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노죽'

한국 한시 감상 - 25
- 偶人(우인) - - 허수아비 -
偶人依杖立(우인의장립)하니, 허수아비가 막대기에 기대고 서 있으니,

鳥雀見之疑(조작견지의)를. 참새들이 보고서 의심을 하네.

虛名難久持(허명난구지)니, 실속 없는 명성은 길게 지키지 못하니,

愼勿立多時(신물입다시)를. 삼가여 괜히 오래 서있지 말기를.

◆지은이 윤락호(尹樂浩): 조선 헌종(憲宗) 때의 인물.
이 시는 허수아비라는 사물을 빌려 인간사의 법칙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지금도 시골의 들판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진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허수아비인 것이다. 허수아비의 직분은 무엇인가.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의 벗도 되어주지만, 그들의 본분은 바로 새에게 위협을 주어 곡식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들판의 새들은 처음에는 허수아비를 겁내어 허수아비가 서 있는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다가, 몇 번 허수아비 근처에서 탐색전을 펼쳐보고서는 마침내 그 본색을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허수아비를 겁내는 게 아니라, 도리어 허수아비 어깨 위를 쉼터로 여겨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허수아비도 결국에는 본색이 탄로되어 도리어 새들의 조롱거리가 되듯이, 내실 없는 사람이 허세를 부리다가는 마침내 본색이 드러나 천하사람의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小人之道(소인지도)는 的然而日亡(적연이일망)이라.”, 즉 “소인의 도는 반짝거리지만 나날이 소멸되어간다.” 하지 않던가. 내실도 없으면서 괜히 있는 힘을 다해 화려하게 한 번 반짝거리고 나면, 필경에는 그 화려한 광채는 빛을 바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속 없는 사람이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헛된 이름을 탐하여 괜히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헛된 명예에 사로잡혀 사는 어리석은 인생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침이며 약이 될만한 시이다.

한국 한시 감상 -26
- 老竹(노죽) - - 늙은 대나무 -
老幹飽風箱(노간포풍상)한데, 늙은 줄기 풍상(風霜)에 배 부른데,

戞如哀玉鳴(알여애옥명)을. 두드려보면 옥처럼 애잔한 소리 울리네.

所貴窮益堅(소귀궁익견)이니, 궁할수록 더 여물어짐을 귀히 여기니,

何嫌太瘦生(하혐태수생)을. 어찌 크게 수척해짐을 근심할 것인가.

◆지은이 김흥락(金興洛): 조선 고종(高宗) 때의 인물이다.
이 시는 갖은 풍상(風霜)을 다 겪은 늙은 대나무의 모습을 묘사한 영물시(詠物詩)이다.
대나무는 송백(松柏)과 함께 차가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늠름히 지켜 나가는 나무이다. 공자는 “歲寒然後(세한연후)에 知松柏之後彫也(지송백지후조야)라.”, 즉 “계절이 차가워진 이후에 송백이 빨리 시들지 않음을 알 것이다.”고 했는데, 이때 당연히 대나무도 함께 언급했어야 했을 것이다.

모든 화초들은 겨울이 들기도 전에 이미 늦가을 서리를 맞고 시들지만, 대나무는 그 생명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차가운 허공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이렇게 살아온 늙은 대나무는 그야말로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다 겪었다 할 것이다. 만고풍상을 겪는 동안 대나무는 다져지고 또 다져져서, 옥처럼 단단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나무는 비록 나무의 재질이지만, 두드려보면 옥소리를 내는 것이다. 옥소리는 너무나 맑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도리어 슬픔을 머금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한창 자라나는 대나무야 멋모르고 몸집을 키워가지만, 늙은 대나무는 만고풍상을 다 겪는 동안 내면의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다. 풍상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내적 성숙도는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번지르한 빛깔을 내보이지 않는다 하여 꺼릴 것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수척해 보이는 외양 속에 참다움과 풍요함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인간 세계 또한 마찬가지이리니, 갖은 풍파 헤치며 치열하게 살아온 노인에게는 파릇한 젊은이가 넘보지 못할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지은이의 이 시는 인고의 세월을 겪어온 늙은 대나무의 회포를 넉넉히 풀어주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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