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괄<대전광역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언제 이렇게 한가하게 바닷가를 걸었던가 아득하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백사장이다. 고운 모래밭에 사각거리는 감촉이 더없이 좋다. 제철 같으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부산할 해변이 적막강산이다. 야트막하게 밀려와 잘박거리며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전부다. 만조시간인지 물때는 잘 모르나 바닷물이 꽤나 들어와 있다. 뿌연 운무 속의 전봇대에 매달린 희미한 가로등이 훤해지는 새벽녘을 맞고 있다. 아침 다섯 시인데도 사물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훤하다.

고교 동창들이 버스 한 대를 채워 노을여행이란 제목으로 바닷가에 유람을 나왔다. 정년(停年)이나 명예퇴직을 하고 후선에 물러나 주변을 되돌아볼 나이가 된 것이다. 치열했던 지난 날은 미련 없이 보내고 남은 인생을 어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볼 겸 떠나 온 여행이다.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며 즐거운 학창시절도 추억하고, 제2의 인생을 어찌 할 것인가를 막걸리 앞에 놓고 밤새 노닥거렸다. 그래도 건강하게 친구들 옆에 있어주는 것도 의리가 있는 것이라고 우정 어린 시간도 가졌다. 또한 이젠 누가 누구의 흠을 왈가왈부할 나이가 아님도 공감했다. 땅거미가 물러가고 창밖이 희끄므레해지는 것을 보고서야 새벽임을 알았다. 밤새 이야기꽃에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이대로 바닷가나 걷자며 두여해변으로 산책을 나왔다.

해변가 안내판을 보니 지형이 아름답고 나무가 우거져 이전에 도인(道人)들이 살던 마을이라 하여 도여라 불렸다고 한다. 아마도 음(音)이 변하여 두여로 불리고, 오늘날 두여해변이라 부르는 것 같다. 바닷가를 보니 물결을 따라 헤엄치는 뱀장어처럼 돌출된 바닥부분이 물 밖으로 노출되어 특이한 모습이다. 오르내리는 해변의 능선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이곳은 천혜(天惠)의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모래톱에 뿌리를 내린 각종 야생화가 즐비하다. 보리사초 꽃망울은 아침이슬을 흠뻑 머금어 영롱한 물방울이 대롱거린다. 금잔화, 달맞이꽃이 해안가를 배경으로 활짝 피었고, 갯메꽃이 연분홍 꽃을 달고 모래밭을 기고 있다. 모래 언덕을 올라가니 선명한 해당화가 꽃봉오리를 옆에 달고 화사하게 피어 있다. 이슬에 젖은 꽃을 보니 더욱 곱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연분홍 꽃은 갓 시집온 새아씨의 고운 적삼 같기도 하다. 가까이 보니 꽃 속의 노란 수술을 보듬고 아침 잠에 빠져 있는 벌이 신기하다. 해당화와 벌의 아름다운 인연이다.

해당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이다. 주로 바닷가의 모래땅이나 산기슭에 자라고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키는 1.5m정도 큰다. 땅속줄기가 길게 뻗으며 사방으로 줄기를 내어 개체를 형성한다. 줄기에는 갈색의 커다란 가시, 가시털 등이 많이 나 있고 가지를 많이 친다. 잎은 어긋나며 작은 잎으로 이루어진 겹잎 형태다. 꽃은 5 ~ 7월경에 가지 끝에 홍자색으로 핀다. 백색으로 피는 흰해당화도 있다. 열매는 구형(球形)으로 가을에 적색으로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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