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 위왕에 등극하다.(2)

오늘날 장수시대를 살다보니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은 그냥 옛이야기이고 유방백세(流芳百世)가 우리 앞에 놓인 밥상과 같다. 그만큼 세상은 사람의 생명까지도 사람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삼국지를 통하여 옳고 바르게 살다가 죽는 법을 체득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생명이 존귀하다 하더라도 송장으로 백년을 살면 무엇하랴.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백세를 살면 무엇하리. 참 생명은 내가 나를 주장하며 많은 사람에게 유익된 삶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조조의 삶이나 운장의 삶이나 다 살상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러나 그 살상이 대아를 위한 살상이었다. 참으로 만백성을 안심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해서는 작은 희생이 필요하다 하여 저지른 살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저 먼 역사에 이야기를 남기며 사라졌다.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되어 잔잔하게 우리의 몸과 마음에 물결친다.

천하인 조조의 사나이다운 매력과 놀라운 지혜와 용기와 투쟁심은 태양마저 불태울 것 같다. 또 운장의 매력은 불굴의 의지력이 그것이다. 별 볼 일 없는 현덕에게 바치는 그 정성이며 그 절개며 그 의리는 빗물이 땅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지각을 뚫고 오르는 샘물의 용솟음에 비유하고 싶다. 5관 6참장을 하며 도원의 결의를 지켜야 한다는 절개와 의리가 그에게는 충의예지신(忠義禮智信)으로 똘똘 뭉쳐진 화신이라 하여 마땅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조조가 믿고 아껴준 우금이 수난을 만나 포로가 되고 운장에게 목숨을 비는 모습은 천하영웅 여포의 죽음을 방불케 한다.

결국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죽을 목숨을 빌어서 몸과 이름을 헌 신발처럼 더럽히고 죽어야 하는 우금과 여포의 마지막 가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기왕지사 한번은 죽을 인생인데 어찌 역사 앞에 부끄러운 몸을, 이름을 남기고 간단 말인가!
그러나 이들은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어 볼 때 한바탕 바람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의 충과 성을 가지고 살다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이 말이 꼭 알맞은 사람들이 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마라!’
이 말을 달리 말하면 사람은 도와주고 거두어 주어도 은혜를 모른다. 그러니 사람을 믿지 마라! 는 말이 된다.
그래서 그럴까? 요즘 애완용 동물 납골당을 많이 보게 된다. 믿지 못할 사람보다 애완용 짐승이 더 낫다는 생각에서 그런 모양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많아지기에 그런 모양이다. 슬픈 일이다.

아무리 민주평등사회요. 물질만능의 산업사회라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빌 곳이 없는 무한 죄인이 될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주인의 기술을 내다 팔아먹는 사람이 있다. 주인의 약점을 잡아서 이것을 이용하여 돈을 챙기려는 사람이 있다. 주인이 믿는 그 마음을 이용하여 주인의 재산을 송두리째 가로챈 파렴치한이 있다.
삼국지는 그런 사람의 말로를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차원에서 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특히 주인의 첩과 놀아나다 주인의 약점을 가지고 출세하려던 치한에 대하여 하늘을 대신하여 징치한다. 주인의 나라를 팔아먹는 치한도 마찬가지로 징치했다.

그런 면에서 조조는 아주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의 혈통을 타고난 조비 역시 아비 조조 못지않은 두뇌의 소유자인 모양이다. 판단력이 뛰어난 조비다.
위왕 조조의 차자 언릉후 창이 10만 대군을 형 조비에게 맡기고 언릉으로 돌아가자 상국 화흠이 조비에게 아뢰기를
“언릉후는 천명에 순응했습니다. 하오나 임치후 식과 소회후 웅은 분상도 아니하고 소식조차 없으니 당연히 죄를 물어 기강을 바로 잡으십시오.”

조비는 화흠의 말을 좇아 사신을 두 곳에 보내 분상치 아니한 죄를 물었다. 본래 나약하고 겁 많은 소회후 웅은 사신이 전하는 말을 듣고 안절부절 못하였다. 특히 창이 10만 대병을 바쳤다는 말에 크게 놀라하더니 캄캄한 밤에 뜰로 나가 목을 매어 자살해 버렸다.
사신은 아침에 일어나 웅이 자살한 사실을 알고 돌아가 조비에게 사실대로 고하였다. 그러자 조비는 아우의 죽음을 겉으로 나마 슬퍼하며 직위를 한등급 올려 소회왕으로 봉해 주었다.
‘죽어서 왕이 되면 무엇 하나! 허망한 인생일러라!’

소회후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그 다음날 임치후 조식을 찾아간 사신이 돌아와 조비에게 아뢰기를
“임치후는 날마다. 정의, 정이 형제와 더불어 술만 마시어 작취미성(昨醉未醒)의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신이 칙명으로 임치에 갔으나 식은 단좌부동(端坐不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곁에 있던 정이는 말하기를 <본시 선왕께서 식을 세자로 봉하려던 것을 간신들이 세자자리를 금상을 주었다. 헌데 문죄라니 말이 되는가?> 라고 오히려 욕하고 다시 또 <우리 주인의 총명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무능한 조비를 왕으로 세웠으니 묘당의 신하들이 인재를 몰라보는 처사를 행하였다.> 호통을 치자 임치후가 덩달아 성을 내며 명하기를 <저 사신인가? 뭔가? 하는 놈을 두들겨 패서 내어 쫓아라!> 하니 무사들이 몽둥이로 신의 머리를 패서 어지럽게 내어 쫓았나이다.”

조비는 사신의 말을 듣고 크게 분개하여 허저에게 명하기를
“허저는 호위군 3천 명을 거느리고 임치로 가서 조식의 무리를 잡아오라!”
허저가 명에 따라 임치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그러나 수문장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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