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의 원리 가운데 중요한 관점은 우주 만물의 모든 기운은 고정됨이 아니라 변화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동양 철학의 기본 바탕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논리를 확실히 이해함에서 비롯된다.따라서 풍수가들은 통일신라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개성 송악산 시대를 예고하였고, 그 후 한양의 북한산 시대가 이어지고, 그 시기를 지나면 계룡산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개창될 것을 예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고 권력에 기생하는 세력들은 그들의 최고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고, 입맛에 맞는 정치를 위하여 변화를 두려워하였다.시대를 이끌어갈 변화의
풍수도참가들은 통일신라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개성의 송악산 시대를 예고하였고, 그 후 한양의 북한산 시대가 이어지고, 그 시기를 지나면 계룡산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개창될 것을 예지하였다. 송악산과 북한산의 시대는 왕조 중심의 권력이 형성되며, 계룡산은 백성이 주인인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원리와 이치, 또한 자연의 지세인 풍수를 통해 앞날을 미리 예측한 것이다.풍수지리의 기본 원리에서 모든 기운은 고정됨이 아니라 변화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풍수의 시조인 도선대사는 고려의 시작 후 일정기간이 지난 뒤 새로운 변화를 새
경자년(庚子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시작되고 있다.‘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필두로 시대(時代)를 읽을 수 있는 지혜로운 안목을 가져 널리 세상을 이롭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반만 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 가운데는 국가의 장래를 살피고 미래를 예측하고 나라를 이끌어갈 이정표를 제시한 풍수도참가들이 있었다.풍수도참가들의 비기(秘記)를 종합하면, 통일신라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개성의 송악산 시대를 예고하였고, 그 후 한양의 북한산 시대가 이어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명실상부하게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일부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들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고 있음에, 그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심히 걱정이 앞선다. 이는 아직도 중앙집권적이고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제도에 몰입되어 나라의 주인인 국민
계룡산 신도안은 풍수상 우리나라의 도읍이 될 수 있는 3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한양의 지세인 물을 얻는 득수국(得水局)과는 다르게 개경의 지세와 유사한 사방이 산으로 둘러져 바람을 막아주는 장풍국(藏風局)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곳이다. 계룡산과 그 주위 산천의 형세를 말하는 형국론적 이론을 말할 때 가장 자주 표현되는 말이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과 회룡고조(回龍顧祖), 금계포란(金鷄抱卵)이다.산태극수태극이란 음양인 산과 물의 형세가 서로 태극의 형상을 이뤄 좋은 명당을 이루는 길지(吉地)라는 뜻이다. 먼저 산세를 보면 속리산에서
현재의 서울인 한양은 풍수상 우리나라의 도읍이 될 수 있는 3대 명산의 하나로 장풍(藏風)과 득수를 고루 갖춘 전형적인 명당의 지세이다. 종산(宗山)이면서 진산(鎭山)인 삼각산은 북한산(北漢山)이라 칭하고, 백운봉, 국망봉, 인수봉이 병립하여 구름 속에 나타나는 세 봉오리의 부용과 같아 삼각산이라 한다.한양은 한반도의 핵심적인 중핵지(中核地)에 위치해 예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된 곳이다. 수도(首都)의 입지로는 백제 초기에 잠깐 수도의 기능을 수행하였고, 고려시대에 도선대사의 기록인 도선비기(道詵秘記)의
풍수사상의 관점으로 볼 때 우리 국토 가운데 도읍이 될 명당으로 개성의 송악산, 한양의 북한산, 공주의 계룡산을 포함한 3대 길지이다. 이들 개경·한양·계룡은 조선의 개국 시점에 3곳이 물망에 올랐으며 현재와 통일 후의 수도 입지론에도 단연 3곳이 돋보인다. 가장 먼저 수도가 된 개경은 고려 400년의 도읍 역할을 하고 조선의 시대는 북한산 아래 한양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한양은 풍수상 장풍과 득수를 고루 갖춘 전형적인 풍수 명당의 지세이다. 현무인 주산은 북악산이 되고 청룡은 낙산(駱山), 백호는 인왕산이며, 주작은 두 가지로 나
우리나라에서 풍수사상이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논의된 것은 조선 개국 초 도읍(都邑)을 정할 때였다. 이때 후보지로 거론된 곳은 풍수사들에 의해 회자(膾炙)된 우리 국토 가운데 도읍이 될 명당으로 개성의 송악산, 한양의 북한산, 공주의 계룡산을 포함한 3대 길지이다. 이들 개경·한양·계룡은 오늘날의 도시입지론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타당성이 돋보인다.개경은 전 왕조인 고려의 수도(首都)로서 일차적으로 조선의 도읍 물망에 올랐다. 한반도의 중앙부를 차지하며, 예성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강화(江華) 북쪽 연안에 인접되어 있는 지역이다
조선의 풍수는 한양의 도읍 입지 선정을 시작으로 집단 취락인 마을을 구성하는 양택 풍수의 관점에서, 중기 이후에는 묘지 혹은 개인의 주택을 대상으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성격을 이루었고, 후기에는 점차 음택 위주의 묘지풍수로 전환되었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는 일본에 의해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정책이 시작되었고, 급기야 미신(迷信)으로 일축하여 비하(卑下)하는 등 조선의 재건을 막는 데 일조하였다.해방 후 풍수지리는 서양의 인문지리학 연구 분야와 동질성을 찾을 수 있었으나, 그 설명에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자연지리의 현
조선시대의 풍수사상은 양기(陽基) 위주의 도읍풍수로부터 시작되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안정화됐고 효(孝)의 관념이 적극적으로 부각되면서 점차 음택 위주의 묘지풍수로 전환됐다. 중기에 접어들어 당파 싸움과 전란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으로 민심의 동요가 일어날 시기에 광해군에게 풍수지리설에 의한 이의신(李懿信)의 상소로 경기도 교하(交河) 땅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실패한다. 최근 최창조 교수의 새로운 통일 수도의 입지로 경기도 파주의 교하가 거론되기도 하고 있다.조선 중기 이후에는 묘지 혹은 개인의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역시 정치기반 확립에 유효적절하게 풍수를 도참사상과 함께 결부하여 큰 영향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으나 나라 이름을 새로이 정하기도 전에 나라의 도읍을 결정해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갈망했다. 당시 후보로 거론됐던 한양(漢陽)의 북한산, 공주의 계룡산(鷄龍山)과 고려의 도읍인 개경(開京) 등의 풍수적 입지에 관한 당대 풍수지리가들의 논쟁은 뜨거운 감자로 부각됐다.태조는 즉위와 함께 우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길 계획과 함께 풍수사 권중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명당 터
풍수지리는 우리 전통의 자생풍수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신라 말기 도선대사(道詵大師)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착돼 발전되기 시작했다. 도선은 최치원(崔致遠)과 같은 시기에 전라남도 광양의 옥룡사(玉龍寺) 승려이다. 당시 중국의 일행선사의 이론인 위도를 측량하고 역법을 정리하기도 한 매우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도선은 풍수지리설을 극히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한반도 지체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인 경동지괴(傾東地塊)를 파악했고 수도의 위치가 동남방에 편재된 경주보다는 중부지방이 더 좋다해 고려 개국의 이념적·실리적
풍수의 본래적 의미에서 풍(風)은 기후와 풍토를 지칭하며 수(水)는 물과 관계된 모든 것을 뜻한다. 즉 풍수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 발전되어 온 땅에 대한 태도의 체계화라고 할 수 있다. 풍수라는 말이 오래 전부터 사용됐으나 중국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 쓴 ‘장서(葬書)’에 바람과 물을 이용하여 기를 얻는 법술을 풍수라 일컫게 되었다는 것이 기록의 시작이다. 촌락 입지에서 도읍이나 마을의 자리 잡기, 집터 잡기, 물자리 찾기 등은 우리 민족을 포함한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민족들에게 배산임수·남면산록 같은 공통된
풍수의 원리 가운데 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 등의 논리를 알아보자. 좌향론은 산, 수, 방위, 사람 등 풍수의 4요소 중에서 방위에 관계된 술법으로 혈의 위치에서 본 방위, 즉 혈의 뒤쪽 방위를 좌(坐)라 하며, 혈의 앞면이 향(向)이다. 예를 들면 북쪽에 내룡(來龍)을 등지고 남쪽에 안산과 조산을 바라보는 혈처의 좌향은 북좌에 남향이지만 풍수에서는 24방위명(方位名)을 따라 자좌오향(子坐午向)이라 부른다. 하지만 보다 넓게는 혈처의 좌향뿐만 아니라 산과 수의 방위문제 전반에 관련이 된다.형국론은
풍수의 원리로는 간룡법(看龍法), 장풍법(藏風法), 득수법(得水法), 정혈법(定穴法), 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 등의 논리를 갖는다. 산세의 흐름을 읽는 간룡법과 명당을 둘러싸는 산들의 기능을 확인하는 장풍법에 이어 득수법을 알아보자.득수법은 물을 얻는다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산보다도 오히려 물길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여 많은 풍수서가 득수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풍수지리설이 흥성하였던 중국 북부지방의 적은 강수량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일부에서는 풍수의 어원을 장풍득수(藏風 得水)의 축약
풍수의 원리로는 간룡법(看龍法), 장풍법(藏風法), 득수법(得水法), 정혈법(定穴法), 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 등의 논리를 갖는다. 간룡법은 산세의 흐름이 마치 용의 움틀임과 같다는 의미로 용맥이라 하며 용맥의 좋고 나쁨을 조산(祖山·조상 산)으로부터 혈장(穴場·흔히 명당이라 함)에 이르기까지 살피는 것이다. 장풍법은 풍수이론의 핵심 요소로 흔히,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左靑龍右白虎前朱雀後玄武)’라는 사신사(四神砂)의 역할까지 살펴보았다. 장풍법을 더 알아보면 현무는 주산(主山)으로 국면의
풍수지리는 지리(地理)를 체계화한 전통적 동양철학과 논리구조로서 풍(風)은 바람을 뜻하여 기후와 풍토를 지칭하며 수(水)는 물과 관계된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풍수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 발전되어 온 땅에 대한 지식의 체계화라고 할 수 있다. 명당에 자리 잡은 혈장을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명당 주위의 지형·지세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는 풍수지리의 이해에 중요한 대목이 된다.풍수의 기본 논리는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기반으로 땅에 관한 이치이다. 구체적 원리로는 간룡법(看龍法), 장풍법
풍수지리는 지리(地理)를 체계화한 전통적 동양철학과 논리구조로서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기반으로 땅에 관한 이치이다. 구성은 산(山), 수(水), 방위(方位), 사람(人) 등 네 가지로 성립되며 구체적 원리로는 간룡법(看龍法) 장풍법(藏風法) 득수법(得水法) 정혈법(定穴法) 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 소주길흉론(所主吉凶論) 등의 형식논리를 갖는다.풍수의 본래적 의미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환경을 대변해 주고 있다. 풍(風)은 바람을 뜻하여 기후와 풍토를 지칭하며 수(水)는 물과 관계된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
풍수도참사상은 역사의 과정과 미래를 함께 예측하여 시대정신(時代精神)이 잘 반영돼 실제로 이행됨을 알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대전과 세종, 충청도를 중심으로 나타난 계룡산천도설(鷄龍山遷都說)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조선의 시대가 지난 후 계룡산을 중심으로 백성이 주인인 시대의 도읍(현재의 수도(首都))이 되어 800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언했다.세월이 흘러 지금은 왕조의 시대가 가고 백성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수도에 필요한 종묘와 사직인 대전 현충원이 자리하고, 문무백관인 연구단지의 연구원들과 삼군본부의 핵심요원들
도참사상은 풍수지리와 융합돼 당시의 역사적 과정과 결합한 보편적 정서인 시대정신(時代精神)이 잘 반영됐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실제로 이행됨을 알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게 조선 중기에 이르러 민중들에 의한 계룡산천도설(鷄龍山遷都說)이다. 이씨 조선의 도읍(都邑)인 한양의 시대가 지난 후, 충남 공주의 계룡은 백성이 주인인 시대의 도읍이 되어 800년 간 지속될 것으로 예언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왕조의 시대가 가고 백성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원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이며, 특히 대전과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