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붙여진 이름처럼 눈온 날 밤 달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산들의 미학이다. 앞산 너머로 산 능선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너머 또 그 너머에 희미한 산이 눈을 맞고 서있다. 말이 필요하지 않다. 입을 꼭 다물고 눈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펴봄직하다. 저 능선들을 언제 넘을꼬. 달빛은 유유한데 나그네의 마음은 겨울 밤만큼이나 조급하구나. 그 자체가
초코 미석으로 만들어진 추상석이다. 피부가 유난히 곱고 색감이 너무나 아름답다. 어찌 돌이 보석처럼 단단하고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되묻게 한다. 돌의 형상은 문턱하고 담대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조각이 세월을 이기지 못해 손상되고 몸통만 남은 모습 같기도 하고 나무토막을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 수석을 좋아하다 보
큼직하게 선 돌이다. 소장자는 도포를 입은 거사를 닮은 돌이라고 설명했다. 돌은 보기 나름이다. 아무렇게나 빚은 모습이 도리어 정겹다.수석을 즐기는 문화는 벌써 오래전부터다. 중국 당나라 때 백낙천(772-846)은 돌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적었다. "임금님을 모시고 있는 남씨가 좋은 돌을 보내와 그 돌에서/ 물 소리를 듣게 해 주니 이에 절귀(絶
흰 사슴 한쌍이 얌전하게 앉아 멀리 자신이 건너온 산야를 넘어다보고 있다. 암사슴의 눈망울이 선하다. 수놈은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털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앞다리를 쭉 뻣고 앉아 연신 혀로 자신의 털을 고르고 있다. 암컷과는 대조적이다. 겁이 많아 선한 동물인 사슴은 십장생의 하나로 분류한다. 동양적 사유관념 속에서 아름다움과 장수를 의미하는 동물이기에
넉넉하게 선 돌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계곡에 눈이 오는 듯도 하고 큰 바위를 담기도 했다. 소장자는 그래서 눈내리는 겨울 계곡을 닮은 돌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듯 하다. 하지만 기자는 이 돌을 보면서 고목에 매화가 피었구나 생각했다. 천년의 세월을 인고로 버티어온 늙은 나무에 흰 매화가 점점이 피었다. 그 자태가 고상하고 귀하다. 그러니 돌은 오죽이나 귀
이돌은 추상석으로도 볼 수 있고 물형석으로도 볼 수 있다. 소장자는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을 닮았다고 하여 "생각하는 사람"이란 제목을 붙였다. 턱을 받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을 하고 있단다. 돌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보는이의 마음에 달려있다. 물형으로 보면 그 형상이 나오고, 추상석으로 보면 그 속에 자유로운 추상의 형상이 있다. 이름
이단 평원경. 말 그대로 2단의 평원이 경치를 이루는 돌이다. 높은 평원이 아래위로 놓여 넉넉함과 변화를 함께 느끼게 한다. 오석이라 질감이 좋다. 평원경은 산이나 잔구가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좋다. 초기에는 잔구가 없는 평원이 무슨 평원경인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평원위에 잔구가 있건 없건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넉넉함과 풍요로
초코석으로 만들어진 단봉석이다. 봉이 하나란 뜻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잎처럼 작은 봉들이 많다. 하지만 통칭 하나의 산으로 보는 것이 무방하다. 너무나 세밀히게 산경을 만들고 있지만 덩치가 큼직하므로 조잡하지 않다. 여름날 이런 돌을 마루 구석진 곳에 세워두고 부채로 설렁설렁 바람을 부치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보는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기암괴석이다. 동굴이 깊이나 있고 산자락은 절벽과 괴기스런 모습으로 휩싸여 있다. 등줄기는 뼈가 앙상하다. 누 억년전 지구가 생성될 당시, 큰 기압에 눌려 변성이 이루어지면서 만들어진 과정이 선연하다. 뒤틀리고 눌리고 찢겼다. 그럼에도 초코석이라도 피부가 부드럽고 미려하다. 바위경으로 볼수 있지만 산수경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중간에 뚫린 천연동굴이
눈 내린 설산위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어둠이 주변에 잘 내려앉은 시점이라 달빛이 유난히 밝다. 한해의 소원이라도 빌면 받아줄 요량이다. 월석은 대체로 오석에 흰돌이 둥글게 박혀 있는 형상을 가리킨다. 달이 뜬 모양새다. 이 돌은 월석가운데 참으로 잘빠진 돌이다. 덩치도 그렇고 산경도 그러하며 달의 크기도 참으로 넉넉하다. 산꼭대기를 구름이 휘감고 있는
독수리 형상을 한 오석이다. 독수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 눈을 부라리고 먹이를 노려보는 모습이다. 앙칼진 맛은 없다. 도리어 넉넉하고 품격이 있다. 바다에서 채취한 돌이라 석질은 강돌 같지 않다. 그럼에도 피부가 곱고 매끄럽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독수리보다 사람에 가깝다. 코와 두툼한 입술이 선명하다.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독수리인 셈이다. 돌을 보고 상
거칠게 생긴 단봉석이다. 천애의 절벽이 앞을 가로막아 아이거 북벽을 연상케 한다. 꿈틀거리는 주름 절벽은 힘의 결정인 듯 강하다. 초코석 특유의 피부가 살아있어 촉감이 좋고 색감이 미려하다. 이런 돌은 그냥 추상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막빚은 듯 하면서도 질서가 있고 한덩어리 바위에서 떨어진 듯하면서도 자연미가 있다. 남한강돌 특유의 힘이 느껴진다.
남한강산 초코 호수석이다. 호수석은 돌 가운데 물이 고임으로써 호수를 연상시키는 돌이란 의미다. 이 돌은 초코석 특유의 부드러움과 색감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아울러 중간에 널찍한 호수가 형성되어 있고 그 옆으로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싼 형상을 하고 있는 돌이다. 형상이 다기하고 용모가 빼어나며 품격이 넉넉하다. 그야말로 명석이다. 기암괴석들이 군
초콜릿으로 빚은 언덕처럼 생긴 돌이다. 경치로도 볼수 있고 추상으로도 볼 수 있다. 피부가 초코석 특유의 미려함이 있어 부드럽고 아름답다. 덤직한 크기에 완곡하게 굽이진 주름이 당당하다. 한 점의 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묵직한 기운이 느껴진다. 누 억 년의 세월이 뒤엉킨 결정을 보는 듯하다. 이런 돌은 입석으로 세워놓아도 좋다. 집 한편에 이런 돌 한 점
참으로 넉넉한 물형석이다. 어머니가 가슴에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식을 품에 안고 앉은 모습 같기도 하다.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이 너무나 애틋하여 천년이 지난 뒤 바위가 되어 눈앞에 나타난 모습이다. 말 없는 돌조차 모자간의 지정을 아는 듯하다. 물형석은 이렇듯 손에 잡힐 듯 만져지는 맛이 있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머리를 보면 인간의
넓적하게 생긴 오석에 산경이 그려진 돌이다. 산이 오묘하리만큼 잘 그려졌다. 주봉 머리위에는 달이 둥글게 떠있고 산의 양 갈래로 능선을 따라 작은 산들이 이어져있다. 한여름 밤 보름달을 보는 느낌이다.처음 수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돌 중 하나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돌은 물형석이다. 그 무엇을 닮은 돌을 말한다. 다음이 어떤 그림이나 모양이
남한강돌 특유의 요철이 두드러진 초코석이다. 전체의 풍경은 기암괴석이 뒤엉킨 산경이다. 거친 절벽과 깊은 계곡과 가파른 언덕이 함께 어우러진 수석이다. 피부가 고운반면 계곡이 깊어 손끝이 닫지 않는다.이런 돌은 감상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천태양상을 내보인다. 휘어지고 솟고 누운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다. 산세를 아래에서 지켜보면 가히 과오가 눌릴 정도로 잘생
운보는 빨래하는 아낙들의 그림을 자주 그렸다. 그 모습을 통해 한국적인 풍광을 그리려 했겠지만 그보다 그 속에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 녹이려 했으리라. 7세 때 장티푸스를 앓아 말을 못하게 되고 청각마저 잃었을 때 그를 가슴에 안고 키운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그 마음이 그의 그림 곳곳에는 묻어난다. 이 작품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시골 아낙들의
봉 하나가 불끈 솟아 있고 그 주변을 넉넉한 언덕이 감싸고 있는 풍광이다. 솟아오른 돌의 힘이 가히 장대하다. 지표를 뚫고 올라온 마그마와도 흡사하다.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이런 돌은 안방 머리맡 장식장위에 올려두고 감상하다보면 스스로 힘을 느끼게 된다. 오석의 색감과 피부가 한몫을 한다. 언덕도 넉넉하다. 산을 찾은 나그네가 오르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운보의 청록산수가 가지고 있는 상쾌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높은 산과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 그리고 그 옆에 비켜선 사찰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소를 탄 초동들의 담소는 봄꽃만큼이나 화사하게 귓가에 들린다.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는 숨은 의미를 찾는 것도 좋지만 보이는 것 자체를 깊이 즐기는 것도 좋다. 멀리 보이는 산은 신선이라도 나올 듯 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