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방분권 통해 지방시대 열자 - ② 일본의 지방분권

전국시대, 사무라이 중심 지방영주 득세 19세기 이후엔 근대국가 건설 등 이유로
메이지헌법 발효 후 집권체제수립했지만 2차 세계대전서 패배 중앙집권 몰락이 길
소련 붕괴 등 대·내외적 시대흐름 타고 분권 개혁 급물살 1999년 일괄법 제정
중앙정부 대한 감시활동 등 가능해졌고 2차 개혁 이후 분권 관련 대화의 장 마련 

한국과 일본의 지방분권 정책을 비교·분석하면 정책환경과 정책주체, 분권개혁의 과정 등에서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한국과 일본의 중앙집권체제는 근대국가의 완성과 경제발전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졌는데 모두 중앙집권 체제하에서 관료의 정책적 지위가 확보됐고 정책의 전략이 대부분 관료들에 의해 수립됐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의 경우 ‘지방분권추진위원회’, 한국의 경우 ‘지방이양추진위원회’라는 기구를 설치해 지방분권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관료의 영향력은 지방분권의 심의 과정에 두드러지며 핵심 업무로 간주되는 사무는 비록 지방정부가 수행하는 것이 타당할지라도 중앙정부 관료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다만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약 50년 앞서 지방분권을 시도했고 한국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보다 지방분권을 먼저 시도한 일본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글 싣는 순서

① 한국 지방분권의 현 주소

② 일본의 지방분권

③ 행정구조 개편으로 지방분권 실현한다

④ 주민참여 활성화가 지방분권의 밑거름된다

⑤ 한국의 지방분권,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집권과 분권, 반복의 역사
일본은 역사적으로 분권과 집권을 진행해 왔다.

전 세계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 역시 부락 중심의 분권체제에서 출발했고 이는 4~5세기까지 이어지면서 미약하나마 지방분권체제를 갖췄다.

7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당시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이었던 중국의 중앙집권체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의 선진문물을 일본 전역에 빠르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체제가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9세기부터 일본의 무사인 사무라이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한 지방영주들의 권력이 강해졌고 이는 전국시대를 도래하는 계기가 됐다.

광란의 전국시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막을 내리고 다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형성됐다. 히데요시는 이를 통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 당시 조선을 침공했으나 패했고 전시 중 병으로 사망하면서 일본은 다시 분권의 길로 들어섰다.

19세기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후 일본은 근대국가의 건설을 위해 1890년 11월 메이지헌법 발효를 통해 다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했지만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중앙집권은 다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일본은 1981년 ‘임시지방행정조사회’를 시작으로 1983년 ‘제1차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1987년 ‘제2차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1990년 ‘제3차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등의 활동을 중심으로 일본 내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러한 논의는 현재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꾸준히 이루어 지고 있다.

◆일본의 미국식 지방분권제도 이식 시도
끊임없는 집권과 분권의 역사를 지닌 일본이었지만 본격적인 지방분권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보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이 시기 일본의 지방분권 시도는 제도적 장치 추진과 유럽의 지방분권을 이식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등 현대적인 지방분권 시도라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선언한 일본은 전쟁이 종료된 이듬해인 1946년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국헌법’을 통해 현대적인 지방분권을 시도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부였던 미국에 의해 일본은 미국식 지방분권제도의 이식을 시도했다.

당시 미국식 지방분권제도 이식을 위해 제안된 이론은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중앙정부, 광역지방정부, 기초지방정부의 사무가 명확히 구분되었다는 점을 전제로, 기초지방정부인 시·정·촌은 고정자산세, 광역지방정부인 도·도·부·현(都道府県)은 부가가치세, 중앙정부는 소득세가 주축이 돼야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안이었다.

두 번째 제안은 일본의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하부행정기관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정부 간 기능 재편을 제안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논의하기에는 환경적, 제도적으로 불가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지방분권을 위한 움직임

본격적인 지방분권의 움직임은 1980년대 들어서 시작됐다.

1981년 ‘임시지방행정조사회’를 시작으로 1983년 ‘제1차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1987년 ‘제2차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1990년 ‘제3차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등의 활동을 중심으로 일본 내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 대·내외적인 시대적 상황도 지방분권 개혁을 촉진시켰다.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체제를 상징하는 미국과, 공산국가 및 중앙집권체제를 대표하는 소련의 냉전체제가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렸고 대내적으로는 일본의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표출된 ▲정치행정 개혁 요구 ▲복지국가 패러다임 변화 ▲노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 마련 촉구 등 국민들의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가 대두됐다. 이렇게 지방분권에 대한 욕구가 표출되고 일본 내 지방분권 논의가 계속되면서 1995년 ‘지방분권추진법’과 1999년 ‘지방분권일괄법’이 제정되는 결실을 맺었다.

지방분권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일본 지방분권의 근간이 된 제1차 지방분권개혁
1995년부터 1999년 일본은 제1차 지방분권개혁이 추진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일본은 지방분권의 근간이 되는 지방분권추진법과 지방분권일괄법을 제정했다.

1995년 지방분권추진법은 ▲국가와 지방의 관계는 대등·협력관계 ▲국가와 자치단체의 역할 분담·지방분권의 추진에 관한 국가의 시책·지방세 재원의 충실한 확보·자치단체의 행정 체제 정비 및 확립에 관한 지방분권추진에 관한 기본 방침 ▲지방분권추진위원회 설치 ▲정부는 지방자치추진계획 작성 등이 골자로 이에 따라 지방분권추진위원회가 생겼다.

추진위는 국가로부터 권한·재원을 지방에 위임하고 국가의 관여를 축소함으로 행정 시스템의 간소화·효율화를 꾀함과 동시에 지방 공공단체가 주민과 관련된 사무를 자주적, 자립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총 5차의 권고를 통해 지방분권의 근간을 마련했다.

1999년 일본은 지방분권일괄법 제정을 통해 지방분권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이 법을 통해 일본은 중앙정부에 대한 감시활동이 가능해졌고 행정구조 개편과 재원 확보방안의 토대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지방분권추진법과 지방분권일괄법을 통해 일본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기관위임사무제도’의 폐지이다. 기관위임사무를 통해 지방의회는 조례 제정권을 행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의 조사 및 감독권 역시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대표적 사례로 지적돼 왔고 기관위임사무제도 폐지로 인해 지자체는 중앙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제2차 지방분권개혁
1차 지방분권개혁을 통해 기관위임사무제도를 폐지한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지방분권의 고삐를 더욱 죄였다.

제1차 지방분권개혁에 이어 일본은 지방재정구조를 개선하고자 ‘2차 지방분권개혁’을 실시했다. 이때 중점적으로 다뤄진 내용은 국세와 지방세간 세원이양과 국고보조금 개혁, 지방교부세 개혁 등을 동시에 개혁하고, 중앙과 지방의 40:60 세출구조에 적합한 세수구조의 재정비, 즉 삼위일체개혁이 추진됐다.

삼위일체 개혁이라 불리는 제2차 지방분권개혁의 가장 큰 성과는 중앙과 지방 간 협의의 장이라 불리는 중앙·지방정부협의회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접 협의하는 대화의 공식창구가 마련됐고 지방정부는 지방분권에 대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중앙정부에 건의할 수 있게 됐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본 기획취재는 충남도의 ‘지역언론지원사업’ 기금을 지원받아 이루어졌습니다.

수치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평가기준이다. 어떠한 것을 서로 비교할 때 이 수치는 절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57:43인 일본과 79:21인 한국을 서로 비교했을 때 일본의 지방분권, 그 중 핵심인 재정분권은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있다고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57:43이다. 미국은 56:44, 독일은 50:50이다. 일본보다 재정분권이 잘 돼 있는 G20 소속 국가는 프랑스(25:75)가 유일하다”며 일본 지방분권을 수치화해 설명한 시즈오카현의 모토히코 모리(森 統彦) 지방분권 담당은 지방분권의 핵심을 중앙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이라고 강조한다.

모리 지방분권 담당은 “일본의 제1차 지방분권개혁이 기관위임사무폐지라는 성과를 도출했다면 제2차 지방분권개혁은 중앙과 지방 간 소통창구마련과 재정분권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 등을 꼽을 수 있다”며 “특히 재정분권을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세 비율을 높이도록 설득한 것은 가장 최대의 성과”라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지방세 비율이 높아지면서 자연적으로 각 지역자치별로 경제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고 이는 일본의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즉, 지방분권이 국가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부작용은 발생했다. 무분별한 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터무니없이 지출을 감행하는 지자체가 발생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바리시(夕張市)이다. 탄광이 발달했던 유바리시는 탄광산업에 대한 비전이 점점 사라지자 관광도시로의 탈피를 시도했다. 유바리시는 테마파크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표면적으로는 관광도시로의 탈피하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계속되는 적자였고 결국 누적 적자가 355억 엔(약 420억 원)에 달했다.

모리 지방분권 담당은 “무조건적인 중앙의 간섭을 지양하는 것은 오히려 지방의 경쟁력을 악화시킬수 있다. 중앙의 적절한 간섭이 있어야만 올바른 지방분권이 실현될 수 있다”며 중앙과 지방의 조화를 강조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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