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 지혜로써 승리하다. ①

강유는 하후패의 진정어린 충고의 말을 듣고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하후장군! 나는 이미 왕관의 거짓 항복을 알고 있소. 이 기회를 이용하여 위병을 분산시켜 장계취계(將計就界)로 내 일을 행할 것이오.”
“패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도독께서는 어떻게 속임수인 줄 아셨습니까?”
“그야 간단합니다. 사마소는 조조보다 더한 간웅입니다. 먼저 왕경을 죽여서 삼족을 멸했는데 어찌 왕관에게 5천군이라는 큰 군사를 주어 밖에 두었겠습니까? 친조카를 그대로 둘리 만무하지요. 그런고로 나는 벌써 그들의 간사한 계교를 훤하게 들여다 본 것이지요. 그런데 중권의 소견도 나와 같으니 이것은 틀림없는 판단이겠지요.”

여기서 중권은 하후패의 자다. 강유는 마침내 사곡을 나가는 것을 보류하고, 가만히 복병을 길에 묻어 왕관의 협사에 대비하고 있었다. 10일이 채 못 되어 복병들이 왕관이 등애에게 회보를 보내는 군사를 잡아왔다. 강유는 위병에게 잡힌 경위를 엄하게 문초하여 내용을 알고 품속에서 편지를 찾아냈다. 편지의 내용 중 특이한 내용은 <8월 20일에 산중 소로로 양식을 운반하여 기산 대채로 나가니, 등애는 담산 골짜기로 군사를 보내서 접응하라.>고 씌어 있었다.

강유는 편지를 가진 사자를 죽이고 편지 속 내용을 개작하여 8월 15일에 등애에게 대병을 거느리고 오게 했다. 물론 사자는 위병으로 변장한 강유의 사람을 보내고 다시 전령을 내리기를
“양식 실은 수레 수백 대의 양식을 모두 내리고, 잘 마른 시초와 불에 잘 타는 인화물을 수레에 가득 싣고 포장을 씌워라. 그리고 부첨은 항복한 2천 명의 위군을 거느리고 운량 기호를 달고 가라!”
강유는 그렇게 전령을 내리고 다시 하후패와 함께 1군을 거느리고 산골짜기로 들어가 매복했다. 그런가하면 장서를 사곡에서 나오게 하고, 요화와 장익은 자오곡과 낙곡에서 제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기산으로 나오라 명했다.

한편 위채의 등애는 왕관이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크게 기뻐하며, 8월 15일을 맞추어 5만 정병을 거느리고 담산 중곡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서 등애가 바라보니 촉병의 양식을 운반하는 수레가 연이어 산중으로 운반해 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가 다 왕관이 데리고 갔던 위병들이다. 좌우의 제장들이 등애에게 권하기를
“날이 점점 어두워 갑니다. 빨리 뒤를 좇아 왕관이 거느린 군사와 접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야. 조금 더 동정을 살피자. 앞에 있는 산세가 중중첩첩하다. 만약 복병이 있다면 급히 물러날 곳이 없다.”

등애가 그렇게 조심된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말을 탄 기병 둘이 나타나 고하기를
“왕장군께서 양초를 가지고 이 앞을 지나는데 뒤를 쫓는 군사가 있습니다. 빨리 구원해 달라 청하십니다.”
“허어. 그런 일이 생겼다고!”
등애가 놀라워하며 급히 군사를 재촉하여 앞으로 나갔다. 마침 초경이라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산 뒤에서는 납함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등애는 왕관이 산 뒤에서 촉병을 시살하며 나온 것으로 착각하고, 빠르게 군사를 움직여 산 뒤로 달려갔다. 등애가 본래 자기 의지와 전혀 다르게 움직여 나가는데, 갑자기 밀림 뒤에서 한 무리군마가 쏟아져 나왔다. 등애가 자세히 바라보니 앞선 장수는 촉장 부첨이다. 말을 달려 나오며 큰 소리로 외치기를

“등애 필부야!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 너는 우리 대장군의 계교에 떨어졌다. 빨리 말에서 내려 죽음을 받아라!”
“아니 이럴 수는 없다. 내가 강유에게 속다니!”
등애는 그렇게 탄식하며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하는데, 갑자기 수레에서 불씨가 솟더니 모든 수레가 타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이 불이 신호인지 갑자기 촉병이 양편에서 고함치고 나타나 협공해 들어왔다. 위병의 신세는 그야말로 칠단팔속(七斷八續)이 되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일곱 번 끊어지고 여덟 번 이은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많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 촉병들은 사면팔방에서 에워싸며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다. 등애를 잡으라는 고함소리는 담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등애를 잡는 자 천금 상에 만호후를 봉한다.”
“빨리 잡아라! 등애를 잡는 자는 팔자를 고친다.”
“쌔려 죽여서 잡아도 좋다. 등애만 죽이면 만호후다.”
등애를 잡으라는 소리가 마구니 떼같이 들끓었다. 등애는 혼이 달아나고 백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급히 갑옷과 투구를 벗어 버리고 말에서 내려 보군 속에 섞여서 산을 타고 도망쳤다. 강유와 하후패는 마상에 앉아 등애를 잡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등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뒤늦게 등애가 보군에 섞여 달아난 것을 알게 되었다.

“등애는 놓쳤으나 우리는 이겼다.”
강유는 가벼운 마음으로 승리한 군사를 거느리고 왕관이 양곡을 운반하는 수레를 접수하러 갔다. 이때 왕관은 등애와 밀약한대로 실행하고자 양초 실은 수레를 정비하며 거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왕관에게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고하기를
“우리 거사가 탄로 나서 등장군은 대패하여 생사가 불명치 않고 종적을 모릅니다.”
왕관이 놀라 심복부하를 시켜 급히 알아보게 하니 수하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강유의 3로 병이 등장군을 포위하여 모든 길이 막혀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왕관은 마음이 급했다. 조급증이 나서 급히 전령을 내리기를
“모든 양식 실은 수레를 불 태워버려라!”
양식 실은 수레에 불을 붙이자 삽시간에 화광이 일면서 맹렬한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왕관은 다시 전령을 내리기를
“우리 일이 아주 급하다. 너희가 살려거든 목숨을 걸고 싸워라!”
왕관은 그렇게 말하고 군사를 재촉하여 서쪽을 바라보고 무작정 달아났다.
그때 강유는 3로 군을 재촉하여 왕관의 뒤를 추격했다. 강유의 생각으로는 왕관이 위국으로 탈출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한중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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