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여불위는 무희들을 불렀다. 비단옷을 입은 무희들은 여불위와 좌장들을 오가며 그들의 흥취를 더했다. 짓궂은 문객들은 무희들과 함께 어울리며 바람에 날리는 비단 깃 사이로 무희들의 젖무덤을 만지기도 했다. 혹자는 만취하여 입술을 탐하기도 했다. 손버릇이 고약한 문객들은 지나는 모든 무희들은 잡아 만지고 들쑤셨다. 그
대전 동구 가오동에 최초의 민간 소극장 ‘다함(多豃)’이 개관해 내달 2일부터 특별기획공연을 개최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대라는 의미를 담은 소극장 다함은 옛 가오도서관 시청각실을 개조해 120규모로 기획공연과 대관 등으로 운영한다. 특히 다함은 동구에 생긴 최초 소극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지역민들에게 공연을 보는
그래도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우선 여불위가 다른 귀족들과 달랐다. 일반 귀족들은 적당히 이들의 능력과 머리를 빌려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여불위는 그들의 능력을 빌리고 그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일에 매진했다. 중부 여불위에게 발탁되면 곧바로 진나라 조정에 나아가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여불위는 그들에게
여불위는 신하로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인 승상이란 자리도 흡족하지 않았다. 다른 직위를 찾아볼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직위가 상국이었다. 상국은 중부가 되는 것이었다. 중부는 선왕의 형제를 말하는 것으로 신하로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위치였다. 중부란 호칭은 춘추시대 제환공이 관중을 높여 부른데서 이른 것이었다. 제환공은 관중의 인물됨이
우여곡절 끝에 영정은 1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되었다. 그를 진왕이라고 불렀다.그의 대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장양왕의 상을 치르고 난 뒤 대내외에 영정이 왕위에 즉위했음을 공포하는 정도에 그쳤다. 명분은 장양왕이 갑자기 서거한 것을 진왕이 슬퍼했으므로 화려하게 대관식을 치루지 말라는 어명이 있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진왕은 말이 왕이지 허수아비나 다
왕후 전을 물러나온 여불위는 자신의 집으로 최측근 심복 중랑을 불렀다. 그리고 단 둘이 마주 앉아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술잔을 나누었다. 누구도 근접지 말 것을 가솔들에게 명했다. 둘은 밤이 늦도록 술을 푸짐하게 마셨다. 여불위는 술을 마시는 동안 고래로 숱한 왕들이 비명횡사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왕은 독극물에 암살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독침을
혹시라도 모를 일이었다. 문밖에 있는 나인들이 자신들의 행태를 엿듣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승상은 길게 숨을 몰아쉬며 왕후를 조심스럽게 밀쳤다. 이어 큰 눈으로 문을 가리켰다.그제야 왕후가 승상의 눈치를 읽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나직하게 말했다.“뉘라도 문밖에 있으면 중문 밖으로 물리거라. 내 승상과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느니라.” 그
태풍이 지나고 나면 고요가 찾아오는 것이 이치였다. 궁내에 피바람이 한차례 불고난 뒤 술렁이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든 것이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것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평화이기도 하지만 따분함이기도 했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움만 정원에 가득 고였다. 몸이 스멀거렸다.왕후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조희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녀는 9년의 세월동안 영정
대전 시민천문대어린이 합창단의 공연 모습. 대전시민천문대어린이합창단(지휘 이미현)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세계어린이합창페스티벌’에 초청되는 경사를 맞았다. 한국 민간 어린이합창단으로는 첫 초청이어서 지역 합창계가 한 목소리로 축하하고 있다. 천문대어린이합창단에 따르면 오는 27일부터 5월 4일까지 열리는 ‘세계어린이합창
장양왕 자초는 그동안 여러 명의 새 비빈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물론 그들과의 관계에서도 공자가 태어나고 그것은 태자 영정의 왕위 계승을 위협하고 있었다. 선비들은 왕후가 본래 여불위의 애첩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왕후로서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한번은 함양성 담벼락에 묘한 글귀가 나붙었다는 전갈이 궁으로 전해져 왔다. &ld
동주군은 다른 제후국들과 어울려 진을 치려고 도모하는 등 손톱 밑의 가시처럼 굴었던 것이다. 여불위는 이를 평정하고 곧이어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를 정벌토록 하는 등 자신이 군왕에 버금가는 위치임을 내외에 과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화는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었다. 장양왕이 즉위하고 자신은 천하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태자궁을 나온 여불위는 곧바로 몇 안 되는 심복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저간의 사정을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 태자의 왕위 계승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사느냐 죽느냐는 문제가 그 일에 달려 있었다.여불위와 그의 심복들은 지혜를 짜낸 결과 효문왕을 독살시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것만이 불길하게 일고 있는 조정의 여론을 잠재우고 아울러 자신들의 뜻을 세우
그제야 효문왕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알았소. 다시 태자 문제에 대해 논하지 않겠소. 이리 가까이 오구려.” 그제야 화양부인이 얇은 미소를 머금으며 누워있던 효문왕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효문왕은 이미 기력이 쇠하였으므로 기운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늘 화양부인의 아름다운 몸매를 눈으로 감상하는 것과 부드러운 속살을
자초가 권좌에 오르는 데도 곡절이 많았다.아버지 효문왕은 상왕 소양왕이 오랜 기간 권좌에 있었으므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소양왕이 붕어하자 그제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효문왕 자신도 오랜 지병으로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다. 자리에 누워 정사를 돌볼 지경이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고도 즉위하지 못하다 정식으로 즉위한 뒤
아홉 살이 된 영정은 기대보다 튼실하게 자라나 있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당당한 풍모와 굵은 통뼈, 부리부리한 눈망울, 딱 벌어진 어깨…. 기골이 벌써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아들이란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어떻게 변해 있을까를 곱씹을 때마다 떠올렸던 그 형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단단했다.장양왕은 그를 보는 순간
당연히 태자 자초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가 장양왕이었다.자초가 왕위에 오르자 후사를 위해 왕후를 맞아야 한다는 중신들의 진언이 이어졌다. 왕후는 당연히 진나라 명문대가의 규수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일부 중신들은 서로 자신들의 집안 규수를 내세우려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자초는 단호했다.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왕위에 올랐으니 여불위와의 약속
하지만 답답한 것은 진나라에 들어간 여불위도 마찬가지였다. 자초는 태자 신분이었으므로 매일 같이 궁녀들을 접하고 있었다. 조나라에 부인과 아들을 두고 온 사실조차 망각하고 그들과 화려한 밤을 보내기 일쑤였다. 게다가 궁녀들과의 사이에서 또 다른 자식이 태어남에 따라 영정과 아내 조희는 여불위가 일깨울 때만 그리워할 뿐 평상시에는 잊고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장 전통적인 춤을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한 대전시립무용단이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여주고 오겠습니다.” 외교부 주최 지자체 문화예술공연단 해외파견 공모에 최종 선정된 대전시립무용단은 오는 9월 스페인으로 공연을 떠난다. 시립무용단 김효분 예술감독은 “대전 무용단만이 갖고 있는 강점을 내세워 스페인에 한국 문화 우수성
대전시립교향악단은 오는 14일 낮 12시 10분 정부대전청사 중앙홀에서 ‘정오의 비타민 클래식’ 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연주회는 류명우 지휘자의 해설로 나른한 오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연주를 선보인다.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앞서 대전시향은 음악회 첫 곡으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곡을 연주한다. 이어 로시니의 ‘도둑까치&
조희는 한편으로 장래에 자신이 진나라의 태자비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문신처럼 새기고 또 새겼다. 여불위의 약속을 믿고 있었으며 남편인 자초가 분명히 태자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칠 년이었다. 그동안 조정은 잘 자라 씩씩한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거지처럼 초라한 복장을 한 사내가 조희를 찾아왔다. &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