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 영채를 7백리에 걸쳐 세우다.(1)

육손은 자신이 내린 영이 서지 않자 그 이튿날 모든 장수들을 불러 모아 다시 강조해서 격한 어조로 영을 내렸다.
“나는 왕명을 받들어 동오의 모든 군사를 총독하게 되었다. 어제 간곡히 명하기를 각처의 애구와 관방을 잘 지키라 했다. 이 명령을 건성으로 듣고 우습게 여기는 자가 있다. 이게 어찌된 셈이냐?”

“한당이 한 말씀 드리겠소. 나는 대왕을 도와 강남을 평정하며 수백 번 싸운 경험이 있소. 여러 장수들도 마찬가지요. 지금 공께 도독의 중임이 맡겨진 것은 촉병을 물리치라는 것이오. 도독은 촉병을 격파하여 국난을 해소해야 할 소임인데 경적치 말라하니 답답하오. 싸우지 아니 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하늘이 촉병을 물리쳐준단 말이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무리를 싫어하오. 도독은 어찌 군사의 사기를 꺾으려 하시오?”

한당이 목소리를 높여 말하자 장하의 모든 장수들이 힘을 얻어 제각각 한 마디씩 하기를
“그 말씀이 옳아요. 우리는 목숨을 걸고 결사전을 하고 싶소.”
이에 육손은 목청을 크게 하여 칼을 빼어 들고 명령을 내리기를
“나는 비록 일개 서생출신이다. 그러나 대왕의 중한 부탁을 받고 나온 것이다. 한 뼘의 땅도 소중하기 내 몸과 다를 바 없다. 너희들은 내 명령대로 진관과 애구를 굳게 지키라! 망동하는 자는 살지 못할 것이다. 명심하여 시행하라!”

장수들은 비록 말은 아니 하였으나 입이 퉁퉁 부어 돌아갔다.
한편 선주는 영채를 세우고 군마를 배치하는데 효정에서부터 천구까지 길게 하였다. 그 거리가 무려 7백리였다. 그렇게 길고 긴 거리를 두고 40여 채나 되는 영채를 세웠다. 영채는 낮에는 기치창검이 해를 가리게 많이 세우고 밤에는 화톳불을 피워 화광이 충천하여 불붙는 듯하였다.
전서구가 날아들고 첩보장교가 들어왔다. 첩보장교는 여기저기에서 세작들이 물어온 첩보들을 올바르게 가공하여 선주에게 아뢰기를

“손권이 육손으로 대도독을 삼은 인사명령이 있었습니다. 육손은 부임하자마자 장수들에게 진관과 애구를 실하게 지키라 하고 군사를 내지 아니합니다. 싸우지 않고 지킨다는 지연작전을 택한 것 같습니다.”
“전과는 아주 다른 작전을 쓸 모양이로군. 거 육손이란 사람에 대해서 뭐 아는 것은 있는가?”
“예 마량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육손은 글 잘하는 선비라 들었습니다. 그러나 재주가 있어 모략을 쓸 줄 알아 전에 여몽의 모사 노릇을 한 모양입니다. 그가 바로 관공을 돌아가시게 한 계책을 낸 장본인입니다.”

“허어, 무어야! 거 더벅머리 어린놈이 내 아우의 목숨을 빼앗은 자란 말이냐! 내가 이놈을 산채로 잡아서 분을 풀겠다. 자! 망설이지 말고 공격하여 육손을 잡아오라!”
“폐하! 서두르지 마십시오. 육손은 주유를 능가하는 방략을 가진 자입니다. 가볍게 생각하실 위인이 아닙니다.”
“마량은 무슨 말을 그리 하는가! 짐은 전장을 누비고 풍찬노숙하며 한 평생 용병한 사람이다. 그래, 내가 저런 어린애에게 당하기라도 할 거란 말인가?”

선주는 크게 격노하여 마량의 말을 막고 대군을 조발하여 동오의 진과 애구를 두들겨 부수기 시작했다. 동오의 한당은 촉병이 적극 공세로 나오자 육손에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육손은 한당이 독단으로 대적할까 염려하여 즉시 전선으로 달려갔다.
이때 한당이 말을 타고 산에 올라 촉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손이 급히 그곳으로 가서 함께 촉진을 관찰하니 개미떼 같이 많은 촉병 속에 누런 일산이 보였다. 선주의 일산이 분명하였다. 이 일산을 바라보며 한당이 육손에게 말하기를

“도독, 내가 저 일산을 쓰고 있는 유비를 잡아올까요?”
“장군, 서두르지 말고 내 말을 들으시오. 유비는 이곳으로 오면서 10여 진을 연하여 이겼기에 기세가 한참 올라 있는 판이오. 이 판에 뛰어 들면 불나방과 같은 꼴이 되기 십상이오. 우리는 높고 험한 곳을 지키면서 촉군이 변하기를 관망해야 하오. 지금은 유비가 평원과 광야를 달리면서 승승장구하는 시기라 하겠소. 그러나 우리가 지키기만 하고 대거리를 아니 하면 반드시 산이나 숲으로 진영을 옮길 것이오. 우리는 그때 가서 기발한 계책을 내서 유비를 잡으면 이 전쟁은 끝이 날 것이오.”

“글쎄 도독의 생각처럼 쉽게 유비를 잡으면 오죽이나 좋겠소.”
한당은 입으로 긍정을 말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아니꼬아 하였다.
선주는 이런 육손의 깊은 생각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욕설을 퍼붓고 싸우기를 청했다. 그러나 동오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귀를 솜으로 막고 응대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두드리고 달려들며 싸우려고 애를 써도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육손은 진관과 애구를 손수 돌면서 장수와 군사를 격려하기를

“힘써 지켜라! 시간은 많다. 고생들 한다.”
육손은 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위로하고 다녔다. 선주는 일이 이렇게 뒤틀리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마량이 곁에 있다가 초조해 하는 선주에게 간하기를
“폐하! 원래 육손은 아주 모략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봄부터 여름까지 원정을 나와 싸웠습니다. 육손이 지금 지키기만 한 것은 우리 군영에 변화가 있기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폐하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소서.”

“마공은 어이 그리 의심이 많소. 제깐놈이 무슨 꾀가 있단 말이오. 연전연패한 전력을 안 까닭에 겁을 먹고 나오지 아니한 것일 뿐이오.”
선주가 태연하게 마량의 말을 무시해 버리고 자기주장을 꺾지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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