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대흥향교 은행나무. 중국 산둥성 쥐센현 정림사란 절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산다. 기원전 715년 노나라와 거나라 양국의 제후들이 이 나무 아래서 회담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은행나무는 은행나무의 비조(鼻祖)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은행나무의 고향은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의 것이 유럽으로, 다시 미국으
무령왕릉 내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 중 가장 보편적이고 형상화된 것이 바로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 등이다.유물이나 유적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어떤 생활상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예상을 더듬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유물과 유적 등은 지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어 지역학을 살피는 데 있어서 이를 살피는 것은 굉장히 의
내포문화가 개방적인 성향을 보인 반면 금강문화는 상대적으로 개방성이 덜한 편이다. 특히 같은 배를 이용하더라도 내포지역은 선진문물의 유입을 위한 매개로 이용했고 금강지역은 그 문물을 다시 내륙으로 유입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대전과 충남지역에서의 유교의 의미도 내포지역이 기호유교, 즉 호서유학의 최후 보루였다면 금강지역은 오히려 이들이 꽃피운 지역이어서
수령 500년 된 계룡 괴목정공원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제545호 대전 괴곡동 느티나무. 대전 대사동 충남대병원 앞을 지나다 보면 아름드리 나무 아래 한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큰 나무 탓에 낮엔 카페가 잘 보이지 않고 밤이 돼서야 몇 개의 유리창에서 흘러나오는 전등빛을 통해 카페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멀찌감치서 바라보면 나무와 어우러진 모양새가 평온함
▲이중환의 '택리지' 충남의 문화가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면밀히 살펴보면 충남지역 내에서도 서로 상이한 문화권이 설정돼 있다. 충남의 서해안지역과 내륙지방은 언어를 시작으로 음식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때문에 생활문화 역시 서해안인 내포권과 내륙인 금강권으로 나누는 것이 대표적이다. 두 문화권은 조선 후기 같은 유교문화를 공유했다는
조애중의 '병자일기' 이옥재 부부의 시가 실린 '안동세고' 김호연재의 '호연재유고' 충남의 생활문화들이 보이는 타 지역과의 다른 점은 너무나 극명하다. 하지만 충남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문인은 타 지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았고 과거 우리나라가 여성들의 문자행위 전수에 취약했던 점을 고려할 때 굉장히 진취적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여성 문인
(왼쪽 상단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예산 대흥 임존성 성벽. 예당저수지. 임존성 우물터. 예산 충의사. 예산, 특히 대흥 슬로시티가 역사문화의 숨결을 이어가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건 나름의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 잃은 슬픔을 뛰어넘는 구국충정의 마음이다. 700년 세월의 찬란한 백제문화가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됐을 때도 그랬고 대한제국이
조선시대 양반의 모습을 그린 그림. 양반의 고장 충남에 어울리게 양반들은 여유가 있었고 언어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느린 편이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의사소통의 수단은 언어 말고도 글이란 훌륭한 수단이 있어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만으로 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언어는 글보다 훌륭하게 지역의 색을 알 수 있는 도구이다. 글의 경
건축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담겨져 있다. 지역문화 또한 건축에 직접 반영되고 있다. 건축물을 비교해 보면 그 지역의 지리환경, 역사성과 지역적 정서 등이 건축물에 표현돼 나타나고 있다. 어떤 것은 외부로 표현돼 잘 나타나지만 어떤 것은 내부로 표출돼 잘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다. 가령 건물의 배치나 형태 등은 달리 표현돼 있을 때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주
느린 꼬부랑길 2코스 사색의 길 “옛날 한 마을에 우애 좋고 효심 가득한 형제가 살았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따로 살고 있는 이 형제는 가을 어느 날 추수를 함께 했다. 내기를 하면서 말이다. 형과 아우가 각자 한 쪽 끝에서부터 시작해 벼를 누가 많이 베는지 시합을 한 거다. 그런데 다 하고보니 똑같이 반씩 추수를 했다.이 둘은 사이좋게 각
산유화가 음식과 더불어 지역의 예술 성향은 그 지역만의 색깔을 찾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특히 지역학인 충남학에 있어서 예술이란 분야는 상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예술이란 다양한 분야의 광대한 범위를 일컫지만 충남의 시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시조의 경우 그 지역의 과거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글이 존재하기 이전
한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자연환경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그 지역의 음식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몽골의 경우 말린 고기와 양 젖을 주식으로 먹었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정착생활이 아닌 유목생활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주로 해산물을 즐겨 먹었는데 이를 통해선 바다가 많은 지역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지역의 음식, 혹은
천장호 출렁다리 푸를 청(靑), 볕 양(陽). 충남 청양하면 가장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고추다. ‘콩밭 매는 아낙네’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건 한 때였다. 예나 지금이나 청양하면 고추다. 청양과 고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친구다. 그럴만한 인과관계가 있어서다. 어쨌든 ‘청양=고추’라는 등식은 수많은 파생물을
충의와 절의정신에 의해 결사대 5000명을 이끌고 백제를 지키려 했던 계백 장군과 백제의 멸망을 앞두고 왕에게 직언을 했던 성충과 흥수, 기존의 학문을 탈피해 실천을 강조했던 예학(禮學), 다른 양반들과 차별화를 꾀했던 선비. 충남을 대표하는 문화들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애국정신을 만들어낸 충남은 19세기 말부터 항전을 준비하더니 20세기 들어와 빛을 발한다
선비는 양반과 차별성을 가진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모두의 본보기가 되기 위한 노력과 학문을 정진하려는 노력이 만들어져 예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한 후 수많은 양반들이 선비를 꿈꾸는 예학을 배우기 위해 충남을 찾았다.하지만 예학도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본질이 퇴색되면서 변해갔다. 예의 형식을 중시하는 풍조가 생겼고 인간 심성보다 인
두 개의 마을이 있다. 하나는 좀 오래된 거고 또 하나는 요즘 만들어진 이른바 ‘신상’이다. 그런데 두 마을엔 공통점이 있다. 마을 자체가 소위 잘 팔리는 문화관광 자원이라는 거다. 하나는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어서, 또 하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국적 풍경을 선사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렇다고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처럼
양반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진정한 양반들이라 칭하는 선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무런 능력도 없이 신분세습으로 무늬만 양반들과는 차별성을 갖기 위해 항시 학문을 익히고 행실을 바르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경제력만을 최우선시하지 않았다. 특히 도덕을 자임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가진 인격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이 중 도덕성을 기르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양반이 일본에 의해 왜곡됐지만 양반의 고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충남은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특히 충남의 5대 정신에 입각한 각 문화들은 추후 국가의 큰 난이 있을 때마다 그 위력을 발휘했다. 앞서 살핀 양반문화가 독립군에 자금을 대준 일 등으로 발전했다면 또다른 충남의 문화인 충절문화는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
관광산업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핫(hot)한 신(新)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 했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서비스산업의 선두주자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정부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관광주간’(5월 1∼14일)을 설정·운영한다. 다양한 혜택을 줘서 우리 문화·관광자원을 더욱 발전시키자는 취지다.
다섯 가지 충남의 정신이 양반의 고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 지배계층 사회에서 양반은 무조건적인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양반의 고장이라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과거 양반은 피지배층으로부터 권력과 재물에 욕심을 부리는 전형적인 인간의 형상으로 그려졌고 수많은 동화 등에서 양반은 철저히 권선징악을 통해 벌을 받는 존재로 나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