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성도성이 무너졌구나.②

제갈첨은 굳은 결의를 가지고 후주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7만 병사를 정돈하여 나와 제장들에게 물었다.
“나라가 위태롭다. 누가 선봉이 되어 난국을 돌파해 주겠는가?”
말이 끝나자마자 소년장수 하나가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아버님께서 이미 대권을 장악하셨으니 소자를 선봉이 되게 해주십시오.”
모두 보니 제갈첨의 장자 제갈상이다. 당년 19세로 무예가 출중했다. 제갈첨은 크게 기뻐하며 곧 상을 선봉으로 삼고 7만 대병이 성도를 떠나 위병과 대치하게 했다.

이때 등애에게 항복한 마막은 지도 한 벌을 등애에게 바쳤다. 지도 속에는 부성에서 성도 간 1백6십 리 도로가 세세하게 수록 되어 있었다. 특히 산천과 관계되는 도로 그리고 넓이의 좁고 넓고 험한 것이 모두 수록되어 있었다. 등애는 지도를 살펴보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부성만 지키고 있었더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구나! 촉병이 앞산에 주둔한다면 성공할 길이 없을 것이다. 날짜를 지연해서 강유의 군사가 당도하면 아군은 참으로 위기에 놓일 것이다.”
말을 마치고 곧 바로 사찬과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하기를

“너희들은 1군을 거느리고 밤을 도와 면죽으로 나가 촉병을 막아라. 내가 뒤 따라갈 테다. 절대로 태만해서는 아니 된다. 만약 너희가 가기 전에 촉병이 먼저 험준한 곳에 진을 쳐버렸다면 너희 목을 치리라.”
사찬과 등충 두 장수는 면죽으로 가서 진을 쳤다. 문기 아래서 촉진을 바라보니 8진을 치고 있었다. 북소리가 울리고 문기가 양편으로 활짝 열리자 수십 명의 장수들이 한 채의 사륜거를 옹위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수레위에 한 사람이 윤건 쓰고 학창의 입고 백우선을 들고 단정히 앉아있었다. 수레 곁에는 <한승상 제갈무후>라 대서특필한 누런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사찬과 등충 두 장수는 혼비백산하고 땀이 온몸을 흥건히 적시며 엉겁결에 말하기를

“어이쿠! 말로만 듣던 공명이 아직도 살아있었단 말인가!?”
급히 말을 돌려 달아나는데 촉병이 고함치며 시살하자 위병들은 대패하여 달아났다. 촉병은 그렇게 위병을 2십여 리를 추격하며 시살하자 죽고 상한 자가 부지기수였다.
이때 등애가 거느린 후군이 당도하여 위병은 겨우 전멸을 모면했다. 양군은 각기 쟁을 쳐 군사를 거두었다. 등애는 장대에 높이 올라 사찬과 등충을 불러 심히 꾸짖기를
“너희 두 사람이 싸우지 못하고 패해 달아났으니 무슨 까닭이냐?”

“제갈공명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타났으니 쫓길 수밖에 어찌합니까?”
아들 등충이 당연히 패한다고 단정적인 말을 하자 등애가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비록 공명이 다시 살아났을지라도 어찌 두려워한단 말이냐? 너희들이 경망되게 퇴군해서 패군이 되었으니 마땅히 목을 베어 군법을 밝혀야 하겠다.”
등애의 격노에 모든 장수들이 끼어들어 용서를 빌자 등애는 비로소 참형을 보류했다. 등애는 가만히 촉진에 세작을 보내 제갈무후의 흉내를 누가 내고 있는지 살펴오라 일렀다. 다음날 첩자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공명의 아들 제갈첨이 대장이 되고, 그 아들 상이 선봉이 되어 공명의 흉내를 내고 있는데, 수레위에 앉은 공명은 옛날 사마중달을 속였던 그 나무 조각상이었습니다.”

등애는 사찬과 등충을 불러 세작이 말한 사실을 전해서 알게 하고 영을 내리기를
“너희 두 사람이 속죄할 기회를 주노니 단단히 마음을 챙겨먹고 나가 싸워라. 제갈무후는 죽고 없다. 가짜 제갈무후 흉내를 내는 놈들에게 당하다니 말이 되느냐? 이번에도 성공치 못하면 반드시 보류해 두었던 군법을 시행하리라.”
두 장수는 다시 1만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움을 돋우었다.

제갈상은 필마단창으로 두 장수를 격퇴시키고, 제갈첨은 양편 군사를 지휘하여 친히 위진을 몰아쳤다. 여러 차례 그와 같이 몰아치니 위병은 대패하여 죽은 자와 상한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런가하면 등충과 사찬도 창상을 입고 목숨을 구해 달아났다. 제갈첨은 싸우면 이기고 땅을 빼앗으니 2십여 리를 위병은 물러갔다. 제갈첨은 도성 밖 5십 리 허에 영채를 단단히 세우고 위병을 막아 격퇴할 일로 부심했다.
이때 등충과 사찬은 부상을 당하고 돌아가 면목이 없어하며 등애를 뵈었다. 그러자 등애가 이들의 상처를 보고 책망하지 아니하고 제장들을 불러 모아 숙의하기를

“생각한 것 보다 제갈첨이 강하다. 그는 부친 제갈무후의 뜻을 계승하여 두 번 싸움에 나의 소중한 인마 1만여 기를 살상시켰다. 당장 제갈첨의 예기를 꺾지 못한다면 화가 우리에게 크게 미칠 것이다.”
이에 감군 구본이 나와 아뢰기를
“장군께서 제갈첨에게 편지를 보내 유인해 보십시오.”
“그렇다. 그 방법도 일리가 있다. 내가 편지를 써서 그를 유인해 보리라.”
등애는 그리 말하고 글을 써서 촉진으로 보내 제갈첨에게 전하게 하니

‘정서장군 등애는 글월을 행군호위장군 제갈사원 휘하에 올립니다. 절관(竊觀)하건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공의 아버지만한 분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 남양모려에서 나오실 때 삼국정립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형주와 익주를 장악하시어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업적은 고금 역사를 통 털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업이었습니다. 그 후에 6번 기산으로 출병하시어 비록 중원을 평정치 못했으나 그것은 지혜와 힘이 달린 것이 아니라 천수(天數)가 따르지 아니함이었습니다. 지금 후주가 혼미하여 왕기는 이미 종말을 고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등애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크고 중한 군사로 서촉을 공격하여 지세를 이미 얻었나이다. 아시다시피 성도의 위기는 오늘 아침이 아니면 내일 저녁으로 닥쳐왔음을 아실 것입니다. 공은 어찌해서 응천순인(應天順人)하지 아니하십니까? 만약 의로움을 따라 우리와 공생하기를 원한다면, 이 등애는 천자께 표를 올려서 공으로 하여금 낭야왕을 삼아 조종을 빛나게 할 것입니다. 제가 드린 이 글은 전혀 빈말이 아님을 맹세할 수 있습니다. 조감(照鑑)하소서...’
제갈첨은 등애의 글을 다 읽고 크게 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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