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회와 등애의 서촉 정벌②

후주가 황호를 신임하고 황음이 극에 달할 때 종회의 대군은 한중을 향하여 계속 진군했다. 전군 선봉 허의는 먼저 수훈을 세우고자 남정관에 이르러 모든 군사에게 이르기를
“이 관문만 통과하면 한중이다. 관에는 서촉의 군마가 적게 있다. 제장들은 힘을 모아 관을 탈취하라.”
위나라 장병들이 당도하자 촉장 노손이 위병이 올 것을 예측하고 십시연노법(十矢連弩法)을 쓰게 했다.

이것은 제갈무후가 발명한 것으로 10개의 화살이 동시에 발사되는 것이다. 노손은 이 십시연노를 남정관 앞 나무다리 좌우편에 군사들을 매복하고 사용하게 했다. 허의가 군사를 독려하여 나무다리 가까이 진출하자 관위에서 목탁소리가 울리고 살과 돌이 쏟아졌다. 허의가 놀라 급히 군사를 물리려 했으나 이미 수십 기가 십시연노에 맞아 죽었다. 위병들은 단번에 대패하여 물러나고 허의는 이 사실을 곧 종회에게 보고했다. 종회는 수하의 갑사 1백여 기를 거느리고 남정관으로 쫓아와 보니 과연 화살과 쇠뇌가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 마치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어찌 이런 활이 있단 말이냐? 물러나라! 물러나!”
종회는 그렇게 외치며 처음 당한 연노의 공격에 놀라 급히 말머리를 돌리고 달아났다. 노손은 5백기를 거느리고 종회의 군사를 시살하며 쫓아갔다. 종회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심하게 채질하다 보니 말이 다리 위 나무 사이에 발이 빠져 움직이지 못했다. 종회는 급한 나머지 말을 버리고 뜀박질을 하여 달아났다. 노손이 이런 종회를 보고 급히 말을 몰고 쫓아가 창을 번쩍 들어 종회를 찌르려 했다.
“저런 놈이 있나. 이 화살 맛을 보아라!”

마궁수 순개가 힘껏 활을 당겼다. 이 한 개의 화살이 노손의 등짝을 명중시켰다. 노손은 등짝에 화살을 맞고 그만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노손이 종회를 창으로 찔러 죽이려하자 순개가 활을 쏘아 노손을 죽인 것이다. 그 바람에 천행으로 종회는 목숨을 건졌다. 이 창졸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종회는 목숨을 구하고 촉병은 장수를 잃으니 전세는 당장 역전되고 말았다. 종회는 무장지졸이 된 촉병을 몰아 붙여 남정관문을 향하여 돌격했다. 관위에서 연노를 가지고 대기하던 촉병들은 주장 노손을 잃고, 위병이 몰려와도 아군을 상할까 두려워 연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손을 놓고 바라보다가 남정관은 마침내 종회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종회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순개의 직위를 올려 호군을 삼고 상급으로 안장과 갑주를 내렸다. 그리고 종회는 선봉대장 허의를 장하에 불러내어 책망하기를

“허선봉은 들어라! 너는 산을 개척하여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을 책임을 진 사람이다. 그래서 대군이 행군하는데 편하게 하라고 나는 누누이 당부했다. 그런데 다리가 허물어져 말굽이 빠져 나는 다리에 떨어져 죽을 뻔했다. 아주 죽음 직전의 아찔한 순간에 순개가 나를 구했다. 순개가 나를 구하지 않았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느냐? 너는 군법을 어겼으니 군법시행을 당해야 할 것이다.”
종회는 그리 설명하고 무사를 불러 호령하기를
“허의를 끌어내어 참형에 처하라!”

종회의 호령에 제장들이 간하기를
“허의는 허저의 아들로 그 아비가 나라에 유공한 자이니 도독께서는 허의의 목숨만은 붙여두십시오.”
“나도 그 아비의 큰 공을 안다. 하지만 군법이 밝지 못하면 어찌 모든 사람을 어거할 수 있겠느냐? 여러 말 치우고 어서 참형에 처하라!”
종회는 누구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아니하고 허의의 목을 베게 하여 군문에 효수하니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추상같은 종회의 군법시행이었다.

이때 왕함은 낙성을 지키고 장빈은 한중을 지키고 있었다. 두 장수는 위병이 호대함을 보고 두려워서 나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성문을 꼭꼭 잠그고 지키기만 하였다. 남정관을 격파한 종회는 다시 영을 내리기를
“군사란 신속을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 여기서 머무르며 지체할 수 없다. 전군 이보는 낙성을 공격하라! 호군 순개는 한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라!”
종회는 두 장수를 내어 보내고 스스로 대군을 거느리고 양평관을 취하러 나갔다.

이때 양평관에서 촉장 부첨이 부장 장서에게 관을 지킬 계책을 물으니 장서가
“위병이 심히 호대하여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심혈을 기울여 관을 지키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하책이오. 위병은 원정군이라 피로해 있을 것이오. 비록 머리 숫자는 많다 하나 두려울 게 없소. 우리가 나가 싸우지 아니하면 한성과 낙성이 어려워 지오.”

주장 부첨이 그리 말하자 부장인 장서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묵연히 입을 다물고 거취만 보는데 갑자기 위병의 큰 부대가 관문 앞에 당도했다. 부첨과 장서 두 장수는 급히 문루에 올라가 위병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그때 종회가 두 장수를 알아보고 채찍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외치기를
“촉장은 잘 보라! 나는 10만 대병을 거느리고 여기 왔다. 만약 싸우지 아니하고 항복하면 품계에 따라 각각 벼슬을 올려 줄 것이다. 그러나 미적미적 미루고 항복치 아니하면 관을 파하고 나서 옥석구분이 될 것이다.”

부첨이 크게 노하여 장서에게 관을 지키라 하고 3천 정병을 이끌고 나갔다. 종회가 부첨이 쫓아 나오는 것을 보고 곧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위병들도 대장 종회가 달아나자 그 뒤를 따라 달아났다. 부첨이 기가 올라 힘껏 따라 붙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병이 서로 힘을 합쳐 달아나던 말을 멈추고 다시 반격을 시도했다. 거대한 힘이 부첨을 억누르며 닥쳐왔다. 부첨은 당하지 못할 것을 짐작하고 말을 돌려 급히 성안으로 달아나고자 할 때 순식간에 묘한 일이 벌어졌다. 기가 콱 막힐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첨이 눈을 씻고 관위를 바라보니 이미 위병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장서가 외치기를
“나는 이미 위국에 항복하였소. 부장군도 마음을 고쳐먹으시오. 임금이 황음무도하여 촉국은 곧 망하고 말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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