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봄이 왔구나. 여느 해보다 늦은 봄이긴 하지만 곳곳에 하얗게 빛나는 벚꽃과 올망졸망 귀엽게 피어있는 너희들 닮은 개나리, 탐스럽게 웃고 있는 목련꽃이 화창한 봄 햇살 만큼이나 눈부시다. 선이는 벌서 중학교 3학년이 됐겠네. 선생님 기억 속에는 조그맣고 천진난만하던 선이의 모습만 있어서 선이가 벌써 중학교 3학년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사춘기가 찾아와 턱 밑에 거뭇거뭇 솜털처럼 수염이 올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참 낯설고 어색한 웃음마저 나오게 한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선생님 기억 속에 있는 귀여운 선이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싶은 어리석은 욕심마저 드는구나.선이를 처음 본 날이 떠오른다. 2002년 겨울방학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는 날, 교무실에서 1학년 어린 꼬맹이 선이를 처음 만났다. 선이도 기억하고 있니? 특별보충수업을 하러 모인 첫날이었는데, 5명의 아이들 중에서 선이만 지각을 했어. 1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늦잠을 자서 아침 먹고 오느라 늦었다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선이에게 선생님은 할 말이 없었어. 마치 유치원 아이처럼 또래 친구보다 몸집도 작고, 까만 피부의 정말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는데 생김새와 다르게 선이는 첫날부터 3학년 형에게 무시무시한 욕을 하며 덤비던 겁 없는 아이였어. 선이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다른 친구의 2~3배는 힘들었단다. 선이는 공부를 싫어했고, 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다른 친구를 괴롭혔거든.그러다 선이가 4학년 때 선이의 담임선생님으로 다시 만났지. 그 첫날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스런 마음이 들던지. 선이가 그 때 선생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까? 앞으로 일 년 동안 선이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그 첫날에 선생님은 정말 고민이 많이 됐단다. 그런데 선이야, 선이를 알면 알수록 얼마나 선이가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였던지, 선생님 마음 알고 있었니? 물론 선이는 맨 앞에 앉아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을 조금, 아주 조금은 힘들게도 했단다. 선이의 가방은 늘 교실 바닥에 나 뒹굴고 있었고, 책상이 좁았는지 교과서도 항상 선이 주변에 떨어져서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지. 수업 시간에 갑자기 큰 소리 지르며 주변 친구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갑자기 노래를 불러 재끼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선생님도 많이 속상하고 힘들어 선이를 많이 혼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선이의 엉뚱한 모습이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와 혼자 웃음을 삭이곤 했단다. 특히 선이는 춤을 잘 췄어. 제법 흥겹게 엉덩이를 흔들며 ‘어머나’를 구성지게 불러대던 선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수업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숙제를 안 해서 방과 후에 남는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종알종알 잔소리를 해대며 애교를 부리는 선이가 바쁠 때는 좀 귀찮기도 했지만 선생님도 선이와 있는 시간이 즐거웠단다. 선이는 선생님이 처음에 오해했던 것처럼 거친 아이도, 나쁜 아이도 아니었어. 여우처럼 애교도 많고 정도 많아서 4학년이 끝나고 나서도 방과 후 조용한 교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면 “선생님!”하고 찾아오던 선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단다. 선생님 교실에 찾아와 한참 종알종알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때론 가지고 온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 놀다가 가던 선이가 참 고맙고 반가웠단다. 가끔 콘서트 티켓도 선물로 주곤 했지. 콘서트 기획사 스텝 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통해 얻은 표라 공연장 맨 뒤 구석, 카메라 옆자리이긴 했지만 선생님은 제자 선이가 준 티켓이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고마웠단다. 5학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선생님 교실을 찾아온 선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선생님, 저 전학 가요.”하고 말했지. 선생님은 정말 깜짝 놀랐단다. 언제고 사람과의 만남에는 분명 헤어짐이 찾아오긴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선이가 떠날 줄은 몰랐거든.그렇게 선이가 전학가고 선생님은 새로 만난 아이들과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문득문득 “선생님!”하고 얼굴을 내밀던 선이가 떠오르곤 했단다. 그리고 오늘 까지 선이는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은 선생님의 제자란다. 그 때는 몰랐는데 선이가 선생님에게 준 사랑이 참 컸나보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있을지 참 궁금하다. 참 신기하게도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데 그 속에는 꼭 선이 같은 친구가 한 명씩은 반드시 있더구나.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선생님은 선이를 떠올리며 웃음을 짓곤 한단다.봄이 왔지만 아직 새 잎이 싱그럽게 자라기에는 추운 날이 지속되는구나. 선이도 저 어린 잎처럼 조그맣고, 연약했는데, 지금은 얼마만큼 푸르게 자랐을까? 살면서 언젠가는 한 번 다시 볼 날이 있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선생님은 점점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며 살 생각이다. 선이도 멋진 모습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렴.2010년 4월 15일선생님이.(대전시교육청 제6회 아름다운 편지 공모작)대전옥계초등학교 교사 최 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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