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가(六歌)는 6수를 단위로 한 연시조다. ‘풍계육가(楓溪六歌)’는 ‘장육당육가(藏六堂六歌)’를 지은 이별의 조카 이정(1520~1594)의 작품이다.육가는 한시 계열의 노래와 우리말의 노래인 연시조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연시조 육가는 이별의 ‘장육당육가’ 계열과 이황의 ‘도산육곡’ 계열 등으로 나눠진다. 이별의 육가 계통은 주로 그 후손 이정·이득윤·이홍유 등으로 이어졌고, 이황의 육가 계통은 장경세·안서우·건구 등으로 이어졌다.이 ‘풍계육가’는 확실한 창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것
이휘일(1619~1672)의 시조 ‘전가팔곡(田家八曲)’은 1664년(현종5년) 45세 때에 지은 작품으로, ‘존재집(存齋集)’에 수록되지 않고 필사본으로 전해지다 1960년 김사엽에 의해 처음 세상에 소개됐다.단시조 8수가 연첩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의 ‘서전가팔곡후(書田家八曲後)’에 시조의 저작 동기가 밝혀져 있다.‘나는 농사짓는 사람은 아니나, 전원에 오래 있어 농사일을 익히 알므로 본 것을 노래에 나타낸다. 비록 그 성향의 느리고 빠름이 절주와 격조에 다 맞지 않지만 마을의 음탕하고 태만한 소리에 비하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설악산(雪岳山) 가는 길에 개골산(皆骨山) 중을 만나중더러 물은 말이 풍악(楓嶽)이 어떻더니.이 사이 연(連)하여 서리 치니 때 맞은가 하노라 개골산은 겨울 금강산의 이름이다. 금강산은 철마다 이름이 따로 있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다.금강산의 가을 절경을 문답식으로 표현한 시조로 구체적인 설악산 노정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설악산 찾아가는 길에 마침 금강산에서 오는 중을 만났다. 중에게 “가을 금강산의 경치가 어떠하뇨” 하고 물었더니 “요즈음 계속해서 서리가 내리니 때가
연(蓮) 심어 실을 뽀바 긴 노 부여 거럿다가 사랑(思郞)이 긋쳐 갈 제 찬찬 감아 매오리라 우리난 마음으로 매자시니 긋칠 쥴이 이시랴 김영(생몰년 미상)의 작품이다. 김영은 정조 때의 무신으로 무과에 등제해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무신으로 7수의 시조를 남겨놓았다. 이 작품은 현실 생활에 가까이 있는 연, 노끈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소재로 삼았다. 연을 심고 그 연대에서 실을 뽑아 긴 노끈으로 비벼 만들어 걸어 놓았다가 사랑이 그쳐 갈 때 찬찬히 감아 매리라. 우리는 마음으로 맺었으니 사랑이 그칠 리야 있겠느냐. 마음으로 맺
거믄고 술 꼬자 노코 홀연이 잠을 든 제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에 반가온 벗 오난고야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몬져 내여라노가재 김창업(1658~1721)의 시조다. 그는 명문 거족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벼슬에 뜻이 없어 일생을 출사하지 않고 은거, 전원 생활을 하며 살았다.거문고 연주하다 술대 꽂아 놓고 홀연 낮잠이 들었는데 사립문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술깨야 니러안자 거믄고를 희롱하니창밧긔셧난 학이 즐겨셔 넘나난다아해야 나믄술 부어라 흥이 다시 오노매라술에 취해 있다 다시 깨어나서 거문고를 연주하니 창 밖에 있는 학이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덩실덩실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아이야, 남은 술을 부으려무나 흥이 절로 나는구나.술과 거문고를 즐겼던 당시 사대부인 경화사족(京華士族)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년의 다기(多氣)하여 공명(功名)의 우의(有意)터니중년의 깨달아자 부운(浮雲)이라송하(松下)의 일당금서(一堂琴書)가 내 분(分)인가 하노라 다기는 마음 단단하여 웬만한 일에는 두려움이 없음을 말하고, 일당금서는 한 집과 거문고와 책을 말한다.젊은 시절엔 혈기가 왕성하여 공명에 뜻을 두었는데, 중년이 되어 깨닫고 보니 공명은 뜬구름이라. 큰 소나무 아래 초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임이 나를 앗기시매 나도 임을 공경터니 은혜를 못다 갑고 나망(羅網)의 걸녓도다 언제나 인간의 어즈러운 말리 젹어임은 철종을 말한다. 임이 나를 아끼고 나도 임을 공경했는데 은혜를 다 갚지 못하고 그만 그믈(‘그물’의 옛말)에 걸렸도다. 언제나 인간의 어지러운 말이 적어…. 종장 끝 소절이 생략돼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안민영의 승평계 ‘우산에 지는 해를’우산(牛山)에 지는 해를 제경공(齊景公)이 우럿더니공덕리(孔德里) 가을 다를 국태공(國太公)이 늣기삿다아마도 고금영걸(古今英傑)의 강개심회(慷慨心懷)는 한가진가 하노라우산에 지는 아름다운 해를 보며 제나라 제경공이 울었더니, 공덕리의 가을 달을 대원군이 바라보며 느끼셨다.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권섭의 「황강구곡??‘하늘이 뫼를 열어’「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는 1752년(영조 28) 82세 때 옥소 권섭이 황강을 배경으로 백부인 한수재 권상하의 뜻을 시가로 남기고자 지은 구곡체의 연시조다. 총 10수로 권섭이 지은 시조 75수 중 가장 나중에 창작됐다.권상하는 1675년 송시열이 유배를 가게 되자
하규일 시조 ‘우연히 잠두에 올라’하규일은 서울 출신으로 호는 금하(琴下)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하중곤을 거쳐 최수보 아래에서 사사받아 대성한 일제강점기 가곡계의 거장이다. 하중곤은 하규일의 숙부로 박효관과 쌍벽을 이루는 당대 가객의 대가였다. 가곡의 명창 하순일과는 사촌 간이다. 그는 관계(官界)에 진출해 한성부윤&
윤순의 시조 ‘내 집이 백학산중’내 집이 백학산중(白鶴山中) 날 찾을 이 뉘 있으리입아실자(入我室者) 청풍(淸風)이요, 대아음자(對我飮者) 명월(明月)이라정반(庭畔)에 학배회(鶴徘徊)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윤순은 때때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 지은 것이라 생각된다. 윤순은 조선시대 양명학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이하응의 시조 ‘휘호지면하시독’ 휘호지면하시독(揮毫紙面何時禿)고 마묵연전필경무(磨墨硏田畢竟無)라묻노라 저 사람아 이 글 뜻을 능히 알따기인(其人)이 완이이소(宛爾而笑)하고 유유이퇴(唯唯而退) 하더라붓을 종이에 내두르니 어느 때나 모지라질까? 먹을 벼루에 가니 끝내는 달아 없어지리라. 묻노라 저 사람아, 이 글의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신헌조의 사설시조 ‘각시네 더위들 사시오’ 각시네 더위들 사시오 일은 더위 느즌 더위 여러 해포 묵은 더위오륙월 복 더위에 정(情)에 님 만나이셔 달 발근 평상(平牀) 우희 츤츤 감겨 누엇다가 무음 일 하엿던디 오장(五臟)이 번열(煩熱)하여 구슬땀 들니면서 헐덕이난 그 더위와 동지달 긴긴 밤의 고은 님 픔의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신헌조의 시조 ‘이몸 나던 해가…’이 몸 나던 해가 성인(聖人) 나신 해올러니존고년(尊高年) 삼자은언(三字恩言) 어제런 듯하건마는어찌타 이 몸만 살아 있어 또 한 설을 지내는고.충(忠)을 노래한 시조로, 정조 임금에 대한 추모의 시조다. 자신과 임금이 같은 해에 태어난 것을 남다른 인연으로 생각하
장시조 '져 건너 월앙 바회…' 옛사람 이르는 말이 남의 남편의 첩이 되면 몹시 잔밉고도 얄미우며 온갖 간사한 꾀로 환심을 사려고 하는 젊은 첩년은 급살 맞아 죽는다더라. 첩이 대답하기를 아내님 망녕된 말 마시오. 듣자하니 남편 박대하고 첩 심히 시기하시면 늙은 아내님이 먼저 죽는다더라.처와 첩 사이의 갈등이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신웅순 교수 신정하의 ‘간사한 박파주야…’간사(諫死)한 박파주(朴坡州)야 죽으라 설워마라삼백년 강상(綱常)을 네 혼자 붙들거다우리의 성군 불원복(不遠復)이 네 죽긴가 하노라간사(諫死)는 ‘임금님께 간하다가 죽임을 당한다’라는 뜻이다. 박파주는 박태보가 파주목사(坡州牧使)를 지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
신웅순 교수 효명세자의 시조 ‘금준에 가득한 술을…’금준(金樽)에 가득한 술을 옥잔에 받들고서심중에 원하기를 만수무강 하오소서남산이 이 뜻을 알아 사시상청(四時常靑)하시다순조의 40세 탄신연에서 부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효명세자의 축수가(祝壽歌)로 금항아리에 가득한 술을 옥잔에 받들어 올리면서 마음속으로 원하나니 만수무
신웅순 시인 맹상군가 ‘천추전 존귀키야’ 천추전(千秋前) 존귀키야 맹상군(孟嘗君)만 할까마는 천추후(千秋後) 원통함이 맹상군이 더욱 섧다식객(食客)이 적돗던가 명성(名聲)이 고요턴가 개 도적 닭의 울음 인력으로 살아나서 머리 희어 죽어지어 무덤 위에 가시나니 초동목수들이 그 위로 거닐면서 슬픈 노래한 곡조를 부르리라 혜었을까 옥문조
신웅순 중부대 교수 만횡청류 ‘청천에 떠있는 기러기’ 청천에 떠 있는 기러기 한 쌍 한양성대(漢陽城臺)에 잠깐 들러 쉬어가겠느냐이리로서 저리로 갈 때 내 소식 들어다가 님에게 전하고 저리로서 이리로 올 제 님 소식 들어 나에게 부디 들러 전하여 주렴우리도 님 보러 바삐 가는 길이니 전할지 말지 하여라‘청구영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