규 일가로 들어서야 합니다. 몬터규 제독은 샌드위치 백작이라는 작위도 가지고 있었고 주요한 항구의 제독으로서 눈코 뜰새 없는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취미생활이 있었으니 바로 카드게임이었습니다. 시간은 없고 놀이는 해야 해서 식사할 시간을 자주 잊었다고 하지요. 식사는 거르더라도 카드게임을
홍차는 스스로의 향기만으로도 그윽합니다. 그럼에도 여러가지 과일과 향신료를 첨가하여 다양한 변주를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점차 다양해지는 홍차의 풍미는 홍차를 즐기는 가장 큰 매력일 것입니다.하지만 홍차는 매우 예민하여 양 조절과 시간 조절에 실패하면 쓰고 떫어집니다. 때론 쓴 맛이 홍차의 맛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커피는 커피만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티는 티푸드와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홍차용 티 푸드는 식사와 식사 사이에 즐기는 음식으로 적당한 것을 선택하게 되는데 나라마다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보통 스콘, 샌드위치, 마들
차를 주문해서 설명을 읽어보면 아는 것이 없어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비싼 차가 좋은 것인가 생각하곤 하죠. 아주 간단하게 구분하는 법이 있어 영어와 함께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홀 리프(Whole leaf)은 온전한 잎이 말려있다는 뜻입니다. 기문홍차와 정산소종홍차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차나무의 새 순을 팁(Tip)이라고 하는데 솜털이 아직 붙어있기 때문에 골든팁, 실버팁, 골든실버, 플라워리실버라고 부릅니다.최상품의 차로 인정되며 매우 섬세한 맛을 자랑합니다. 차를 우려서 마실 때 솜털은 차와 함께
“티백(Tea bag)으로 된 홍차는 나쁜가요?”가장 많은 질문입니다. 먼저 티백이 생긴 것은 귀한 차를 비단주머니에 포장지 삼아서 보냈더니 그것을 그냥 우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시작입니다. 주머니째 포트에 넣었더니 거름망도 필요없이 간편하게 차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국의 수입상 토모스 설리번은 티백을 만들어 대박을 칩니다.그러나 티백 안이 좁다보니 찻잎이 활동력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맛있는 차가 덜 우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미 머그컵에 간편하게 먹는 습관이 들어버렸고 티백으로도 진한 차를 우리는 방법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영국에서 오후 2~4시 사이에 벌이는 티 파티입니다. 출출하고 심심해져 나른한 오후에 밥 먹자니 그렇고, 안먹자니 서운한 그 틈에 벌이는 거죠. 여성들의 귀족문화였습니다.애프터눈 티의 시작은 1841년 베드포드 가문의 안나 마리아 공작 부인(1783∼1857)으로부터였습니다. 그 당시 영국인들은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 식사만 했는데 저녁식사 전 늦은 오후에 허기는 참을 수가 없어 오후 3시와 5시 사이에 샌드위치나 구운 과자와 함께 차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초대했다고 합니다.이것이 영국 귀
한국에서 홍차를 접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가끔 장거리 비행을 하면 비행기 안에서 ‘커피 or 티(차)’ 라고 하면서 서빙을 해줄 때 커피는 마셨으니까 티(차)를 주문하면서 접하게 되죠. 하지만 그 쓴 맛에 당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 그렇게 쓴 홍차를 왜 영국사람들은 즐기는 걸까요? 분명 좋기 때문입니다. 차도 분명 맛이 있을겁니다.차를 맛있게 드시려면 우리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물입니다. 보통 차 하시는 분들이 삼다수를 즐겨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물이 연수에 가깝고 유럽은 경수에 가까운데 둘다 장·단점은
동방미인은 대만의 대표적인 우롱차입니다. 차를 발효시키는 정도에 따라 백차, 녹차, 청차, 황차, 홍차, 흑차로 나눕니다. 우롱차는 청차에 속합니다. 차라는것이 의외로 다양합니다.대만에서는 동방미인을 팽풍차(膨風茶)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뻥쟁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봄에 찻잎을 따서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동방미인은 특이하게도 여름에 만듭니다. 여름에는 잎도 커지고 벌레도 생겨서 차를 만든다는 게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 느껴져서 뻥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방미인은 실제 여름에 잎을 따서 만듭니다.그 맛은 어떨까요? 짤막하게 말하
대학만 졸업해도 취업이 되던 시절을 넘어 이제는 유려한 전공과 자격증으로도 취업이 어렵다. 일하고 싶어서 오늘도 동분서주하는 이땅의 젊은이에게 보내는 글이다.취업은 이순신에게도 어려웠다. 20살까지 문과시험을 준비한 이순신은 결혼을 하면서 장인어른과 같은 무과로 전향한다. 이 과정이 문과 준비생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무과를 28살에 처음 보았으니 기초체력 훈련이 되어있을 리가 없다. 보통 무과 시험은 직업 군인이 승진하기 위해 보기 때문에 일반인인 이순신이 쉽게 도전하기는 어려웠던것 같다.첫 시험에서 말에서 떨어져 기
[금강일보] 40년도 넘은 빈집에 기억을 잃고 식물처럼 누워계시는 아버지, 기억의 50%도 남지 않으신 어머니, 이제 퇴직을 한 환갑의 큰딸, 사고로 아들을 잃고 넋을 놓은 작은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온가족을 피말리고 설날에 하늘로 간 외아들, 하는 일이 재미없다는 셋째딸, 그리고 막내딸이 무언가 해보기로합니다. 벽지랑 등만 바꾸고 사람이 오거나 말거나 이공간에 찻집을 내보자고 맘을 먹었답니다. '비만 안 새면 되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비어버린 친정집을 정리하다가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80대 중반 어느날 혼자
[금강일보] 아버지가 코마 상태에 빠지셨고 나는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국가는 치매와 중증환자에 대한 혜택을 늘려 다행히 병원비가 무겁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길게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요? 빵집에 왔다가 아버지 생각이 겹칩니다.어느날 집에 빵이 두 개 남아있었는데 그건 내것이었습니다. 소화력이 바닥이었던 그 어린날 나는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는 음식을 조절했습니다. 100% 토하니까요. 그럴때면 내가 먹고 싶어할까봐 엄마는 나만 업고 길로 나오셨어요. 토하는게 제일 힘들었던 나는 음식이 별로
[금강일보] 임진왜란 중 선조의 간장종지만한 인격은 미친듯 끓어 올랐다. 백성을 버리고 의주를 거쳐 명나라로 넘으려 했으나 전쟁에 끼고 싶지 않았던 명의 반대로 압록강 앞에서 멈췄다. 신하들과 병사들은 왕을 버리고 도망쳤고 백성은 왕의 가마에 돌을 던졌다.남해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이순신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선조의 열등감은 분노가 되었다. 잠시 전쟁이 잠잠해지자 금부도사를 보내 이순신을 파직하고 서울로 압송했다. 왕의 명령을 능멸한 죄였다. 바다는 본 적도 없는 자가 해전을 지시하니 이순신은 따를래야 따를 수가 없었다.피해의식에
[금강일보] 코로나로 인하여 전쟁보다 힘든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미리 대비하여 난을 평정하고 태평성세를 가져다 줄까요? 알 수 없지만 그때 임진왜란 중에 류성룡의 ‘징비록’을 읽기에 좋은 시절은 맞는 것 같습니다.역대급 서적이 징비록입니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제 몸의 묻은 똥은 보지도 못하고 남의 몸의 재만 지적한다’는 취지로 글을 남기지만 류성룡의 일대기는 수정실록이 아닌 선조실록을 보셔야 합니다. 남인이었던 류성룡은 급진주의자였던 북인들을 끔찍히 싫어합니다.선조실록
[금강일보] 코로나가 지나가면 이종호 건축가의 박수근미술관에 가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박수근 화백의 호는 미석(美石)이다. 예쁜 돌을 좋아한다는 말일까? 이 땅의 질박한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이 그리 좋다는 박수근은 바위에 긁어서 그린 것처럼 자신의 미술세계를 펼쳐냈다.돈도 없는데 겹겹이 물감을 쌓아 바위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학교에서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 하나를 들고 평생 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으로 먹고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출근하듯 그림방에 들어가 성실하게 그렸다는 작가는 대청마루에서
[금강일보] 대전에는 마당극패 우금치가 있습니다. 1990년 만들어진 그 패는 올해 31년이 되었습니다. 마당에서 공연하는 패걸이들이 코로나 2년 동안 마당에도 서지 못하고 극장에도 서지 못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럼에도 '적벽대전'이라는 공연을 올렸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이 아니라 붉을 적(赤), 푸를 벽(碧), 도시이름 대전(大田)입니다. 바로 냉전시절 어느 날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1950년 6월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 포함 국민보도연맹 인원까지 무려 7000여 명이 학살되어 골령골에 암매장되었습니다.
[금강일보]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홍차에 젖은 마들렌을 먹다가 소년시절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 시절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탄생했다. 이렇게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그 시점, 그 공간을 기억하는 일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코로나19로 시간이 멈춰버린 요즘 우연히 에그타르트 하나를 맛보게 되었다. 바사삭 소리와 함께 깊은 부드러움이 밀려들었다. 눈이 번쩍 뜨여 나는 어느새 포르투갈 벨렝빵집(Pasteis de Belem)으로 순간이동 해버렸다.수년 전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금강일보] 운전을 하며 지나다가 우리 가족 기념일마다 함께하던 꽃집이 문을 닫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가게 앞이 썰렁하더니 간판이 바뀌었습니다. 코로나가 직격탄이었을까요? 이래 저래 확인을 해보니 아이가 또래보다 천천히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치료 때문에 가게를 접은 것 같습니다. 분명 코로나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아이를 하늘로 보낸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조카는 중국에서 유학 중 군대를 가야 했고 제가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술관에 가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나는 무중력 상태로 살았던 것 같습
[금강일보] 1905년 조선은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 끝내 나라를 잃었다. 이렇게 급격하게 빼앗기게 될 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급하게 한반도와 만주, 간도, 상해, 멕시코, 미주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나 분노해서 일어난 오합지졸의 의병에게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거대한 일본 제국주의 불꽃 속에 억소리도 못하고 쓰러졌을 뿐이었다. 일본은 헌병을 보내 통치했고, 조선사람은 거리에서 태형을 당하며 수모를 당했다. 국내 독립군은 대토벌 작전으로 해외로 망명해야 했다.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한반도에서는 이렇게
[금강일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백신이다. 라틴어 ‘Vacca(소)’가 어원이다. 백신 접종은 이제 인간에게는 생로병사의 일상이 됐는데 왜 ‘소’가 어원이 됐을까? 소의 고름을 소량 몸속에 넣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아낸 제너의 연구가 첫 백신을 만들어 냈고, 그 고마움에 백신의 어원이 소가 됐다. 파스퇴르가 천연두 병원체를 확인하고 난 뒤 마침내 백신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 덕에 세계 20억 명을 죽였다는 천연두는 지구에서 완전하게 사라졌다.코로나19 백신은 역사상 최단 시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금강일보] 캐나다 미시소거 현대자동차 딜러로 일하던 신상묵 씨는 어느 날 찾아 온 노 신사에게 자동차를 판매하는 데 성공합니다. 구매 사인을 마친 엘리엇 씨는 한국인이냐며 반가워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60년 전 우리 큰형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가셨어요. 서울 어딘가에 묻혀있다는데 우리 가족은 어쩌다 보니 한번을 못 가봤어요. 한국 사람을 만나니까 형 소식이 들리는 것처럼 반갑네요.”미안함으로 가슴이 먹먹해진 신상묵 씨는 고객이 알려준 ‘로이 더글러스 엘리엇’이라는 이름 하나만을 들고 전사자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