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눈밭을 쓰는 조심스런 손끝으로내가 모르던 점 하나,아내는 나의 등에서 짚어 낸다쌓아 온 세월 어느 한켠에서이 점은 자라 온 것일까손닿지 않는 곳무수히 점은 있는가창밖을 쓸고 가는 바람 소리에 깨어늦은 저녁상을 물리고,눈 속에 버리고 온 발자국이 부끄러운데창 밖에서는추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눈 덩이,시린 나무 밑동을 덮어 준다이 시를 쓸 당시에 나는 신혼이었다. 30대 초반의 어느 겨울날, 윗옷을 갈아입는데 아내는 다가와 내 등 뒤에서 점 하나를 짚어냈다. 나의 신체 가운데 가장 가까운 곳의 한 부분. 그것은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내장산 밤바람 속에서눈발에 취해 동목(冬木)과 뒤엉켰다뚝뚝 길을 끊으며퍼붓는 눈발에내가 묻히겠느냐산이여, 네가 묻히겠느냐수억의 눈발로도가슴을 채우지 못하거니빈 가슴에봄을 껴안고 내가 간다서래봉 한 자락겨울바람 속에커다란 분노를 풀어놓아온 산을 떼 호랑이 소리로 울고 가는데눈발은 산을 지우고산을 지고 어둠 속에 내가 섰다몇 줌 불꽃은 산모롱이마다 피어나고나무들은 눈발에 몸을 삼켜허연 배를 싱싱하게 드러내었지나이테가 탄탄히 감기고 있었지흩뿌리던 눈발에불끈 솟은 바위어깨에 눈 받으며 오랜 동안 홀로 들으니산은 그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너는 항시 뒤에 남아길 위에서 생을 마친다네 온기를 남김없이 길 위에 비운다마을 하나에 닿기까지우리는 얼마나 많은 너의 목숨을길 위에 뉘어야 하는가어두워 집에 돌아온 밤부르튼 발 씻으며그제야 나는 바닥에 가 닿는다돌아보면 내 몸 구석구석네 그리움으로 커온 길이 있다발자국이여.네가 먼저 마을에 가 닿았구나어제 박힌 내 발자국이 나를 밀고 여기까지 왔다. 어느새 2022년도 열리는 듯하더니 첫 주가 지나고 있다. 이러니 발자국만큼 정직하고 선명한 것이 또 있을까. 포구에도 새벽 물 위로 발자국 찍으며 달려온 배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히말라야의 쇠재두루미는나뭇가지에 앉지 않는다봉우리를 넘을 때 높은 암벽 칼날향해서 나래친다힘이 부치면,더 높은 벼랑으로 차 오른다천길 바닥으로 떨어지는쇠재두루미떼 그림자 쌓여히말라야는 점점 높아간다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닿았다. 시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있다. 순간의 절정이라 할까. 2021년도 한해의 하루만을 남겨놓은 채로. 한쪽 발을 딛고 깨금발로 내려다보니 온통 흰색 마스크들만 눈에 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힘겹게 싸우며 여기까지 왔다.우리는 저 계곡으로부터 거대한 돌
더러는 아픈 일이겠지만가진 것 없이 한겨울 지낸다는 것그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스스로를 버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몰아치는 눈발 속에서눈 씻고 일어서는 빈 벌판을 보아라참한 풀잎들 말라 꺾이고홀로의 목마름 속뿌리로 몰린 생의 온기,함박눈 쌓이며 묻혀 가는 겨울잠이여내가 너에게 건넬 수 있는 약속도거짓일 수밖에 없는 오늘우리 두 손을 눈 속에 파묻고몇 줌 눈이야 체온으로 녹이겠지만땅에 박힌 겨울 칼날이야 녹슬게 할 수 있겠는가온 벌판 뒤덮고 빛나는 눈발이가진 건 오직 한줌 물일뿐이리그러나, 보아라땅 밑 어둠 씻어 내리는 물소리에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새벽어둠을 가르는자전거 급브레이크안마당으로 툭 하고 떨어지던 한국일보아버지 주섬주섬 일어나서어둠 속에서 신문을 건져 올리셨다호롱불 앞에 바다처럼 펼치셨다 확 풍기는 기름 냄새가코에 와 닿으면어시장 생선처럼 튀어 오르던 활자아버지 펼치신 신문 속 세상은 내게 멀고아릿한 달빛 별빛 꿈결 속으로나의 유년도 함께 달려갔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신문이 눈에 들어오고시가 다가왔다내가 먹고 자랄 꿈이 거기 돋아나 있었다신문 한편에 실려 오는 시를 읽으며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제 아버지 떠나신 빈자리시가 내게 남았다칠레의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모하비사막 한가운데그대는 누워 있다구름을 갈던 어깨도 꺾고하늘의 꿈은 바닥난 채발목 접힌 시간을모래 속에 던진 채로당나귀 풀이 바람을 따라구르는 곳으로는 어둠이 오니달 뜬 밤이면여호수아 나무 두 팔을 드는 곳꺾인 날개를 보듬어그대는 더 낮게 엎드려 있다모래 속에 움트는 뿌리는새로이 수습하는저 절대의 휴식.* 미국 모하비사막에는 비행기 잔해를 쌓아놓은 곳이 있어 이를 비행기의 무덤이라 한다.미국에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맞아 떠났던 서부 여행 중에 모하비 사막을 지나갔다. 사막을 거쳐서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하늘에 해가 없어도블라인드를 조정해보면방안의 밝기는 다 다르다블라인드 칼날의 각을조금만 바꾸어 놓아도밝기는 분명 다르고구석까지도 환한 순간이 온다그 어디에 숨어서짙은 심연을 울리는 당신내 방으로 오는빛과 어둠의 간격을칼날 하나로 고르는가돌아 뒤돌아서도내 중심에 와 꽂히어절절히 저미는 저 빛의 속살닫힌 방에서 당신 향해살며시 블라인드를 열 때가장 환한 순간을 위하여사랑의 각을 조정할 때캘리포니아의 햇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아침 태양을 향해 차를 달릴 때면 너무 강한 햇살로 눈을 찡그려 실눈을 떠야만 했다. 우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나무도 빈둥대지 않는다나무들이 독서를 한다둥글게 모인 삼나무 열띤 토론하고오크나무 읽던 책 놓고 기지개 켠다낙엽이 땅에 떨어져 있다고 말하지 말라그것은 나무의 사유가 종결된 토픽바람에 구르는 나뭇잎이제 폐기처분된 나무들의 철학이다가느다란 잔디 잎사색과 독서와 명상 어우러진하나의 비망록이다내년에 다시 솟는 풀잎은올해의 풀빛이 아니다그것은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싹트는 것,저 낙엽은 형이상학의 높이에 완성되어이제 바닥으로 내려 닿는다비로소 현실과 만난다붉게 물이 든 담쟁이 잎은사고의 끝자락,대학에서는 돌도 뜨거운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탤레그래피 에비뉴*를 따라오클랜드 다운타운을 향해 남쪽으로 달리면제일 먼저 정답게 맞아주는 곳평창순두부뒤를 이어서,전골하우스 산마루강남 월남 국수서울 곰탕깡통 돼지포장마차 단성사삼원 식당 고기타임평창의 안부가 궁금하면 달려와순두부 한 그릇 먹고 간다일찍이 세계 속에 깃발을 세운 평창이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으로세계인을 불러들여 큰 잔치 벌인다흥겨운 한마당 축제를 생각하면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쁨뜨끈한 순두부 한 그릇 후딱 먹고평창의 힘으로 달려간다* Telegraphy Avenue :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내가 왼쪽으로 돌아섰을 때그는 오른쪽으로 돌아간 뒤였다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건물 밖 담 곁에는 은행잎이 지고저 건너 산등성이로 두텁게가을은 와 머물고 있었다몇 발자국을 더 나아가면이 건물의 회랑은 끝나는 것일까잠시 주춤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는데다가오는 시간은나의 휑한 가슴을 두들겨 준다이렇게, 어긋나는 것은 한 순간일 뿐점점 다가서면 멀어지는 법이다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건뿌리의 깊이를 그리워하는 까닭이다봄이 오던 날 나 잠시 담장 곁에 머뭇거린 것뿐인데. 그 옆으로 작은 도랑이 흐르고 물줄기 가늘게
[금강일보] 가을 무창포에 가서 가을 바닷길 드러난 것을 보고 왔다바다는 한 달에도 몇 번씩 가슴 갈라내 제 속을 열어주었다 바다의 뿌리가 훤히 다 보였다 나도 바다에게 모든 걸 열어 보여주고 싶었다가을은 그렇게 투명해져 제 속을 내보이려 분주했다모든 것들 한껏 외로워져 바다는 뿌리 쪽으로 가닿아 있었다 한 달에 몇 번씩 무창포도 제가 걸어온 길을 지우고 있었다가을바다의 깊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만조의 물이랑을 타고 오는 파도의 높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썰물로 물이 빠져 나간 뒤 열리는 가을바다. 빈 바닥이 속내를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바람에 온몸을 휘는 풀잎에 절하고저 눙쳐 있는 구름 보고 절한다길가,물 따라 오르는 송사리 보고 절하고강아지풀에 차여 넘어져 절한다뒤로 넘어져서 절하고햇살 한 장낙엽처럼 덮고 절한다한밤 절로 깊어지고 나의 잠은 달디 달다 이 시를 가르는 정서적 분위기는 지난날의 추억 속에서나 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사이에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와 있다. 산을 파헤쳐 아파트를 틀어 올리고 굽은 들길을 바로잡아 바둑판을 만들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바람, 풀잎, 구름, 송사리, 강아지풀, 햇살, 낙엽에 이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새들의 가슴을 밟고나뭇잎은 진다허공의 벼랑을 타고새들이 날아간 후,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그 곳을 따라서나뭇잎은 날아간다허공을 열어보니나뭇잎이 쌓여 있다새들이 날아간 쪽으로나뭇가지는,창을 연다지난 여름 허공을 올려다보면 그것은 절대 여유로움만이 아니었다. 그건 어쩌면 막막함이나 백지의 공포와 같은 것이었다. 숨 가쁜 땡볕 연구실 창밖으로 바라보는 하공은 벼랑이었다.올려다볼수록 미끄러져 내리고 미끄러져 내리면서 어떤 막막함으로 다가오는 것. 그때 문득 한 떼의 새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
자주 가는 뒷산산책길에도 지름길이 생겼다억새 숲 가르며 어제 없던또 하나의 시간이 그쪽으로 흘러간다시간이 깊어 가면길속에 또 하나의 길이 트이는가어느새 미루나무 정수리에는까치둥지 하나 들어앉아 있다길은 길에서 비껴나지 않지만사람들은 이제지름길, 길 속에서 새 길로 간다길을 가면서 또 다른 길에 이르기 위해길속으로 들어간다길을 끌고 간다 산책길은 어떤 원리가 작동하는 것일까. 어느날 시간이 나서 나 오늘, 산책이나 할까, 하고 나서는 걸음. 잊고 있던 나무며 풀과 인사하고. 돌멩이 바위와 언덕을 지나서. 이윽고 산 정상에서 아래 내려
사내의 오른손은여인의 허리를 휘어 감고사내의 왼손은 그의 허리아래 와 닿은 여인의 손을감싸 쥐었다풀벌레가 울고,으름덩굴이 팽팽하게 조여드는한낮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또박또박 징검돌 위를 밟고 갔다한동안의 침묵이숲으로 빨려들었다잠시 멈추었던풀벌레들 다시 목청을 세워숲 속을 한껏 돋운다그때 수세미는 주렁주렁수직으로 그리움을 매단다박주가리 열매 속에는가을볕이 꽉꽉 쟁여 있다가을이 깊어서 한밭수목원에 갔다. 대전 시내 한복판 아파트 숲 사이로 허파처럼 도시의 숨통을 걸러주는 숲.나무와 꽃과 풀들이 어우러져 가을의 느낌을 옴팡지게 일깨워 주고
뻐꾹새 한 마리가쓰러진 산을 일으켜 깨울 때가 있다억수장마에 검게 타버린 솔숲둥치 부러진 오리목,칡덩굴 황토에 쓸리고계곡물 바위에 뒤엉킬 때산길 끊겨 오가는 이 하나 없는저 가파른 비탈길 쓰러지며 넘어와온 산을 휘감았다 풀고풀었다 다시 휘감는 뻐꾹새 울음낭자하게 파헤쳐진 산의 심장에생피를 토해내며한 마리 젖은 뻐꾹새가무너진 산을 추슬러바로 세울 때가 있다그 울음소리에달맞이 꽃잎이 파르르 떨고드러난 풀뿌리 흙내 맡을 때소나무 가지에 한 점 뻐꾹새는산의 심장에 자신을 묻는다20대 초반 여름 나는 산 속에 나를 가두고 지냈다. 그 여름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마을에 모내기 다 끝난 다음날이면어김없이 온 동네 사람들은 대동 천렵을 벌였다윗동네 아랫동네 사람들 빠짐없이 모여뒷산엔 커다란 차일을 치고덩그라니 가마솥 두 개가 걸렸다마을 아낙들은 하얀 쌀밥을 지으며올해의 농사는 풍년이 들 거라고한 쪽 가마솥엔 고깃국이 끓고,솥뚜껑 사이로는 억센 김이 치솟았다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달려와그간의 안부를 나누며, 한솥밥을 먹고한 솥의 국을 마시며 얼큰하게 취하면상쇠가 쇠를 치고 장구, 북, 징이 어울려산은 온통 춤판으로 들썩였다온 마을 사람들 얼크러지고 풍악은골짜기 차고 나가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안개 속 낮게 기어온진안행 막차가 산모롱이로 사라진다깊은 어둠 구렁에 갇히는 발목,금산장에서 돌아오는 사람들허기진 하루꾸러미에 묶여 돌아온다촘촘한 발길에 끌려초행길 어둠 뚫고 가면산은 더 가까이 허리를 세운다목에 감기는 안개 걷으며골라 딛는 길 가운데 괴어 있는 빗물은밤에도 깊이 잠들지 않는다이따금 그어대는 성냥불 안으로급히 얼굴을 디밀었다 사라지는 나무들하루의 곤함도 잠겨 가고잠시 침묵이 긋는 사이,오리나무숲은 설친 잠을 추스린다어둠에 익어 드러나는 길홀로 떨어져 가면삼밭에 널린 묵은 짚 썩어가는 위로숨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음력 칠월, 보름장은 유난히 더웠다삼방(蔘房) 골목으로흘러가는 장꾼들지난 장 밑도는 시세 다툼바람 한 줄기 돌지 않는다웃음과 한숨 뒤엉켜 흐를 때봉황천 물은 조심조심 기어내리고우시장에선,소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쇠전다리 건너 찢어진 포장튀밥 기계를 안고 있는 사내는몇 줌 옥수수 거짓처럼 부풀리며화덕의 불 목숨처럼 가꾼다시든 햇살도 쓰러지고진안행 막차가먼지를 퍼붓고 떠난 후어스름 장터,씀바귀 줄기 흰 물 맺히듯돋아나는 별무리져 내리는 별빛만쉬지 않고 풀리는 샛강에몸을 담근다1980년 나의 20대 초 광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