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방분권 통해 지방시대 열자 - ① 한국 지방분권의 현 주소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대한민국 개국이후 현재까지 500여 년간 한국의 중심은 서울이었다. 한양 등 다양한 명칭이 존재했지만 서울이 한국의 중심이자 정치, 금융의 중심인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서울에 비해 발전이 늦을 수밖에 없었고 재정적 여유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1999년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지방분권이라는 의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역대 대통령들은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실행키 위해 노력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올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도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지방분권 실현은 아직 제대로 된 발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가까운 일본은 1800년대부터 시작된 지역통폐합을 시작으로 지방의 세를 불려왔고 지방분권을 위해 한 걸음 씩 나아가고 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떼려는 한국의 지방분권 실현을 위해 충남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금강일보는 5편의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한국 지방분권의 현 주소

② 일본의 지방분권

③ 행정구조 개편으로 지방분권 실현한다

④ 주민참여 활성화가 지방분권의 밑거름된다

⑤ 한국의 지방분권,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은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미국의 위대한 재능은 지방분권으로부터 나왔다”고 서술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잘나가는 선진국들은 지방분권을 실현하고 있고, 한국과 가까운 일본도 지방분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방분권을 위한 법률인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지난 1999년에 제정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결과물이 가시화되지 못 한 상황이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지방분권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는 “21세기의 지방분권은 국민 행복으로 가는 통합의 길이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귀결점”이라며 “지방분권은 지방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세계사적 흐름”이라고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1999년 지방분권을 위한 법률이 제정됐고 안 지사를 비롯한 많은 지역자치단체장들이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방분권은 아직까지 크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한국 지방분권이 걸어온 길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은 장기간의 중앙집권 체제 하에서 대부분의 행정기능이 중앙정부에 귀속됐다. 이는 지방자치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중앙정부는 지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지방이양합동심의회’를 구성해 행정기능의 재배분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분석한 이후 1999년 국민의 정부시절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중앙행정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방이양합동심의회의 법적 근거 및 위상과 심의회의 운영방식 등에 관한 법적 제도적 장치의 부재로 인해 행정사무의 지방이양이 효과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지방이양합동심의회는 강제력이 없어 중앙부처가 반대하거나 소극적 자세를 보이면 효과적인 이양을 실행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2003년 참여정부에 들어서자 지방분권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해 47개의 지방분권 과제를 선정했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들어서면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차원에서 세종시 설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지방분권 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20개 과제를 지방분권의 중점과제로 선정했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설치라는 성과를 통해 지방분권의 첫걸음 실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이는 참여정부 시절에 대부분 논의된 것이고 세종시 설치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으로 인해 원활히 추진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정권 말에는 무상보육 등 복지가 크게 화두로 떠오르면서 지방분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은 1999년 이후 현재까지 3개의 지방분권 관련법에 기초해 거창하게 지방분권을 추진한 셈이다.

◆한국 지방분권의 현 주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올해 역시 화두는 지방분권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18대 대통령선거 후보시절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지방세 비중 지속 확충 ▲지방재정조정제도를 통한 불균형 조정 ▲국가 보조율 인상 방안 적극 검토 ▲지방재정 건전성 악화 대책 마련 등을 약속했다. 또 ▲재정자립도 향상 ▲지역 간 재정격차 해소 ▲효율적인 재정 운용 ▲투명한 재정운용 등을 지방재정 4대 목표로 설정했고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 중심으로 세제개편도 약속했다. 재정적 독립이 지방분권의 핵심이라는 점을 박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분권을 위한 뚜렷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지역은 안중에 없이 수도권 집중으로 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5대 국정목표, 21개 국정전략, 140개 국정과제에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후순위로 밀렸고 지역공약은 아예 국정과제에서조차 제외됐다. 이번 정부에서도 지방분권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재정권 보장과 세제개혁 등 재정분권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재정을 옥죄는 정책들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시책이 부동산 감세정책과 영유아 무상보육이다.

부동산 감세정책은 중앙정부 몫인 국세는 그대로 두고 지방자치단체 몫인 취득세만 깎아주는 정책으로 지방 세수가 감소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도입한 영유아 무상보육 사업도 관련 예산 50∼70%를 지방자치단체로 떠넘겨 지방 재정 부담을 가중시켰다.

지방분권의 핵심이 될 재정분권은 박근혜 정부에서 실현될 지는 미지수이다.

◆지방분권, 왜 결과가 없는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지방분권특별위원회 등 지방분권을 위한 다양한 기구들이 있지만 지방분권과 관련한 정부기구로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유일하다.

하지만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주도적으로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는 어려운 것 이 사실이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정부기구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갈 수밖에 없고, 과거를 돌이켜 봐도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이전 기구인 지방이양추진위원회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등 지방분권 추진·자문기구들의 지방분권 추진 성과가 미흡했다. 이는 분권과제 추진 과정에서 이견을 조정할 수 없는 자문기구로서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국회 내 소관 상임위원회가 없는 것도 지방분권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관계부처 장관과 전국 시도지사가 함께 참석하는 ‘중앙-지방 협력회의’ 신설과 시도지사협의회장 국무회의 배석을 주장하고 있다.

또 지역발전위원회 등 지방관련 위원회를 지방분권촉진위원회로 통합, 대통령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확대 개편하고 국회 내 ‘지방분권특별위원회’ 설치 등도 건의한 상태이다. 여기에 지방분권 단체들은 ▲행정위원회로 대통령 직속 지방분권발전위원회 설치 ▲중앙주도에서 지방주도로의 지역발전위원회 전환 ▲지방분권 발전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 같은 요구는 지금까지 중앙과 지방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 지방정부의 의견의 중앙에 재대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행·재정을 간섭하지만 지방정부의 의견이 중앙정부에 전달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창구는 없다.

지방분권 추진 기구가 행정기관과 국회 내 상설기구로 신설돼야 하는 이유이고 이들의 역할 미미하기 때문에 지방분권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본 기획취재는 충남도의 ‘지역언론지원사업’ 기금을 지원받아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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