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대품인 호피 추상석이다. 새의 두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 같기도 하다. 완만한 이마와 튀어나온 부리가 무엇인가를 주시하는 듯도 하다. 추상석은 보는이의 마음이다. 그래서 이 돌은 형상으로 볼 수도 있고 자연그대로 볼 수도 있다. 그냥 돌이 있어 좋은 돌이다. 호피석으로 이만 한 돌은 보기 힘들다. 묵직한 무게감과 자태 그리고
산도 생김이 다양하다. 마을 뒷산처럼 포근한 산이 있는가 하면 거칠고 험난한 바위산도 있다. 새싹이 파릇하게 오른 봄 산이나 녹음방초가 우거진 여름 산이 있는가 하면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낸 겨울산도 있다. 이 돌은 눈꽃이 날리는 겨울 산이란 감상이 적절하다. 거칠고 앙상한 줄기와 핏줄처럼 뒤엉킨 바위산에 서설이 날리고 있다. 정상은 너무나 가팔라 사람의 발
어쩜 돌이 이리도 아름다울까. 피부는 막 목욕을 끝낸 어린아이 같고 색감은 연마를 마친 옥 같다. 차분하게 앉은 모습이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랄까. 보면 볼수록 정감이 든다.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보고 느끼고 만짐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돌이다. 이런 돌을 지근에 두고 시도 때도 없이 만지며 산다는 것은 참 수석인의 행복이리라.잘생겨서 명석이 아니
브론즈 조각을 연상시키는 추상석이다. 이름 모를 작가가 브론즈로 작품을 빚은 것인지 아니면 신의 손길이 닿아 돌이된 것인지 그 추상성이 흥미진진하다. 코와 턱이 있는 듯 하면 얼굴이 형체를 모르게 허물어졌고 몸통인 듯 하면 마구 빚은 흙덩이 같다. 곳곳에 돌조각이 각진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태초에 이 땅이 만들어질 때 이룩된 것이리라. 그 역사성과 진지
남한강 상류 단양지역에서 탐석된 초코 고단봉석이다. 높은 단봉이 돋보이는 돌이란 말이다. 수직으로 선 천길 절벽위에 약간의 평원이 펼쳐지지만 그것은 단지 몸을 쉬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다시 거세게 오르는 산은 하늘 끝에 닫아서야 정상을 만들었다. 밑에서 올려만 보아도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저 유명한 아이거북벽이 이 고봉만 할까. 암반등정에 삶의 가치를
한 폭의 추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문양석이다. 백석과 오석 그리고 황토 빛이 어우러진 화폭에는 상황버섯이 피어있고 꿈의 그림이 수 놓여 있다. 천년을 살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체득한 신이 그들의 바람을 그렸으리라. 연마된 부분이 자연미를 다소 앗아갔기에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만한 그림을 쉽게 볼 수 없어 명석이다. 수석을 감상할 때는 본래의 그림
남한강에서 탐석된 미석이다. 말 그대로 문양이 아름다운 돌이다. 초코석과 그 질감이 비슷하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견디어온 나무의 속살같이 엉키고 휘고 때로는 휘갈긴 흔적이 감상자를 압도한다. 이것이 미석의 맛이다. 가까이 두고 만져보고 또 만져 봐도 실증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미석은 눈으로 감상하는 돌이기보다 손끝으로 맛을 보는 돌이다. 눈을 감고 미석
남한강 초코 오석 위에 앙증맞은 작은 섬이 떠있는 돌이다. 좁은 고평원 한가운데 바위보다 조금 큰 섬이 돋아있다. 그 모양이 가마솥의 손잡이 같아 재미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런 형상의 지형을 연화부수형이라고 분류한다. 연못에 연꽃이 피어 떠있는 형상이란 의미다. 고운 피부는 금세라도 속살을 내보일 듯 사람의 손길을 유혹한다. 매끄러운 촉감이 더욱 마음을 이
남한강에서 채취된 초코 입석이다. 초코석 특유의 부드러운 피부와 역동적인 힘이 돋보이는 돌이다. 높이가 한자를 넘어섰으니 입석으로 손색이 없다. 태초에 지구의 역사가 이루어지면서 이 돌의 역사도 만들어졌을 법하다. 뒤틀리고 구겨진 돌의 살결은 태초의 고뇌를 잘 간직하고 있다. 그 시간적 아픔과 공간적 변화를 한 몸에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수석이야 말로 아름
넉넉한 평야 건너에 산이 솟아있는 평원경이다. 산세의 오름이 완만하고 부드럽다. 그 앞으로 펼쳐진 평야는 만석꾼이 부럽지 않다. 추수를 하는 가을 녘에는 온 마을이 먹고 남을 만큼 풍성한 알곡이 쏟아질 듯하다. 개울을 지나 평야를 달려야 겨우 산 아래에 도착할 만큼 너른 들판이 감상자의 마음을 후덕하게 만든다. 그래서 평원경을 수석의 백미로 꼽는 이들이 많
삼봉이 참으로 수려하게 형성된 산수경석이다. 주봉을 중심으로 부봉과 제3의 봉이 조금은 기운 듯 자연스럽다. 손 안에 들어있는 도담삼봉일까. 어찌 이리도 앙증맞게 자연풍광이 녹아 있을까. 탄성이 절로 난다. 계곡에 위치한 호수는 금강산 상팔담을 연상시킨다. 달밤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이라도 함직하다. 옥빛 물길이 굽이굽이 흐르고 산새소리가 골골마다 들려온다.
수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 멀리 다도해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큰 섬이 있고 작은 섬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은 천상 한려수도의 풍경이다. 운해에 쌓인 듯도 하고 바다 물에 발을 담근 듯도 하다. 돌이 무슨 연유로 이렇게 생겨날 수 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작은 산들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너무나 자연을 닮아 천연덕스럽다. 수석을 하는 사람들
포도석으로 이루어진 단애 풍경이다. 넉넉한 평원과 단층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멀리 고향의 긴 언덕을 보는 듯하다. 제비가 나는 청라언덕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돌은 세워져 있어도 그대로 볼만하고 누워있어도 좋다. 짙은 검은 색감이 안정감을 주고 누워있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더욱이 포도석의 엉김이 숲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함으
형태미가 유난히 빼어난 추상석이다. 위대한 시민의식이 담겨있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을 연상시킨다. 어찌 보면 돌의 형상이 아니라 지고한 사랑을 품에 안고 선 군상 같기도 하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혹은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돌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무슨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수석은 말없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
호피석이 만들어낸 언덕이다. 아래쪽에 작은 호수가 있고 그 상단에는 낮은 야산이 있다. 그 주변을 넉넉한 언덕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호피석은 호랑이의 가죽처럼 얼룩져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충북 영동의 금강 상류나 한강의 미사리 인근에서 많이 난다. 돌의 피부가 좋고 단단하여 특별히 좋아하는 마니아가 있는 돌이다. 호피석에서 이런 언덕의 풍광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돌이다. 평원 저편에 산이 솟아있고 그 아래에 큼직한 호수가 있다. 호수의 깊이는 한 뼘은 들어간다. 물고임이 넉넉하다는 말이다. 산그늘이 드리워진 호수 면이 자는듯 조요하다. 호수석은 이처럼 물이 고이는 돌이다. 호수석에는 단순히 물만 고이는 돌이 있는가 하면 이처럼 풍광이 어우러진 호수석도 있다. 거실 한 켠에
패인부분이 유난히 자연스러운 입석이다. 석질도 이만하면 최상이다. 질감 못지않게 오석의 검은 색감도 좋다. 특정한 모양을 닮은 돌이라기보다 추상성을 높이 살만한 돌이다. 굵은 선이 남성적이며 잘 마모된 피부가 절제미를 느끼게 한다. 돌은 보면 볼수록 정감을 주고 마음을 준다. 돌이 준다기보다 감상자가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래서 많은 사
큰 사슴이 검은 돌에 새겨진 문양석이다. 순록을 닮았다. 이 돌은 검은 돌에 붙어있던 흰 돌이 마모되면서 돋은 문양으로 나타난 형태다. 목살과 엉덩이 살이 두둑한 순록의 모습이 확연하다. 물론 말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게다. 문양석은 이처럼 돌에 그림이 들어있는 경우를 일컫는다. 볼 때마다 감이 달라진다. 상상의 나래를 얼마나 폭넓게 펴느냐가 감상의 측도다.
동물의 형상을 한 괴산 돌로 보인다. 하지만 추상석으로 봐도 문제는 없다. 세워서 보아도 좋았을 법하다. 이 돌은 산돌이다. 산돌은 산에서 채취한 돌이라 피부가 거칠다. 형상은 자상하지만 피부가 거칠어 만지기보다 관찰하는 돌로 좋다. 강돌은 수마를 견디느라 알맹이만 남았다. 그래서 피부가 부드럽고 고운 반면 생김새가 자상하지 못하다. 예민한 부분은 모두 떨
문자석은 문자가 그려진 돌을 일컫는다. 이 돌은 남한강 상류 단양지역에서 채취된 것으로 일자석이다. 한 일자가 큼직하게 또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붓으로 단참에 그려낸 모양이다. 강바닥에서 이런 돌을 발견하면 탐석꾼은 몸이 날아간다. 흔할 것 같으면서도 흔치 않기에 하는 소리다. 대체로 문자석은 한일, 두이, 석 삼 정도의 글자가 대부분이지만 조국통일 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