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자인 겔리스 교수가 쓴 '출산의 비밀/예식-민간신앙-관습'에서 보면 여성과 출산과 생리에 대한 다양한 관습과 민간신앙이 전개되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옮겨보면, 16·17세기의 생리를 나오게 하는 레시피로는 한 웅큼의 대마씨를 잘 갈아서 약 30g의 설탕과 함께 24시간 와인에 담가 두었다가 아침마다 빈속에 한 컵을 마시고, 만약에 효과가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복용하라는 지침이다. 그 반대의 경우인 생리가 멈추지 않을 경우에 쓰는 처방들도 다양하다.오늘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모유와 피가 아주
먼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자. 이 때는 생리를 일종의 여성 몸의 정화과정으로 보았다. 특히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기원전 약 570~510)는 여인들이 음식물을 너무 과하게 섭취한 나머지, 그 영양소를 몸 안에 지나치게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이 잉여의 영양소를 바깥으로 내 보내야만 했는데, 이것을 몸 안에서 빼내는 작업이 바로 여성 생리라는 거다. 다음은 히포크라테스(Hypokrates: 기원전 약 460~375)다. 그는 4가지의 체질요소(Korpersaften)를 가지고 인간의 건강과 여성의 생리를 설명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최근에 약 70년 전에 시몬느 드 보브와르가 쓴 '제 2의 성'을 읽게 되면서부터다.그녀는 참 방대한 자료에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고대·중세·근대 1949년대까지의 여성들의 문제를 들여다 보였고, 남성들의 손에 쓰여진 여성의 얘기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서술하였다. 1949년 경이면 노트북 등등은 생각도 못하던 시기이고 겨우 타자기-그것도 한번 틀리게 쓰면 지우는 것도 힘이 드는 기계-를 가지고 어찌 그런 방대한 작업을 하였을꼬?아마도 그녀는 평생을 도서관에서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중세의 결투 장면을 담은 그림을 소개하려 한다. 이 그림들은 독일의 유명한 검투 마이스터이자, 검투 저작물들을 기록한 한스 탈호퍼(Hand Talhoffer: 약 1420~1490)가 남긴 그림들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결투 장면그림들 270점을 남겼는데 그 중의 9점을 아래에 소개한다. 먼저 중세의 결투는 개인적인 싸움이 아니었고 법적인 효력을 가진 싸움이었다. 이런 싸움에는 ‘늘 신이 함께 개입한다’고 철저하게 믿었기 때문에 ‘신의 재판’이라고도 칭한다.그렇다 보니 결투 끝에 한 쪽이 심하게 다쳐도 또는 죽게 되어도, 다 신이
다시 변소 얘기로 돌아오자. 물론 부잣집에서는 작은 변소간이 있어서 거기서 함께 볼 일을 보았는가 하면, 더 나아가서는 한 사람 만이 사용하는 변소 간도 소유하고 있었다.동시에 공동 변소의 뒤처리 하는 얘기도 남아있는데 재미있다. 우리의 빗자루 크기의 막대기를 상상하면 되겠는데, 이 자루 끝에 스폰지 비슷한 것을 달아 두었다.로마인들이 대변을 보고 난 뒤 이 막대기를 잡고 사용한 후에 식초와 물을 혼합한 길게 늘어선 물통에 이 막대기를 넣어서 흔들어 씻은 다음에, 방금 볼일을 끝낸 옆 사람에게 사용하게끔 넘겨 주었다. 이 사람도 다
이 지구에 태어난 이는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똥을 싸고'의 반복된 삶을 살다가 갔고, 또 살고 있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가 없다. 사실 이런 요소들 중에서 음식문화는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싸는 얘기와, 싸고 난 뒤의 뒤처리 얘기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이런 뒤처리 얘기를 기원 후 80년대의 로마를 한정해서 한 번 보자.당시의 로마에서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변소 내지는 배수구 비슷한 곳에 남녀 구별 없이 죽 앉아서 똥을 누었다 보니, 이렇게 똥을 누면서 서로 정치 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