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300여 일간 탄생했던 무수한 나의 파일들이여, 폴더의 노예였던 파일들이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2022년 3월 이래 차곡차곡 정리되었던 정보들이 한순간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파일이여! 파일이여!”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던 거룩한 애국자의 외침을 이 시점에 떠올릴 일이더냐! ‘시일야방성대곡’을 부르짖으며 ‘황당신문’에라도 싣고 싶은 심정이었다.꿈이라면 좋았을 사건 개요는 이렇다.-언제: 2022년 12월-어디서: 3학년 1반의 교탁과 전자칠판 사이-
교실에서 수업할 때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동료 교사와 공유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대화 내용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발견하거나 아예 졸고 있는 아이, 수업 교재를 챙겨오지 않아 깨끗한 책상에서 명상을 하듯 교사를 쳐다보는 아이,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니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들까지. 교사들은 자신이 목격한 다양한 수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자신의 수업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왜 수업에 집중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참 많이 듣는 말이 있다.“살이 왜 그렇게 많이 빠졌어?”올해 초,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에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걱정 어린 안부를 묻기도 했다. 원인은 간단했다. 많이 먹고 운동은 안 했으니….체중이 불어나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우선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허리가 아프다가 허벅지 쪽으로 통증이 내려와서 병원을 찾았더니, 말로만 듣던 허리디스크였던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도수치료도 받아보았고 허리에 주사도 맞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차도
금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원을 다녀왔다. 코로나19 이전과 같이 대규모의 요란한 응원이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들이 시험을 많이 보는 대여섯 개의 학교를 골라 수능 감독관으로 나가지 않는 선생님들이 학교별로 두세 명씩 조를 이루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지금까지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펼쳐주길 간절히 기원하며 만나는 학생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 따뜻한 말을 전하면서 힘을 북돋아 주었다.30년째를 맞이한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지만 대한민국인은 모두가 이날이 오면 한결같이 수험생이 되고 수험생 가족이 되어 긴장한다. 그리고 수험생들이 시험
지난 9월 27일은 필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의미 있는 기념일이 됐다. 이날은 필자가 생애 최초로 ‘꿈꿔봐, 눈 맞춰봐, 정말 보여!’라는 교육 에세이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한 날이다.옆에서 책을 내는 과정을 지켜보던 교감 선생님께서 책의 출간을 앞두고 “방 선생님, 책이 나오면 내가 현수막을 제작해 줄 테니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사인회라도 하십시다”라며 기분 좋은 제안을 했다. 이것이 하나의 씨앗이 돼 감동적인 기념일로 탄생했다.그 뒤 교장 선생님께서 “선생님들의 일정을 고려해 별도의 시간을 잡는 것보다 시험 기간 연수하
2학기 현장체험학습 일정이 확정됐다. 코로나19로 전면 중단됐던 일정이 재개된 것이다.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예전에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들의 일상이 이토록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코로나19의 강력한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내가 어릴 적에는 ‘현장체험학습’이라는 표현보다는 다들 ‘소풍’이라 불렀다. 나는 이 소풍이 너무나도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김밥과 과자, 음료수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가 아닌 야외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은 당시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소풍 전날
이번 학기는 독서 교과를 수업하고 있다. 그 첫 단원이 최재천 교수의 ‘그 책이 나를 흔들어 놓았어’다. 최 교수가 유학생 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밤새워 읽고 난 후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우리 학생들은 이렇게 성공적인 독서를 한 경험이 있는가? 그 해답을 듣고자 비블리오 배틀을 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인생 도서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질의질문을 받은 후 서로를 평가해 챔피언 도서를 선정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열띤 참여와 호응이 있었다
요즈음 문학의 감상과 비평을 수업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읽고 작품의 의미와 구조 및 가치, 작가의 세계관 따위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평가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면이 있어 다소 접근하기 어려워한다.그래서 우리는 요리를 잘하지 못해도 그 요리가 맛있는지 맛없는지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학생들에게 백일장 심사위원의 자격을 부여했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해도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찾아내는 안목은 누구나 있다는 전제이다. 심사위원으로서 자신감 있게 작품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고 점수를 부여할 때는
지난해 10월 25일 오전 9시경 나는 아빠가 됐다.다른 아기들보다 조금은 작게 태어나서인지, 우리 태린이의 작디작은 발가락을 보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그냥 웃음만 났다.여느 아빠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특별히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아주 작은 생명체가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태린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아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생후 9개월이 지난 요즘의 태린이는 아기의 느낌보단 어린이의 느낌에 가깝다.걷고 말하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흥겨운 노
지난주에는 여름 방학식을 하고 교내 다독다독 교사독서동아리 선생님들과 함께 옥천 정지용 문학기행을 했다.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등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 문학의 실체를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정지용 문학관을 관람했다. 그리고 지용문학공원과 정지용의 시문학을 테마로 조성한 장계 관광지 멋진 신세계를 돌아보며 참석자 모두 모처럼 아련한 문학의 감성에 흠뻑 빠졌다.정지용은 1902년 옥천 연일 정씨 집성촌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나 14살까지 이곳 옥천에서 생활한 우리 충청이 낳
새 학년을 준비하는 봄방학이면 모든 학교에서는 새롭게 업무 분장을 정한다. 개별 학교의 상황이나 교사 개인의 성향 및 선호도 등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이 시기의 모든 교사가 피하고 싶은 업무 1순위를 꼽으라면 바로 ‘학교폭력’ 업무가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의 학교폭력의 양상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인한 사이버폭력 비중의 증가, 신체폭력이나 언어폭력과 같이 가시적인 폭력 유형보다 따돌림과 같이 교묘한 방식의 증가,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에서의 법적 분쟁의 증가 등으로 업무처리가 매우 어렵기
우리 학교에서는 얼마 전 3학년 학생들이 앨범 사진을 찍기 위해 교실과 교정에서 꽃단장하고 분주히 오갔다. 그리고 학년 부장 선생님을 비롯해 관련 선생님들은 지금 3학년 학생들이 코로나19로 수학여행, 체육대회, 수련회 활동 등을 못 해서 무엇을 앨범에 실어야 할지 고민이라며 걱정했다.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담아 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들이 전해졌다.그런데 최근 ‘선생님 사진 없는 졸업앨범’이라는 제하의 보도가 있었다. 일부 카페나 대화방에서 졸업앨범에 나온 선생님 사진을 공유하며 외모를 평가하고 모욕하는 사례가 있었고
날이 많이 무더워진 요즘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운전할 때에도 에어컨을 켠다. 이 신통한 발명품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 옛날 사람들은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어요?” 이러한 질문에 몇몇 아이들은 자신만의 답을 재잘거리기 바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제부터 에어컨이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됐는지 궁금해진다. 이러한 생각은 에어컨이 없어서 너무나 더웠던 나의 스무 살 자취방의 기억을 소환해 낸다.나의 스무 살은 서울에서의 대학생활로 시작됐다. 당시 내가 입학한 대학교의
지난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어제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이렇게 선거가 끝나면 학생들은 수업 첫 질문으로 으레 ‘선생님은 누구 뽑았어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이 질문은 참 쉬우면서도 난감하다.솔직히 얘기하자니 그렇고 얘기하지 않자니 그것도 이상하다. 학생들이 웃자고 친근감의 표시로 한 인사말을 센스도 없이 혼자 정식 말로 받아들여 고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눈높이에 맞춰 성실히 답해 주는 것이 교사의 임무라 생각하기에 고민은 깊어만 간다.교원의 정치중립권
스승의 날이 돼 내 생각이 많이 났는지 졸업한 제자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들어간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부터 예전 초등학교 때의 추억까지 참으로 즐거운 대화였다. 그 와중에 아주 안타까운 소식을 하나 접하게 됐다. 당시 우리 반의 최대 문제아였던 R에 관한 소식이었다. 지난 겨울 R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는데 더욱 안타까운 일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움과 걱정에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R과의 첫 만남은 내
[금강일보]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금년도에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조성을 위한 교과교실 구축 사업을 한다. 그 일환으로 이번 주 중간고사 기간을 활용해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조성을 위한 촉진자와 함께하는 교과교실제 교사 협의회를 했다.필자는 교과교실제 총괄팀장으로서 정해진 횟수와 일정을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 사전에 선생님들과 우리 학교 교과교실제의 비전 및 일정 등을 안내하고 소개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리고 교과교실제 TF에 참여하는 선생님들 중심으로 촉진자와의 협의를 위한 팀별 미션을 수행한 후 팀이 맡은 영역의 교
[금강일보] 올해도 어김없이 나의 생일이 돌아왔다.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아침이었지만 지난 밤사이에 지인들로부터 온 생일 축하 메시지를 확인하며 맞이하는 아침은 기분만큼은 정말 상쾌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랫동안 보지 못해 소식이 궁금했던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온 메시지를 하나씩 읽다 보니 그리운 마음은 더욱 커진다. 잊지 않고 나의 생일을 기억해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참 크다. 생일 기념으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생일 케이크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가 돌발 질문
[금강일보] 지난 수요일 1교시, 수업 시작 후 채 몇 분이 안 돼서 영준이가 영문도 없이 하늘이 무너진 듯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수업 시간에 이렇게 슬프게 우는 학생은 처음 보았다. 큰일이 일어났다는 직감과 함께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학교폭력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평소 수업에만 열중이었던 영준이를 무엇이 이토록 슬프게 했단 말인가?문제해결을 위해 수업을 잠시 중단하고 영준이를 복도로 불러내어 진정시키고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너무 슬픈 나머지 울기만 할 뿐, 말을 잊지 못해 그 옆 상윤이도
[금강일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자신의 특기와 취미, 장래 희망 등에 대해 발표를 하는 수업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반 친구 중에 또래 친구들보다 덩치가 두 배쯤은 큰 승빈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자신의 순서가 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먹는 게 세상에서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담임선생님도 깔깔거리며 웃으셨고 친구들 몇몇은 숨이 멎을 정도로 포복절도를 했다. 자신의 덩치에 걸맞은 꿈을 이야기해서인지, 아니면 특유의 넉살
[금강일보] 코로나19가 계속 확산하는 가운데 각급 학교는 정해진 약속대로 3월 새봄의 시작과 함께 새내기들을 맞이했다.벌써 3년째 병마와 싸우다가 보니 학교도 꽤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입학식을 하면서 전체 교육 가족이 같이 모여서 축하해 주고 신입생과 재학생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 집단으로 쑥스럽게 인사를 나누던 첫 대면식 장면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학교의 사정에 따라 방역 규칙을 준수하며 소규모로 입학식을 하고,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신풍속도가 됐다.각급 학교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새내기들의 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