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어머니는 집 가까운 콩밭에 김을 매시고 저녁이 되어서야 맨발로 호미와 고무신을 들고 돌아오셨지요. 우물가 빨랫돌 위에 고무신을 닦아 놓으시고, 하루의 피로를 씻으시던 저녁, 땅거미가 내릴수록 더욱 희게 빛을 발하던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의 땀 밴 하루가 곱게 저물면 이제 막, 우물 안에는 솔방울만한 별들이 쏟아지고 갓 피어난 봉숭아도 살포시 꽃잎을 사리는 것이었지요.지금 우물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싱싱한 꿈 길어 올릴 두레박줄 내릴 곳 없는데, 이제는 그곳에 서보아도 뒷산 솔바람 소리도 들리지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그림자 따라 걷다가빈집 앞을 지난다제 그림자 볼 수 없어 매미는땡볕 속에 소리를 쏟아낸다소리에는 그림자가 없다마당엔 풀들이 가득 에워싸고집에는 그림자 풍년이 들었다제 그늘 속에 집은턱 하니, 또 한 채의 집을 짓고마당 가득 풀을 키웠다집은 우거진 그늘 안고 누웠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밖의 세상으로 떠나보내고집은 비로소 집에서 벗어나그늘 속으로 내려앉았다집을 세운 사람들 품고,낑낑대는 강아지 한 마리의 밤도아늑하게 품어 키웠다이제 새벽 별빛만 뜰팡 위로 구른다사람들이 떠나자 집은비로소 허물을 벗어버리고한 채의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물은 소리로만 우는 것이 아니다가파른 벼랑을 타고 내리다가큰 바위에 부딪치며 부서져물은 희게 거품을 물기도 하지만,한동안 소리 죽여 누워 흐르기도 하면서그 낮은 소리로 산 하나를 허물고 간다폭포 밑에 서면 물 떨어지는 소리 가득하나물은 소리 내지 않는 곳에서더 큰 소리를 삼키며 간다그리하여 계곡은 더 깊게 파이고물은 더욱 깊어져 날선 돌에 맨 가슴을 깎는다계곡 물이 왜 새파란 빛을 띠는지그 물에 손목을 담그면 왜 마디마디가 저린지물은 소리로만 우는 것이 아니라,온몸으로 차오르는 절망의 깊이로재울 수 없는 고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지상에서의 며칠 삶을 위해매미는 수 년간 땅 속에 묻혀 있다땅에서 부활하는 순간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매미는 자기 죽음에 대한 弔喪으로스스로 울다 최후를 맞는다기대어 울던 나무 밑이 바로 자신의 무덤이다이듬해 나무는매미의 주검을 파먹고이파리 줄창 자라나무성한 그림자로 한 여름을 덮는다누군가 매미를 일러 지하의 곤충이라 부르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무려 7년간이나 땅 속에서 지내다 지상으로 올라와 탈피를 마치자마자 곧 죽음으로 치닫는 한 달간의 삶이라니. 지상의 삶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겠다.그리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그래, 나도 손을 뻗고 싶다저 하늘 너희들이 꿈꾸는 세상으로나도 차오르고 싶다기대지 않고는 설 수 없는 땅에서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하나의 기둥으로 서고 싶다휘감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비탈가파른 바지랑대에 몸을 묶어서단 한 번만이라도,나팔소리 힘차게 불어 올릴 수 있다면벼랑을 타고 넘어 기어오르지 않는 꿈이 어디 있을까. 가파른 바지랑대에라도 기대어. 아니 허공의 급소를 말아 쥐고서라도. 그래 나도 공중으로 쏘아 올리는 화살처럼. 폭포처럼 타오르고 싶다고. 그건 너와 내가 다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햇살 속 걷다가큰 나무 그늘에 들었다나무는 나를 품고 생기가 돈다그대가 드리운 사랑의 심연출렁이는 파도 속에하늘 걸려 있다숲은 적요하다그늘 속 가지를 뻗고이파리 묻으며 자란다작은 풀잎까지가까이 불러 그늘을 키운다그늘이 내 몸속에 들어온다내가 그늘 속에 뒤섞인다나무는 햇살과 그늘을 두고허공을 끌어안는다비로소 서늘한 길이 열린다지금은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그늘을 필요로 하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작은 부피를 지닌 것들 모두 강렬한 햇빛 아래 셀프 그늘을 풀어 짙은 순간을 열고 있다. 엊그제 속초로 가족 여행을 갔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간밤 물길이 내고 지운 소리들모두 다 산속으로 가 있다물소리는물푸레나무 잎마다 둥지를 틀고산뽕나무 줄기에거미줄 치고 이슬을 걸었다숲길 걷다 보면물은 왜 흐르며 소리를 내는지물은 왜 소리를 따라가는지물소리 속으로 걸어가면소리만 가고 길은 남아나무와 풀의 잎맥이 되어 눕는다내 발자국 위에 다시 길을 내며어둠 속 물소리 따라 들어가면물은 소리로 집을 짓고 마을을 감돈다어느 해 여름 백담사에서 며칠간 보낸 적 있다. 아침이면 계곡으로 가득히 차 있던 안개 뚫고 시내를 따라 물 흐르고 있었다.그 물소리 밤을 새워도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길 따라 흐르며 그 길 가득 채우는또 하나의 길시간과 하나 되는 물이여절대 뒤돌아서지 않는, 길이여길 위로 흐르면서 이미 길이 아닌하나의 길을 비워내다시 길을 여는 저 물의 길당신은 나를 물로 보는가? 맹물이나 마시세요. 이렇게 말하면 절대로 물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지요. 물이라니, 물 같이 본다니요? 맹물 먹고 속 차리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즉 이 세상 모든 길은 맨 먼저 물이 냈을 게 분명하지요. ‘처음 물줄기 길 헤매듯’이라는 내 시처럼. 처음에 물은 머리를 흔들고 움직이며 어느 방향으로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마주 보고 가지만그대 눈동자에 실려 간다나의 시야가 닿는 곳은그대 머물다 간풀과 꽃과 나무다그대의 시선저편 능선을 넘어가다음 계절에 가 닿아도나는 아직 땅에 눕기 전꽃잎의 떨림에 멈추어 있다그대가 비운 그리움이여내가 머무는 이 가파른 시간은어느 누구의 기다림인가스쳐간 시간의 어느 끝자락인가그대와 마주 보고 가지만나는 그대 눈동자에 담겨 있다그대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계신지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계신가요.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당신은 없고, 모든 것은 당신이 스쳐간 흔적들 뿐이지요. 그렇게 당신의 눈길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어느 날 나무는 뿌리가 궁금했다귀를 조아려 땅 밑 뿌리에 이파리를 모았다뿌리는 또 하늘 소리에 관심이 쏠렸다구름 부딪는 소리 별빛 부서지는 소리그제야 뿌리와 우듬지 사이 한없이 멀다는 걸 알게 되었다나무는 뿌리를 향해 온 몸으로 흔들어보았다어떤 소리도 전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우듬지는 뿌리 위로 그늘을 쏟았다그때부터 이 세상 그늘에는 또 한 겹의 짙은 그늘이 깔려 있다이 세상 만물은 가장 가까운 곳에 그것과 반대편 본성을 잇대어 두는 법이다. 그러므로 가장 빛나는 별의 속살만큼 어두운 것도 없다. 그런 즉 별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꽃과 꽃 사이에서피어나는 꽃꽃과 꽃 사이에새로이 몸을 내는 꽃꽃과 꽃 사이에서 피어난꽃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꽃과 꽃 사이사이에 피어난꽃 사이사이사이에서 피어나는 꽃그대와 나 사이 꽃그대는 사이꽃을 보셨는지요. 이 세상을 둘러보면 천지에 꽃들 피어나지만 실은 그대가 보아야 할 것은 꽃과 꽃 사이의 꽃이지요. 꽃이 필 때 꽃들은 서로의 사이를 채우는 사랑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법이니. 그대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난 사이꽃이지요. 부와 모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이라는 걸 아시겠지요. 꽃이 피어날 때 그것은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강은 언제나앞과 뒤그리고옆을 둘러보며천천히흘러간다.천천히 가다가산이 좋고물이 좋은곳을 만나면집과 집이서로 정답게 껴안은마을을옹기종기매달아 놓고들이 시원하고바람이 시원한곳을 만나면곡식과 채소가다투어 자라는논밭을바둑판처럼 반듯하게만들어 놓고심심한 아이들이뒹굴고 놀넓은 모래밭을펼쳐 놓고염소와 송아지가풀을 뜯고 쉴풀밭도펼쳐 놓고강은어두운 밤이 되더라도달이나 별이 찾아와목욕할 수 있도록언제나다니는 그 길로꼬박꼬박그리고 천천히흘러간다.강의 분주함과 흥겨움을 이토록 정교하게 그려놓은 문장이 또 있을까요. 이는 완벽한 강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 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강은 영원한 인간 삶의 고향이지 생명이지 어머니이지. 하여 예부터 무수히 시인들 강을 노래해왔지. 한 시인은 강을 지키며. 그 강에서 삶을 배우고 강에서 미래를 보았지. 강이 지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나 내 딛는 한 걸음이 이 땅의 강을 살리는 일이라면그 강에 찾아오는 새떼들의 노래하는 날개 짓끊이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강을 따라 흐르는 걸음 어찌 함께하지 않으리그리하여 내딛는 한 걸음이강을 거슬러 오르는 은빛 비늘의 물고기 떼들물길의 나침반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송사리 떼 송알송알 오르내리게 하는 길이라면그 길에 어깨동무하며 앞선 발걸음 어이 뒤따르지 않을까강물을 따라 흐르네흐르다 때로 가던 걸음 멈추며세상에 어떤 것들이 참으로 있어 눈물 나도록 아름다울까걸어온 풍경을 떠 올렸네깊고 낮은 곳으로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1강물은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누가 길을 막으면돌아서 가고그러면서도앞서지 않고차례로 간다.강물은 강물끼리서로 손잡고 간다.2강물이 흐른다.바람의 손목을 잡고 소곤거린다.천날 만날 아래로만 흐를 줄 알았지제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강물이제야 알았나 보다.제 가슴에 내린 하늘이그렇게 파란 것인 줄을.여름날 강물은눈이 더 파래진다.우리는 무엇보다 강물에서 동심을 배웠다. 그 무엇과도 다투지 않고 막힌 길은 돌아서 가고. 누구를 앞서려 하지 않으며 함께 손잡고 가는 것. 강물의 맑고 밝은 성품. 언뜻 쉬워 보이지만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비단 강 여울목에 달빛이 쉬어가면천리 길 뱃길 따라 물새가 슬피 울어떠난 님 돛배 타고서 노을 안고 온단다.종달새 높이 떠서 사랑을 노래하면부풀은 버들잎에 조각달 걸쳐놓고은모래 백사장 따라 물수제비 그린다.한 서린 비단 강에 철새 떼 비상하면휘영청 달빛 타고 갈대 밭 너울지듯기러기 새 소식 안고 줄지어서 온단다.강바람 비단물결 달리는 자전거 길숨 쉬는 금강천리 눈부신 치맛자락물새알 꿈을 키우는 하루해가 저문다.금강. 그 애잔함은 말로 표현해 무엇 하랴. 하고 많은 그 심정을 노래로 띄웠거늘. 철마다 고운 색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강물을 따라 흐르다 보면길이 왜 좌충우돌하며 몸을 뒤트는지알 것 같다. 그것이 강물을 흘려보낸저 첩첩산중의 마음결인지도 알 것 같다.그리하여, 강물이 길의 풍경을 유유장장 거느리고남해 바다로 흘러가는지도 알겠다.강물을 따라 흐르다 보면상류와 중류와 하류의 폭이 왜 다른지알 것 같다. 소리와 색깔과 깊이까지다르다는 것도 알 것 같다.그리하여, 왜 은어 떼들이 하류에서 상류까지를애써 거스르며 오르는지도 알겠다.우리 흘러가는 강물 따라 고즈넉이 걸아가 본 것이 언제였던가. 저물녘 노을을 등에 지고 긴 그림자 강물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새벽 강을 걸어보라시원하고 청량한 매력에 빠질 것이다안개는 강가의 수호신물길이 할 일을 알려준다바닥부터 물 위까지흐르는 것은 건지고널려진 것은 모으고죽은 것은 살리고살아 있는 것은 먹이고쌓이는 시간을 맞아 잠들 것이다물고기 한 마리 여명의 윤슬 되고빛나는 비늘 옷을 입고바위를 탁탁 치며다시 하루를 시작한다.새벽 강. 그건 얼마나 설레던 세상인가. 한때 우린 검은 밤을 건너 새벽 강을 보러 갔지. 그러다 언제부터 우린 더 이상 새벽 강을 보러가지 않게 되었나. 그러니 그대 다시 새벽 강을 걸어보라고. 강은 우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금강은 새싹의 마음을 갖고 있다초록초록 예쁜 소리를 내며 흐른다제 몸 가득 어린 생명을 키우면서도착한 낯빛으로 느리게 웃는 금강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더라도금강의 낯빛은 늘 상기되어 있다입술 살짝 깨물고 있는 금강눈 감고 있어도 사방이 밝고 환하다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제 가슴속온갖 꿈 키우고 있는 금강오늘도 별별 풀꽃들 끌어안고 있다붕어, 꺾지, 모래무지, 송사리 따위까지겨드랑이속 깊이 껴안고 있다길 따라 오가는 사람들 지친 마음따듯하게 추켜올려주는 금강그녀의 내일은 사랑이다 평화다금강은 누구한테나 따듯한 쌀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강은 가르지 않는다.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제 몸 위에 작은 나무토막이며쪽배를 띄워 서로 뒤섞이게 하고,도움을 주고 시련을 주면서다른 마음 다른 말을 가지고도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친다.건너 마을을 남의 나라남의 땅이라고 생각하게버려두지 않는다.한 물을 마시고 한 물 속에 뒹굴며이웃으로 살게 한다.강은 막지 않는다.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짐짓 몸을 낮추어 쉽게 건너게도 하고,몸 위로 높이 철길이며 다리를 놓아,꿈 많은 사람의 앞길을 기려도 준다.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