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하(太白山下) 에굽은 길로 중 서넛 가는 중(中)의 말째 중아 게 잠깐 말 물어보자 인간이별만사(人間離別萬事) 중에 독숙공방(獨宿空房)을 마련하시던 부처님이 어느 절 법당(法堂) 탁전(塔前) 탁자(卓子) 위에 감중련(坎中連) 하옵시고 두럿이 앉았던가 소승(小僧)도 수종청송(手種靑松)이 금십위(今十圍)로되 모르옵고 상좌(上座) 노스님 알으신가 (하노라)이 사설지름시조는 화자가 중에게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인간사 중에 독숙공방을 마련한 부처를 본 적 있느냐?”화자가 말째 중에게 물어본 말이다.“
이황은 60세에 도산서당을 짓고 아호를 ‘도옹(陶翁)’이라고 했다. 거기서 7년 동안 독서와 수양·저술에 전념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때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지었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하리라 흔히 우리가 부르는 평시조 ‘청산은 어찌하여’는 이황이 지은 ‘도산십이곡’ 중 제11곡으로, ‘언지(言志)’ 전육곡(前六曲)과 ‘언학(言學)’ 후육곡(後六曲)으로 되어 있다. 언지는 뜻을, 언학은 학문을 말한다.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흐르는
팔만대장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임을 다시 보게 하오소서 여래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십왕보살) 오백나한 팔만가람 (삼천계제) 서방정토 극락세계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후세에 환토(도) 상봉하여 방연을 잇게 되면, 보살님 은혜를 사신보시하오리다-작자 미상-팔만대장은 모든 부처님을 말한다. 여래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를 의미하며, 지장보살은 석가여래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 때까지 모든 일체중생을 교화한다는 대자대비의 보살을 지칭한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여래의 왼쪽에 있는 보살로 지혜를 맡아보는 보살이며
푸른 산 중하에 조총대 들어메고 설렁설렁 나려오는 저 포수야네 조총대로 날버러지 길짐승 길버러지 날짐승 너새 징경이 황새 촉새 장끼 까투리 노루 사슴 이리 승냥이 범 함부로 탕탕 네 조총대로 다 놓아 잡을지라도 새벽달 서리치고 지새는 날 밤에 동녘 동대로 짝을 잃고 게오름 게오름 울고 울고 가는 외기러기는 행여나 놓을세라우리도 아무리 무지하여 산행포수일망정 아니놓삼네푸른 산중하에 조총대 둘러메고 살랑살랑 내려오는 사냥꾼아. 네 총으로 길짐승 날벌레 날짐승 길벌레 독수리 물수리 두루미 황새 촉새 장끼 까투리 노루
푸른 산중(山中) 백발옹(白髮翁)이 고요 독좌(獨坐) 향남봉(向南峯)이라 바람 불어 송생슬(松生瑟)이요 안개 이니 학성홍(壑成虹)이라 주걱 제금(啼禽)은 천고한(千古恨)이요 적다 정조(鼎鳥)는 일년풍(一年豊)이로다 누구서 산이 적막(寂寞)타던고 나는 낙무궁(樂無窮)인가 (하노라)푸른 산중에 백발의 노인이 고요히 홀로 남쪽 봉우리를 향해 앉아있더라. 바람 부니 소나무에는 거문고 소리가 들리고 안개가 이니 골짜기에는 무지개가 뜨더라. 주걱새 우는 소리는 천고의 한을 노래하고 소쩍새 우니 이 한 해 또한 풍년이 들
가곡은 시조·가사와 함께 선비층에 의해 향유된 노래다. 이를 정가라고 하여 판소리, 잡가, 민요 등 서민층에 의해 불렸던 속가와는 구별된다.가곡은 시조나 가사에 비해 세련된 예술성을 지닌 노래로 창과 반주가 조화를 이루는 격조 높은 음악이다. 시조나 가사는 장고 반주로도 가능하지만 가곡은 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장고와 같은 관현악 반주 악기가 반드시 따른다. 단소와 양금은 포함되기도 하고 포함되지 않기도 한다.가곡에는 우조와 계면조가 있는데 우조는 웅장하고 장엄하며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계면조는 애처롭고 처량
청풍(淸風) 북창하(北窓下)에 갈건(葛巾)을 기우쓰고 희황(羲皇) 벼게우에 일없이 지였으니 석양에 단발초동(短髮樵童)이 농저환(弄笛還)을 허더라갈건은 베로 만든 두건을 말하며, 희황은 복희씨를 말한다. 희황상인으로 태고적 사람, 속세를 떠나 한가로이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청풍 북창 아래에 갈건을 기울여 쓰고희황상인이라 수놓은 베게 위에 일없이 누웠으니석양에 머리 짧은 초동이 피리 불며 돌아오더라강호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경지를 노래했다. 남창가곡 계면조 중거로 불리는 김천택의 시조
초장진국명산만장봉(鎭國名山萬丈峯)이2장청천삭출금부용(靑天削出金芙蓉)이라3장거벽(巨擘)은 흘립(屹立)하여 북주삼각(北主三角)이요기암(奇巖)은 두기(斗起)하여 남안잠두(南案蠶頭)로다좌룡낙산(左龍駱山) 우호인왕(右虎仁旺) 서색(瑞色)은 반공(蟠空) 응상궐(凝象闕)이요숙기(淑氣)는 종영(鍾英) 출인걸(出人傑)허니 미재(美哉)라아동방(我東方) 산하지고(山河之固)여성대태평문물(聖代衣冠太平文物)이 만만세지(萬萬歲之) 금탕(金湯)이로다4장연풍(年豊)코5장국태민안(國泰民安)허여 구추황국(九秋黃菊) 단풍절(丹楓節)에 인유이봉무(麟遊而鳳舞)커늘면악등림
주려 죽으려 하고 수양산에 들었거니한마 고사리를 먹으려 캐었으랴물성이 굽은 줄 미워 펴보려고 캠이라굶어 죽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갔는데 설마 고사리를 캐어 먹었겠느냐? 고사리의 생김새가 곧지 못하고 굽은 것이 미워서 그것을 곧게 펴보려 캔 것이리라.풍자적이고 해학적이며 착상이 재미있다.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周)왕조를 세우자,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행위가 인의에 위배된다 하여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 굶어 죽었다.성삼문의 절의가가 있다. ‘수양산을 바라보면서, 백이와
맹자견 양혜왕 하신대 첫말씀에 인의로다주문공 주의에 기 더욱 성의정심우리는 성주 뫼와시니 알외 말삼 없어라초장은 맹자의 양혜왕 장구상(梁惠王 章句上) 제1장에 나오는 말이다.맹자께서 양나라 혜왕을 찾아보시니,왕이 말하길, "선생(맹자)이 천리를 멀다 않고 이리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어떻게 하면 이롭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맹자가 대답하길, "왕은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맹자가 양나라의 혜왕을 찾아뵈니 양나라 혜왕의 첫 말씀에 맹자는 인의라고 대답했다. 주희의 주석에도 그것은 더욱 참
벽도화(碧桃花)를 손에 들고 백옥잔(白玉盞)에 술을 부어 우리 성모(聖母)께 비는 말씀저 벽도화 같으소서 삼천년에 꽃이 피고 삼천년에 열매 맺어 꽃도 모진 열매도 무진 무진무진 장춘색(長春色)이라아마도 요지왕모(瑤池王母)의 천천수(千千壽)를 성모께 드리고저 하노라‘벽도화’는 신선이 먹는다는 과실로 반도(蟠桃)를 가리킨다. 반도는 삼천년마다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경에 있는 복숭아다. ‘백도화’는 백옥으로 만든 술잔을, ‘성모’는 거룩하신 국모로 익종의 어머니 순원왕후를 가리킨다. 순원왕후는 순조 2년에 왕비로 책봉된 김조순의 딸
춘수(春水)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에 물이로다.차중(此中)에 노안(老眼)에 뵈는 곳은 무중(霧中)인가 하노라봄이 왔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풀려 강물이 많이도 불었다.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가는 대로 맡겼다. 배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니 물 아래는 하늘이요 하늘 위에는 물이다. 요즈음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두보의 7언 율시 ‘小寒食舟中作(소한식주중작, 한식 다음날 배 안에서 짓다)’에 이런 3·4행의 시가 있다.春水船如天上坐(춘수선여천상좌) 봄물에 뜬 배 하늘 위에 앉은 듯하고老
‘병산육곡(屛山六曲)’은 권구(1672~1749)가 지은 6수의 연시조로 작자의 향리인 안동군 풍천면 병산리를 제목으로 해서 지은 작품이다. ‘도산육곡(陶山六曲)’ 등 육가계(六歌系) 시조의 맥을 잇고 있으며 세사를 떠나 자연 속에서의 안분자족(安分自足) 하는 삶을 그리고 있다.부귀라 구(求)치 말고 빈천(貧賤)이라 염(厭)치 말라인생백년이 한가할사 사니 이 내 것이백구야 날지 말아 너와 망기(忘機)하오리다첫째 수다. 부귀라고 구하지 말고 빈천이라고 너무 싫어하지 말라. 인생 백년을 한가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내 마음이다. 백구
어버이 나하셔날 님금이 먹이시니나흔 덕(德) 먹인 은(恩)을 다 갑프랴 하엿더니숙연히 칠십이 러무니 할 일 업서 하노라조선 중기 나위소(羅緯素, 1582~1666)가 지은 ‘강호구가(江湖九歌)’ 아홉 수 중 첫째수다. 어버이 낳으시고 임금이 먹이시니 낳은 덕 먹인 은혜 다 갚고자 하였으나 어느덧 칠십이 넘으니 할 일이 없다. 어버이와 임금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다.그는 71세가 되어 오랜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인 나주로 돌아왔다. 거기에 수운정을 짓고 한가한 만년의 노후를 보냈다. 이때의 심경을 읊은 것이 ‘강호구가’다.달 밝고 바람
정광천(1553년, 명종 8년~1594년, 선조 27년)은 임란(壬亂, 1592~1598년) 때의 의병장이다. 호는 낙애(洛涯)로 한강 정구의 문하생인 정사철의 아들이다. 부친 정사철은 대구 유림의 최고 지도자로 임란이 일어나자 의병활동을 하다 병으로 그 이듬해 졸했다.정광천은 아버지를 모시고 피난생활을 하던 중 ‘술회가(述懷歌)’ 6수와 ‘병중술회가(病中述懷歌)’ 3수의 시조를 지었다. ‘낙애일기’에 실려 있는 이 두 노래는 나라와 부친을 걱정하는 깊은 충정이 서려 있다. 그 중 ‘술회가’는 1592년 11월 15일, ‘병중술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