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 감상 -31

- 증취객(贈醉客) -
醉客執羅衫(취객집라삼)하니, 취객이 비단 적삼을 잡아당기니,

羅衫隨手裂(나삼수수열)을. 비단 적삼이 손길 따라 찢어지네.

不惜一羅衫(불석일라삼)이나, 비단 적삼 한 벌이야 아깝지 않으나,

但恐恩情絶(단공은정절)을. 은정(恩情)도 따라 끊어질까 두렵네.

◆지은이 매창(梅窓) : 1573(선조6)~1610(광해2)년 간의 기녀(妓女).
이 시는 기생(妓生)인 지은이가 귀찮게 매달리는 취객에게 희학적(戱謔的)인 표현을 써서 달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지은이는 부안(扶安) 땅의 기생으로 계생(桂生) 또는 계랑(癸娘)이란 이름을 가졌고, 매창(梅窓)은 지은이의 호이다. 기녀의 삶은 화려한 그 외형과는 달리 많은 고통을 머금고 산다.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은 님은 슬픈 꿈에서 깨어난 어느 아침 ‘뒤에 오마’하고 가버리고, 정도 생기지 않는 취객들은 이리 유혹하고 저리 매달린다. 아, 아! 석가모니가 말한 삶의 네 가지 고통 중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고통’과 ‘미운 사람과 다시 만나는 고통’도 그 속에 포함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생이 되고 보면 이 두 가지의 고통은 운명적으로 맛보며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는 사랑도 정도 싹트지 않은 취객이 매달릴 때 받는 고통이 담겨 있다. 좋은 사람이야 천만번 매달려도 좋겠지만, 싫은 사람은 한 번만 매달려도 괴로운 법이다. 더구나 싫어도 싫다는 소리도 할 수 없는 손님과 기생 사이이고 보면, 그 고통은 깊이가 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은이는 한 수의 재치 있는 시로 매달리고 치근대는 취객을 달래고자 한 것이다.

취객은 지은이의 비단 적삼을 잡아당기고 지은이는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니 고운 적삼이 쭉 찢어져 버린 것이다. 싫은 사람이 잡아당겨 옷까지 찢겼으니, 낭패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뭐라고 할 입장도 못 된다. 그래서 “비단 적삼 한 벌이야 아깝지 않으나, 은정(恩情)도 따라 끊어질까 두렵네.”란 시로써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물리치고자 한 것이다. 참으로 재치 넘치는 표현이며, 또한 능숙한 대응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드러운 말속에 강한 뼈를 담아낸 것에서 본다면, 지은이의 글 다루는 솜씨는 자유자재한 경지에 갔다고 할 것이다.

한국 한시 감상 -32

- 詠愁(영수) - - 근심에 대해 읊다 -
愁與愁相接(수려수상접)하니, 근심과 근심이 서로 이어지니,

襟懷苦未開(금회고미개)을. 괴로운 이 가슴 풀리지 않는구나.

黯黯無時盡(암암무시진)하니, 끝없이 이어지는 이 서글픔,

不知何處來(부지하처래)를. 어디서 오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네.

◆지은이 이씨(李氏); 고성(高城) 군수를 지낸 김성달(金盛達)의 소실.
이 시는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를 가졌던 조선시대의 한 여인이 겪은 내면의 고통을 읊은 작품이다.
이 시는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근심이 그 주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의 근심은 단순히 무엇을 걱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즈음 말로 하면 바로 우울한 감정인 것이다. 우울한 감정은 상실과 실패로 인해 유발되는데, 이것이 마음 속에 적체될 때 우울증이라는 심리적 질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데, 슬픔, 비관, 부정적 생각, 불면, 식욕과 성욕 감퇴 등의 증세를 초래한다.

우울증은 틀 속에 갇혀서 소극적인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잘 생긴다. 그래서 대체로 가정 주부에게 많이 유발되는데, 특히 많은 제약 속에서 삶을 살아야 했던 옛 시대의 여성들에게 더 쉽게 유발될 수 있는 질병인 것이다. 더욱이 이 시의 지은이처럼 훌륭한 재능을 갖춘 여인에게는, 우울증은 쉽게 찾아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은이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답답하고 서글픈 감정은 눈을 떠나 감으나, 한 순간도 쉼 없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이다. 지은이의 눈에는 온 세상이 암흑으로 보이고, 또 삶의 의욕조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물리치지 않으면, 결국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끊어내려고 그 뿌리를 추적해 보니,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 지은이는 한없이 넓고 깊은 우울의 바다 위에 던져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옥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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