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나라들 중 노르웨이는 나에게 친숙하고 익숙하게 다가온다.
한때 유럽 일대를 장악했던 바이킹의 이미지가 각인되어서 그럴까? 뿔 달린 모자를 쓰고 배 앞이 하늘로 쑥 솟은 날렵한 모양의 바이킹 배를 탄 전사들이 해적처럼 여기저기 상륙하여 전투를 치루는 영화나 만화를 많이 본 일 때문일까? 초등학교(예전에는 국민 학교였다) 시절 배웠던 6.25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게 병원관련 지원을 한 나라라는 기억도 있다. 그러나 병원선이나 병원관련 지원으로 도와준 나라들 중에는 스웨덴과 덴마크도 있었다. 남반구에 있는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사운드 피요르드(Fjord)를 여행했었기에 이 북반구 끝머리 노르웨이 피요르드도 친근감이 드는 건가? 조지해리슨이 인도의 악기 시타로 연주하는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을 몇 번 들어서 그럴 수 있다. “I once had a girl,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라는 가사로 시작되어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로 마무리하는 노래다. 일본 소설가 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도 원인이 될 수 있겠다. 그도 이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소설 도입부에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기술하고 있다. 아, 그런데 Norweigian이란 단어가 나의 머리를 때린다.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 저 너머, 뇌의 저장고 깊숙이 신경세포의 힘이 못 미칠 것 같은 곳에 두고 있던 추억. 도서관에서 더 이상 대출되지 않거나 오래되어 폐기되기를 기다리는 묶은 책들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처리되기 직전 대출 의뢰로 간신히 구제된 상태로 회생된 책과 같은 망각 속의 노르웨이 소녀. 그 때문이었다. 잠시 어질하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다.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이 없었던 아득한 시절, 중학교 때이다. 처음으로 국제 펜팔로 알게 된 여학생이었다. 어렵게 영어로 쓴 편지가 오고가는데 거의 2달이상이 걸렸던 시절의 일이다. 그녀의 편지 봉투에 Norwegian이라고 적혀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주소를 적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고등학교 접어들면서 입시 공부 때문에 더 진행되지는 못하고 말았다. 그 소녀는 이런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몹시 슬퍼했었다.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노르웨이를 여행하다가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 하이(Hei: 여보세요)! 고다그(God dag: 안녕하세요)라는 내가 아는 지극히 간단한 노르웨이 말을 해 줄 수나 있을까?

해발 1500m 높이의 절벽 사이에 형성된 16km 길이의 V자형 계곡을 지나가면서 장관이 펼쳐진다. 절벽 사이로 여러 폭로가 형성되어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예이랑에르 피요르드를 소개할 때 등장하는 대표적인 경관이다.
신부의 면사포 같은 7자매 폭포. 전설에 의하면 마을에 미혼인 7자매가 살았는데, 마을 청년이 청혼을 하였지만 자매들은 술에 빠져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낙심한 청년이 폭포로 변해 7자매에게 바칠 술병 모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비가 오거나 물의 양에 따라 7줄기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시원한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브링에포센(Bringefossen) 폭포(왼쪽), 예이랑에르 항구로 내려가는 길. 크루즈 선을 타고 피요르드를 유람하게 된다.
예이랑에르에서 헬레쉴트 구간을 운행하는 유람선에서 경치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자못 진지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수철 교수는 대전대학교 교수(이학박사), 멀티미디어 콘텐츠기술센터 소장, 사진가, 한국화가, 디지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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