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이 함락되다.①

보슬비가 내리던 정군산이 맑아졌다. 잠간 사이에 수운이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며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위병들은 크게 기뻐하며 제갈무후의 무덤 앞에 모두 절하고 영채로 돌아갔다.
이날 밤 종회는 장중에서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한 줄기 맑은 바람이 불더니 생전의 제갈무후가 나타나 천천히 종회 곁으로 다가왔다. 종회가 놀라 벌떡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맞이하자 제갈무후가 묻기를
“공은 어떤 사람인가?”

종회는 물음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제갈무후가 다시 말하기를
“공이 나를 찾아주어서 감사하오. 내가 하고자 한 말을 잘 들어 주시오. 이제 한조가 쇠퇴하여 천명이 다했으나, 양천의 무고한 생령이 병화로 고통을 당할 일을 생각하니 천명이 무정하오. 그대가 비록 촉국의 경계를 허물고 들어왔다 하나 망령되이 생령을 살상하지 말기를 바라오.”
제갈무후는 그렇게 자신의 말을 전하고 나가자 종회가 만류하려고 일어나다가 깨어보니 남가일몽이었다.

종회는 제갈무후의 영혼이 현성한 줄 깨닫고 놀라워하며 전군에 전령을 내리기를
“흰 베에 보국안민이라 써서 기를 세우고 나가라! 만약 한 사람의 양민이라도 살상하는 자가 생기면 그 사람의 생명을 취할 것이다.”
이 소문은 당장 전화로 벌벌 떨고 있던 촉국 백성들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그랬는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먼저 나와 종회의 군사를 즐거이 맞아 주었다. 종회는 이들 백성들에게 일일이 손을 잡아주며 위로하고 추호도 폐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하였다.

뒤에 시인은 이 일을 글로 지어 예찬하기를
‘수많은 음병이 정군산을 둘러싸서/ 종회로 하여금 영신께 절하게 했네./ 살아서는 방책을 결단해서 유씨를 붙들었고/ 죽어서는 유언을 내려 촉국민을 보전했다./’
한편 강유는 답중에 있다가 위병이 크게 움직였다는 첩보를 받았다. 곧 요화, 장익, 동궐에게 격문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접응하라 하고, 한편으로는 군사와 장수를 적소에 배치하고 기다리게 했다. 마침내 위병이 당도하자 강유는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위병을 맞았다. 위병의 앞선 대장은 천수태수 왕기다. 왕기는 말을 달려 나오며 큰소리로 외치기를

“우리는 장수가 천명이고 군사가 백만인데 10로로 나누어 나오는 중이다. 우리 선진은 이미 성도에 도착했을 것이다. 너는 아직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항복하지 아니하니 천명을 모르는 어두운 놈이구나!”
“이놈 입이 대단히 걸구나. 말 많은 놈 치고 실속 있는 놈 못 봤다. 어서 나와 한판 싸우자.”
강유가 그리 말하고 창을 비껴들고 말을 달려 왕기를 취하려 나왔다. 이에 왕기가 한껏 마음을 부풀리고 대항했으나, 3합을 견디지 못하고 대패하여 달아나자 강유가 뒤를 쫓았다. 강유가 그렇게 2십 리를 쫓아가자 북소리와 징소리를 앞세우고 1군이 나타났다. 앞선 기를 바라보니 <농서태수 견홍>이라 대서특필했다. 강유는 코웃음을 치며 외치기를

“너 따위 쥐새끼 같은 무리는 나의 상대가 아니다.”
군사를 재촉하여 왕기의 뒤를 세게 쫓았다. 다시 강유가 십리 쯤 쫓아가니 그 때서야 비로소 등애의 군사가 나타났다. 등애와 강유의 양쪽 진영의 군사가 만나자마자 혼전을 이루고 싸웠다. 강유가 정신을 가다듬어 등애와 싸운 지 10여 합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때 강유군의 후면에서 함성과 함께 징소리 북소리 목탁소리가 함께 나며, 1군이 짓쳐들어왔다. 강유는 크게 놀라 급히 군사를 물리는데 보발군사가 달려와 고하기를
“감송의 모든 영채가 불타고 있습니다. 금성태수 양흔의 군사가 지른 것입니다.”

강유는 생각 밖의 일이 터지자 너무 놀라 응급조치로 명하기를
“부장들은 들어라! 군사 없는 빈 기호를 세워 허장성세를 펼쳐서 등애를 막아라! 나는 후군을 거두어 감송을 구하러 간다.”
강유는 감송으로 진군하다 중도에서 위장 양흔의 군사를 만났다. 양흔은 강유를 알아보고 감히 싸우지 못하고 산길을 골라 달아났다. 강유는 양흔의 뒤를 쫓아가다가 큰 바위 앞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우뚝 서고 말았다.

그때 바위위에서 별안간 화살과 돌이 날아왔다. 전진할 길이 막혀서 급히 말머리를 돌려 회군하는데 등애의 부대가 쇄도해 오더니, 순식간에 강유군을 포위해 버렸다. 강유는 죽기를 한하고 혈로를 내어 겨우 험지를 빠져나와, 대채로 들어가서 나오지 아니하고 구원병을 기다렸다. 강유가 꼼짝을 못하고 갇혀 지낼 때 세작이 전황을 가져와 보고하기를
“종회가 양평관을 깨고 그곳을 지키던 장서가 항복하고 부첨은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그래서 한중은 벌써 위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낙성수장 왕함과 한성수장 장빈은 한중이 항복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호제는 적을 막아 낼 수 없다는 판단이 서서 성도로 달아나 구원을 청했답니다.”

강유는 지키고 기다린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판단을 하고 곧 채를 거두라 명하고, 밤을 도와 강천어귀로 나왔다. 그때 앞에서 1군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금성태수 양흔의 군사다. 강유가 격노하여 말을 달려 짓쳐 들어가니 양흔은 강유와 교봉 1합에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이를 보고 강유가 급히 활을 당겨 달아나는 양흔을 쏘았다. 연거푸 세대를 쏘았으나 모두 빗나가고 맞추지 못했다.
‘아아! 강유의 명운이 다한 것이냐? 왜 이리 하는 일마다. 낭패란 말이냐. 내 운이 시드는 것이 아니냐?’
강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시도한 일이 모두 여의치 못하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활을 꺾어 버리고 말을 달려 싸움을 돋우었다. 그런데 또 일이 모로 꼬이기를 강유의 말이 말굽이 미끄러지면서 쓰러지자, 강유는 어이없이 낙마하고 말았다. 어이없이 엎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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