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의 이간책이 남긴 것①

‘성도성 함락’
등애는 정복자답게 도성으로 들어가 백성을 안돈시키는 방을 붙이고 창고를 열어 인심을 썼다. 초안하는 일을 태상 장준과 익주별가 장소에게 주었다. 또 사자를 강유에게 보내 항복을 권하고 후주가 항복한 일을 낙양 조정에 첩보를 띄웠다.
등애는 황호의 간특함을 알기에 그를 잡아 참형에 처하라 명했다. 그러나 황호는 교묘하게 뇌물을 써서 등애의 측근을 매수했다. 그래서 결국 죽음을 면했다.

이제 촉국의 조정은 문을 내렸다. 한이 완전하게 망한 것이다.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망하고 유씨가 모두 정치권에서 사라진 것이다. 4백년 사직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만약 강유가 손을 들어 버리면 한의 지엽마저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후주의 주문을 받고 장현이 검각에 있는 강유를 찾아갔다. 그리고 후주의 칙령을 전했다. 강유는 칙서를 보고 기가 막혀 한 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말문이 막힌 것이다. 그런가하면 강유의 막하 장수들은 더욱 분기 탱중하여 이를 부드득 갈면서 오열했다. 눈에서 불길이 솟아나왔다. 머리털이 거꾸로 일어서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칼을 빼어 휘두르다가 돌을 치며 아우성치기를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무슨 일이 그리도 성급하여 항복이란 말인가!”
장수들의 호곡소리가 산천을 진동했다. 강유는 그런 장수들의 마음을 다 읽고 그들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러분 근심하지 마시오. 내가 한실을 부흥시킬 계교가 있습니다.”
“장군님! 어떤 계책인지 말해 줄 수 없습니까?”
“좋소. 밀실로 찾아오시오. 내가 말해 주리다.”

강유는 비밀한 계교를 여러 장수 각각에게 일일이 세세하게 귀에 말로 일러 주었다. 그러자 강유의 말을 들은 제장들은 모두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강유는 검각관 위에 항복을 알리는 백기를 고르게 꽂았다. 그리고 사자를 가려 뽑아 종회에게 보내어 항복을 알리게 했다. 사자는 위의 진중으로 종회를 찾아가 예를 갖추어 절한 뒤 강유의 뜻을 전하기를
“강장군은 종도독께서 허락하시면, 장익, 요화, 동궐 등 제장과 모든 장병을 이끌고 항복하러 올 것입니다.”

“드디어 강도독께서 대단한 결단을 내렸구려. 어서 돌아가 안심하고 오시라하시오.”
종회는 사자에게 한잔 술을 대접하고 영접할 사람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종회는 엄한 분위기를 연출코자 꽃단장을 하고 기다리는데, 당당한 걸음걸이로 강유가 장중으로 얼굴을 보였다. 종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을 옮기어 강유를 반갑게 맞으며
“강백약이 드디어 나타나시었구려. 참으로 반갑소이다.”
강유는 눈물을 뿌리며 비감에 젖어 말하기를
“전군을 맡았던 몸이라 장군을 뵙는 것이 지연되었소이다.”

“아니오. 아니오. 늦다니요? 당연히 지연될 수밖에요. 강장군과 같이 사려가 깊은 지모를 갖춘 장수가 위에서 칙서가 도착했다 하여, 항복하기가 쉬운 일이겠소? 나는 모두 이해합니다.”
“장군께서 그리 말해 주시니 황감할 따름입니다.”
강유가 자기를 낮추고 종회를 극대우하여 말하자, 종회는 강유를 상빈으로 예우하고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강유가 종회에게 은근히 말하기를

“장군은 외난작전 이래 작전에 조금도 차착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사마씨의 등천하는 기세는 모두 장군의 힘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강유가 오늘 장군에게 마음을 열고 머리를 숙인 것은, 한 번 등애와 죽기 살기로 결단을 내고자함입니다. 내 어찌 항복을 좋아해서 이곳에 왔겠습니까?” “강장군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 조용한 데로 가서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합시다.”
종회는 장막 안 깊숙한 곳으로 강유를 인도해 가서, 자리를 잡아 앉혀 주고 말하기를
“내가 강장군의 깊은 마음을 이제야 알았소. 내가 뒷받침을 할 테니 등애와 진실로 한판 승부를 보시오.”
종회는 그리 말하고 곧 화살 한 대를 꺾어 맹세하고, 강유와 형제지의를 맺고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선심 쓰듯 말하기를

“이제 우리는 형제요. 하니 강장군은 예전의 모든 군사를 그대로 거느리고 대사를 성공시키는 일에만 전념하시오.”
“감사합니다. 강유가 장군을 위하여 최선책을 마련하겠습니다.”
강유는 그리 말하고 밖에 나와 후주의 칙명을 가져왔든 장현을 성도로 돌려보냈다.
한편 등애는 사찬으로 익주자사를 봉하고 견홍과 왕기에게도 주군을 거느리게 하였다. 면죽성에는 높게 대를 쌓아 전공을 기렸다. 또한 촉국의 관리들을 모두 모아 연회를 베풀고 술을 마시었다.
등애는 술이 얼근하게 오르자 좌중을 둘러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진실로 복 받은 사람들이다. 나를 만났기에 오늘날과 같은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등애를 만나지 못했다면 죽기 아니면 전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을 것이다.”
등애가 거드름을 피우며 그렇게 말하자 여러 관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등애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다.
“어허허. 고맙다. 고마워. 이제야 내가 파촉을 했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구나. 유선이 가졌던 성도를 내가 빼앗았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구나. 제장들은 허리띠를 풀어 놓고 오늘 만큼은 마음껏 마시고 즐겨라. 이 밤이 다가도록 마음껏 즐겨라!”

“장군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진실로 저희들이 장군을 따르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만수무강하십시오.”
좌중의 여러 장수들이 잔을 받쳐 들고 다 같이 일어나 덕담을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 때 등애의 여흥을 일깨우는 보고가 있었다. 강유를 만나러 갔던 장현이 돌아온 것이다. 장현은 등애의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듯 강유를 만나서 보고 들은 바를 숨김없이 등애에게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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