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회와 등애의 서촉 정벌①

조정에서 내린 조칙을 수령하려고 여러 고을 수령 방백이 군마를 거느리고 구름일 듯 모여 들었다.
그날 밤 등애가 한 꿈을 꾸었다.
‘높고 험란한 산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기를 쓰고 올라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산 정상에 올라가니 놀랍게도 한중이 한 눈 안에 다 들어 왔다. <저 한중을 내가 손아귀에 넣어야지.> 등애가 그렇게 생각하고 한 동안 한중의 산천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갑자기 발밑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살펴보니 발바닥 밑에서 갑자기 샘물이 터지면서 다리를 적시었다. 그리고 그 샘물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아! 이럴 수가 있을까!’

등애가 깜짝 놀라 깨어 보니 남가일몽이었다. 온몸이 땀에 흥건히 배어 있었다. 등애가 꿈에서 놀라 깨어나 잠들지 못한 채 뜬눈으로 날을 밝혔다. 등애는 곰곰이 간밤의 꿈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괴이한 꿈이야. 난생 처음 그런 꿈을 꾸었어.’
등애는 너무나도 꿈이 궁금해서 주역에 능통한 호위 소원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하고 해몽을 부탁하니 소원이 해몽하기를

“주역에 의하면 산상유수(山上有水)는 건괘(蹇卦)라 하고 건괘는 이로움이 서남에 있으며 동북은 불리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건괘는 서남이 이로우니 그곳으로 가면 공이 있고, 동북으로 가면 가는 길이 궁하다고 했습니다. 장군께서는 이번 출정에 반드시 서촉을 이기실 괘입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건체(蹇滯)해서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등애는 소원의 해몽을 듣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일종의 계책인지도 모른다. 등애는 너무나도 뛰어난 책략가이니까. 아마도 사마소를 의식하여 그런 몸가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소원이 해몽을 하고 돌아가고 난 후 종회의 격문이 당도했다.

‘...... ...... ...... 등애는 한중에서 기병하기로 하고, 옹주자사 제갈서는 강유의 돌아가는 길을 끊고, 천수태수 왕기는 견홍에게 오른 편에서 답수를 치라 하고, 금성태수 양흔에게 감성에서 강유를 요격하라 하고, 등애는 여기저기 왕래하며 접응하라.’
한편 종회가 출사하니 문무백관이 성 밖까지 나와 장도를 빌어 주었다. 펄럭이는 깃발이 하늘을 가리고 갑옷과 투구는 유난히 빛났다. 군사는 씩씩하고 용맹스럽고 말은 우렁차게 울어대니 그 위풍이 당당하고 장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연지기가 발동하게 하였다.

이런 늠름한 기상을 가진 군대를 바라보고 상국참군 유실이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자 태위 왕상이 마상에서 유실의 손을 잡고 묻기를
“이번에 종회와 등애가 출정하여 서촉을 평정할 수 있다고 보시오?”
“태위께서는 믿지 않을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는 반드시 서촉을 격파할 것이라 보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왕상이 따지듯 물었으나 유실은 미소만 지을 뿐 그 뒤로 말이 없었다. 왕상은 더 캐묻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성 싶어 말을 아꼈다.
위병이 한중을 쳐들어온다는 첩보는 재빨리 강유에게 전해졌다. 강유는 급히 후주에게 상소를 올렸다.
‘좌거기장군 장익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양평관을 지키게 하고, 우거기장군 요화로 음평교를 지키게 하십시오. 이 두 곳은 우리나라를 지켜내는데 가장 요긴한 곳입니다. 만약 이 두 곳을 잃으면 한중을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속히 동오로 사신을 보내시어 구원을 청하십시오. 소신은 답중 군사를 일으켜 위병을 막겠습니다.’

이때 후주는 경호 5년의 연호를 염흥 원년으로 고치고 날마다 환락에 빠져 지냈다. 그날도 내관 황호와 함께 궁중에서 연회를 열고 술에 함빡 취해 비틀거리는데, 강유의 상소문이 당도한 것이다. 상소문을 받은 후주는 이것을 보고 황호에게 묻기를
“지금 위국이 종회와 등애를 대장으로 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각기 다른 두 길로 쳐들어오고 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폐하. 그것은 그다지 큰 일이 못됩니다. 강유가 자기 공명을 내어 세우려고 이 같은 상소문을 올린 것일 뿐입니다. 신이 듣자오니 성중에 한 사파(師婆)가 신령을 받고 있는데 아주 잘 맞춘다 합니다. 그 신통함이 놀랍다하니 한번 불러 물어 보십시오.”

“그래, 그런 신통한 사파가 있었느냐? 속히 부르라.”
후주가 신통하다는 사파를 부르게 하니 후전에 향화지촉(香火紙燭)에 제물을 갖추고, 황호가 수레를 보내 사파를 궁중으로 청해 들였다. 그리고 사파를 용상에 앉히고 후주를 전 아래 세우고 향을 살라 암축하고 빌게 했다.
사파는 갑자기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맨발로 전상에서 수십 차례 뛰고 난 후 탁자 주변을 맴돌았다. 이런 사파의 하는 행동을 바라보던 황호가 후주에게 아뢰기를
“지금 사파가 신이 내린 모양입니다. 폐하께서는 좌우를 물리치시고 가까이 가시어 신께 비십시오.”

후주는 황호의 말에 따라 좌우 시신을 다 물리치고 두 번 절하고 축을 올렸다. 그러자 사파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나는 서천 토신이다. 폐하께서는 태평을 즐기시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수년 후에는 위국 강토가 모두 폐하의 것이 될 것입니다. 폐하 아무 걱정 마시고 즐기십시오. 이것이 하늘이 정해준 폐하의 운명이요 복입니다.”
사파는 푸념을 마치자 까무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어리석은 후주는 사파가 깨어나자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다가 중한 상을 내렸다. 후주는 이날부터 사파를 깊이 신용하고 강유의 상소 같은 것은 귀가에 흘려버렸다. 위국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꿈같은 이야기를 믿으며 날마다 주색에 파묻혀서 세월을 보냈다. 강유는 세 번씩이나 국경부근이 위급을 당하고 있다고 급보를 띄웠으나 황호가 다 처리해 버리고 후주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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