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소 제위를 거절하다.①

사마소는 고개를 좌로 흔들며 가충이 제위에 나가라는 청을 간단히 거절했다. 그리고 한 동안 말이 없더니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내 말을 명심하여 들으오. 아직 때가 이르오. 지금은 가공이 말한 바와 같이 제위에 나갈 때가 아니오. 옛적에 문왕은 천하의 3/2를 차지하고도 오히려 은을 섬긴 기록이 있소. 그런 까닭에 성인은 문왕을 칭송하여 지덕이라 일컬었소. 위무제 조조는 한의 뒤를 이어 제위에 나가라 했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했소. 이것은 내가 위의 뒤를 이어 제위를 받지 아니 하려는 것과 같소. 경들은 다시 그와 같은 일을 권하지 마시오.”

가충의 무리는 사마소의 뜻이 조조처럼 고차원적으로 아들 사마염에게 임금의 자리를 줄 생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는 권하지 아니하고 후일을 도모하는데 전념해야지.’
가충은 혼자 다짐하고 사마소에게 제위에 나가라고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해 6월 사마소는 조모의 뒤를 이어 상도향공 조황을 황제로 세우고 경원 원년으로 연호를 고쳤다. 조황은 이름을 조환이라 개명하고 자를 경소라 했다. 그가 곧 무제 조조의 손자요 연왕 조우의 아들이다.
조환은 등극한 후 사마소를 승상 진공에 봉하고 10만 냥과 비단 1만 필을 상으로 내렸다. 그리고 백관들도 골고루 상을 내렸다.

촉국의 세작이 위국의 정변을 세세히 본국에 알렸다. 강유는 사마소가 임금 조모를 시살하고 새로 조환을 천자로 세웠다는 첩보를 받고 기뻐하며
“내가 위국을 치는데 명분이 생겼다. 이번에는 반드시 장안까지 밀고 가서 낙양을 넘보리라.”
강유는 뜻을 정하고 오국에 사자를 보내 사마소가 조모를 시해한 죄를 묻자고 했다. 그리고 후주에게 표를 올려 15만 대병을 일으켜, 천량의 수레에 판상(板箱)을 모두 싣게 하고 요화와 장익을 선봉장을 삼아 명하기를

“요화는 먼저 자오곡을 취하라. 장익은 낙곡을 취하라.”
두 장수를 먼저 나가 기선을 잡아 영채를 세우게 하고, 강유는 스스로 사곡을 취하여 3로 병으로 기산에 쇄도했다.
이때 등애는 기산에서 군마를 조련하고 있었다. 갑자기 3로로 촉병이 쇄도해 온다는 첩보를 받고 제장들을 모아 의견을 물으니 참관 왕관이 말하기를
“소장이 한 계교를 작성한 문서입니다. 이것을 보시고 장군께서 결정하십시오.”
등애가 왕관이 내어 준 문서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와

“하하하. 이 계교가 참으로 절묘하다. 이것으로 강유를 속이자는 것이구나!”
“장군! 제가 목숨을 걸고 한 번 가보겠습니다.”
“공의 뜻이 그 같이 굳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단단히 준비하고 가보라!”
등애는 왕관에게 5천 군사를 주어 밤을 도와 사곡으로 가라했다. 왕관이 사곡으로 가다가 촉병의 전대와 예상보다 먼저 마주쳤다. 왕관은 촉병의 앞으로 나서며 말하기를
“나는 촉병에 항복하러 온 위국 항병이요. 주장을 만나게 해 주시오.”

느닷없이 위병이 항복하러 왔다는 보고에 강유는 생각을 깊게 하고 말하기를
“항장 한 사람만 데려 오라!”
짧게 명하여 왕관을 불러 들였다. 강유가 왕관을 자세히 뜯어보니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산 싸움은 전초전이 지혜를 겨루는 싸움이 되었다. 먼저 등애가 숙제를 낸 것이다. 왕관을 보내 항복을 위장하여 강유를 시험한 것이다. 강유는 복잡한 생각을 지워 버리고 아주 단순한 마음가짐으로 왕관을 맞아들였다.
“위국 항장 왕관이 장군을 뵙습니다.”

“그래, 느닷없이 웬 항복이란 말이냐? 어디 들어보자.”
“소장은 왕경의 조카 왕관입니다.”
“그래, 왕경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심으로 조모에게 충성을 바치다가 사마소에게 시해 당했다는 소식은 듣고 있다.”
“아시다시피 사마소가 임금을 시해하고 저의 숙부님 일문을 멸하였습니다.”
“그 일도 들어서 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장군! 왕관은 사마소에 대한 원한이 골수 깊이 박힌 사람입니다. 다행히 장군께서 사마소를 문죄한다는 군사를 일으켜 오시니 소장이 특별히 항복하러온 것입니다. 소장은 장군의 수족이 되어 사마소를 멸하는데 앞장서서 숙부님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그래, 숙부를 위한 마음이 가상하구나! 그대가 성심으로 항복하러 왔다는데 내가 어찌 대접을 소홀히 하겠는가? 우리가 근심하는 것은 양초다. 지금 양식 실은 차 수천 대가 천구에 와 있다. 이것을 기산으로 운반하라. 나는 지금 기산채를 취하러 가겠다.”
“예 분부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왕관은 강유가 자기의 거짓 항복을 받아들였다고 믿고 기뻐했다. 그런 왕관에게 강유가 연이어 말하기를
“그대가 양식을 운반하러 갈 때 5천군 중 3천 명은 데리고 가고 2천 명은 두고 가라. 2천 명은 기산을 공격하는데 길라잡이를 삼을 것이다.”
왕관은 내키지 않았으나 행여 강유의 의심을 살까 두려워서 즉각 대답하기를
“장군의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어서 3군을 거느리고 양식을 운반하러 가라.”

강유는 왕관을 쉽게 받아들이고 임무를 주어 보낸 후 부첨을 불러 분부하기를
“그대는 2천 위병을 거느리고 행군하면서 나의 명령을 받아 시행하라!”
이때 갑자기 하후패가 당도하여 강유에게 말하기를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왕관의 말을 전부 신용하십니까? 내가 본국에 있을 때 정확히 단정할 수는 없으나 왕관이 왕경의 조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이번 일에는 반드시 중간에 기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독께서는 신중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하후패가 강유를 위하여 성실한 충고의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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