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안에 잘 정돈된 와이셔츠와 한 번은 입었을 법한 와이셔츠가 옷걸이에 걸려있다.그 밑에는 주인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해골이 앉아있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검은 고양이가 있다. 여기서 살아있는 생명체는 고양이 뿐이다. 그런데 갤러리는 고양이의 뒷모습밖에 볼 수 없다.그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은 옷장(관), 와이셔츠(수의), 해골(인간), 장식품(소모품)으로 쏠린다. 왜 작가는 이런 설정을 했을까.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관, 수의, 인간, 소모품으로 바꾸어 읽힌다.살아있는 생명(고양이)이 죽은 사물들을 보고 있다. 검
자화상을 시로 쓴 적이 있다. 쓰고 나서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다 쓴 시를 보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는 나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침이 되면 내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화가들도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그려보고 싶은 유혹이 있나 보다.자신이 직접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나를 제대로 몰라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부분 때문에 작가가 자화상을 쓰거나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사람의 형상인데 잘 보면 나무이다. 인간이라면 누
명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의 옷을 입고 입어 사람들의 마음에 손에 들려진다. 그 시간을 쏟은 만큼 가격은 견고하다. 옷이 됐든, 가방이 됐든, 시계가 됐든. 이런 명품이 내 눈 앞에서 증발하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가능하다. 그림을 통해 명품이 품고 있는 시간을 푼다면 말이다. 불에 타는 느낌이나,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보다 충격은 덜 하겠지만 인간의 욕망에서 본 명품이 아니라면 색 다를 수 있다. ‘IMAGEN - X’ 작품은 욕망의 허무를 이야기
제목: 강제된 침묵작가: 송인(1971~ )재료: 장지, 먹, 수정테이프, 콩테크기: 130×162연도: 2017침묵은 금이다. 지금도 이 말이 통용되는지는 모르겠다. 백 번 양보를 해서 침묵이 미덕이라고 해도 ‘강제된 침묵’은 의미가 다르다. 억압이기 때문이다. 폭력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짓밟았기 때문이다. 송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강제된 침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이런 현실을 만나면 대부분의 얼굴 표정은 공포에 질려있거나 슬픔에 빠져있다.그런데 이 작품은 아니다. 작품에서 입은 열려있지만 눈은 무심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