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오석이다. 이를 고평원이라고 말한다. 높은 평원이란 뜻이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평원이다. 멀리 낮은 산이 구릉처럼 흐르고 그 앞에 말을 달리기에 충분한 평원이 있다.우리는 실생활 속에서 말달릴 만한 평원을 구경하기 쉽지 않으므로 돌을 통해 광야를 본다. 평원경의 묘미는 그곳에 있다. 평원경의 돌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은 운보가 73세 되던 1986년도에 그린 작품이다. 여름날의 풍광이 잘 나타나있다. 마을 청년들은 개울에서 천엽을 하고 소를 모는 초동은 소나무 그늘아래 앉아 피리를 불고 있다. 멀리 청록으로 드리워진 산에서는 폭포가 힘차게 쏟아지고 희미한 안개 속으로 기러기 암수가 날고 있다. 청록으로 표현된 먼 산의 능선이 시대적 변화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힘
피부가 유난히 곱고 색감이 유려한 초코석 단봉이다. 단봉은 봉이 하나인 산이란 의미다. 강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을 법한 돌이다. 하지만 탐석 행을 통해 돌을 얻고 그것을 갈고 닦다보면 명석이 된다. 수석은 이처럼 발부리에 걸리는 흔한 돌조차 그 돌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생명력을 일깨우게 된다. 살아있는 돌이 되도록 한다는 말이다.그러고 나면 정말 그 돌
대형 화폭에 목단이 넉넉하게 피어있는 모습이다. 핑크빛 꽃잎 가까이에 암수 한 쌍의 벌들이 봄날의 따사로움을 즐기며 바쁜 날개 짓을 하고 있다. 목단은 본래 부귀의 상징이다. 목단이 부귀를 상징하는 것은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넉넉한 외양 때문일 것이다. 화단에 핀 꽃 중에서는 가장 크고 잎도 풍성하다. 목단에는 본래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다. 중국에서부터
수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닮았다고 볼 것이다. 그렇게 보아도 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남녀가 탱고를 추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한 팔은 들어 올려 손을 맞잡고 다른 손은 상대의 어깨를 감싸고 돌아가는 모습이 춤추는 이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오석의 질감이 돋보이는 점도 이 돌의 멋이다. 돌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모양도 다르
운보 김기창은 이당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워 18세 때 조선미술전람회 약칭 선전에 첫 입선했다. 곧이어 소질을 발휘하여 내리 4회를 특선했으며 24세 때는 선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언어를 잃고 청각마저 잃은 젊은이로서 의지가 참으로 대단했다. 이 때는 김은호의 영향으로 정확한 선묘와 설채를 바탕으로 한 인물화와 자연풍경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미인도가 여기에 속한다. 이 작품은 1930년부터 40년대 초에 그려진 것으로 초기 운보 그림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특히 그림에 남긴 호는 운포(雲圃)로 되어있다. 어머니가 처음에
남한강 초코석으로 이만한 돌을 보기 힘들다. 몸을 뒤틀며 하늘로 오르려는 한 마리의 용처럼 기상이 살아있다. 귀를 기울이면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웅비의 자태가 범상치 않다.석질도 이만하면 나무랄 것이 없다. 천년의 갑옷을 두른 모습도 당당하다. 물형으로 보지 않고 추상으로 보아도 좋다. 만고풍상을 견디며 살아온 늙은 소나무를 보는 듯도 하다
이 작품은 성격상 해방 이후 운보가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던 때의 그림이다. 선이 날렵하고 풍속화답지 않게 세련미가 돋보인다. 내용은 김치 담그는 날. 안채 앞마당에 광주리를 펼쳐놓고 아낙들이 김치를 담고 있다. 한쪽에서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주물고 다른 쪽에서는 그 속에 붉디붉은 고춧가루 양념으로 속을 넣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참으로 피부가 아름다운 돌이다. 손을 대면 아기의 속살처럼 부드럽다. 미석에 가까울 정도로 선명한 아름다움을 준다. 소장자는 오른쪽 옆면에 있는 문양이 강아지를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문양석으로 본단다. 그래도 무방하지만 추상석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입석은 공간의 구석진 자리를 메우는 장식물로도 그만이다. 거실의 구석진 곳에 버티고 선 입석을 보면 지킴이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봄날은 아름답다. 햇살은 따사롭고 저 멀리 언덕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훈훈하다. 이맘때 아낙들은 누구랄 것 없이 바쁘다.자식들에게 갓난아기를 업혀두고 겨우내 묵혀 두었던 빨래를 해야 한다. 일손이 남으면 봄나물도 뜯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남정네들의 나른함은 사치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그런 봄날의 풍광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입석은 말 그대로 세운 돌이다. 돌의 형상이 길쭉하게 생긴 것은 세우는 것이 좋다. 물론 불안정한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서있는 것이 시원하다. 대체로 30㎝이상이면 세울만하다. 이 돌은 키가 43㎝에 달하니 입석으로 훌륭하다. 게다가 오석에 석질마저 좋고 피부가 고우니 사랑을 많이 받을만한 돌이다. 생김새도 이정도면 1품이다. 남한강돌로는 최상급이 아닐까
운보는 화가인 아내 박래현과 많은 실험적인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1970년대 아내와 사별한 후부터 그는 지극히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분출하여 바보화풍이라는 시리즈를 그리게 된다. 조선시대 민화의 현대적 해석으로도 풀이되는 바보산수 시리즈는 표현이 자유분방한 것이 특징이다. 일상적인 원근이나 형상들의 정형화된 인상들을 완전히 뛰어넘는 환상적인 자연세계를 그
서설이 날리는 겨울날 홀로 선 나무의 풍취가 돌의 표면에 그려진 문양석이다. 언 땅을 딛고 곧게 선 줄기가 힘차고 간결하게 뻗은 가지가 여려 보이면서도 정겹다. 차디찬 바람 속에 흩날리는 눈발을 온몸으로 맞고 선 나무가 오늘을 사는 민초들 같다. 문양석은 다양한 문양을 화석처럼 돌 표면에 드러내고 있어 재미있다. 그래서 처음 돌을 하는 사람들은 물형석이나
운보 김기창은 해방 이후 10년간 자신의 그림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일본식 화풍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우리 전통의 현대적 수용을 전제로 한 독자적 화풍 개발이었다. 화면을 극히 간결하게 표현하면서 대상의 리얼리티보다는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런 노력은 동양화단의 현대를 열어가는 획기적 시도로
남한강에서 채취된 고평원 오석이다. 기둥처럼 굳게 올라간 오석의 단면이 평안하여 평원을 연상시킨다. 절단된 종유석과 흡사하다. 하지만 오석으로 피부가 남달라 종유석과는 거리가 있다. 앉음세도 좋고 굳건한 기상이 넘쳐나는 돌이다.이런 돌은 평원석으로 보지 않고 추상석으로 봐도 문제는 없다. 추상석이 아무렇게나 생겨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하는
폭포에서 힘차게 쏟아진 물이 개울을 따라 시원스레 흐른다. 언덕에 뿌리 내린 소나무가 당차다. 그 소나무그늘에 앉아 선비들이 바둑을 두는 그림이다. 한담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한가롭다.숨막힐 만큼 바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나무그늘 아래 배를 붙이고 새 소리를 들으며 세월을 낚는 모습은 신선이 아니고서야 어찌
남한강에서 흔하지 않게 나오는 초코석이다. 초콜릿처럼 색감이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초코석은 질이 단단하고 색감이 유려하며 모양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대체로 피부가 곱기 때문에 손길이 자주 간다. 이 돌은 한 송이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형상으로도 볼수 있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봉우리 같기도 하다. 경치로 보면 산이 되고 형상으로 보면 불꽃형이 되는 셈이다. 돌은 보는 사람의 마음이 놀 수 있는 공간이기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즐기는 사람의 마음이다. 작품 문의: 성천문화원,042-823-8433, 010-3503-
76년 새해를 맞아 조랑말 두 마리를 그린 그림이다.운보는 말, 소, 부엉이 등을 중심으로 한 동물화를 많이 제작했다. 특히 말 그림을 즐겨 그렸다. 말이 대국적 스케일로 격동적 움직임을 통한 자유분방한 동작 표현을 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조랑말을 소재로 하고 있어 기존의 말그림과는 차별성이 있다.과감한 속필로 유희된 필선의 묘사력은
평원경은 평원을 넘어다보는 경치를 말한다. 뒤에 산이 있고 앞으로 널찍한 평야가 펼쳐진 풍경이다. 이런 풍광은 보는 이의 마음을 너그럽게 한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유난히 평원경을 좋아한다. 이 돌은 그런 평원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돌이다. 다만 평원이 높은 지역에 있어 고풍원이라고 부른다. 평원의 끝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곳으로 평야를 가로질러
청록산수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 스스로 창안한 화풍이다. 거친 필법과 단호한 판단으로 속도감을 더하며 심산의 분위기를 그려냄으로써 그 맛이 살아나는 작품이다. 세밀한 표현을 과감하게 생략한 탓에 한편 웅장하고 거칠면서 포근하다.개울가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초동은 소를 몰며 피리를 분다. 새들은 하늘을 날고 멀리 높은 산에서 초록의 바람이 분다. 계절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