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의 이간책이 남긴 것②

장현은 등애 앞에 나아가 강유의 소식을 전하였다.
“장군! 검각에 있든 강유가 종회에게 자진하여 항복했습니다.”
“그래, 세상에 어찌 이런 경우가 다 있나. 강유가 나한테 항복을 하여야 순리일 텐데 어찌하여 종회에게 항복을 했단 말이냐?”
등애는 못 마땅하게 생각하며 곧 바로 글을 써서 사마소에게 올렸다.

‘신 등애의 생각은 군사는 선성(先聲)이 있는 후에 실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촉나라를 평정한 여세로 오를 친다면 천하를 석권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큰 전쟁의 뒤끝이라 장병이 모두 피곤하여 거듭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하오니 농우병 2만과 촉병 2만으로 소금을 굽고 철을 단련하여 배를 지은 후, 오에 사신을 보내 설유하면 싸움 없이 오국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촉국의 유선을 극우대해야 오국의 손휴의 마음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유선을 도성으로 불러들이면 오국의 손휴가 반드시 의심할 것이니, 아직은 유선을 성도에 두었다가 내년 겨울 쯤 도성으로 부르십시오. 유선을 부풍왕에 봉하시고 재물을 주어 좌우 시신을 부양케 하시고, 그의 자손들에게도 벼슬을 내려 공경을 삼아, 오국 손휴의 측근이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하소서. 그들은 촉국의 사직이 온존하고 부귀가 여전한 것을 보고 은위병행(恩威竝行)한 것을 보면, 그 덕망에 스스로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사마소는 등애의 글을 읽고 심히 불쾌해했다. 모든 것을 제 멋대로 처리하므로 등애를 크게 의심하였다. 사마소는 천자의 조칙을 내리고 따로 등애에게 보내는 글을 위관을 주어 보냈다. 천자의 조칙은 다음과 같다.
‘정서장군 등애가 적경을 넘어 들어가서 참칭한 왕을 굴복시켜 항복받은 공은, 한나라 초기에 한신이 초를 격파하고 조를 이긴 공에 견주어 부족하지 아니하다. 등애로 태위를 삼아 2만호를 증읍하고 두 아들을 봉하여 정후를 삼아 각각 천호의 식읍을 하사하노라.’

등애가 조서를 받으니 감군 위관이 따로 사마소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등애가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편지를 펴보니
‘장군의 건의는 앞으로 천자께 아뢰어 곧 회보할 테니 모든 것을 당분간 처리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시오.’
등애는 심히 불쾌했다. 그래서 중얼대기를
‘장수는 밖에 있어 임금의 명을 일일이 받지 않아도 된다. 내가 상소로 아뢰었는데 진공은 어찌 나의 일을 막는단 말인가?’

다시 편지를 써서 사자를 낙양으로 보냈다. 이때 조정에서는 등애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넘겨짚어 말하기를
‘등애는 반드시 반할 것이다.’
중론이 그러하니 사마소는 초조한 마음이 되고 더 한층 등애를 의심하고 질시했다.

이때 등애가 보낸 사자가 사마소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사마소가 깊게 의심한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보니
‘등애는 명을 받들어 서촉을 정벌하여 원악(元惡)이 이미 복종되고 권도로 일을 처리하여 성민을 안정시켰습니다. 앞으로 국명을 기다려서 일을 처리하게 된다면 이곳과 낙양이 거리가 너무 먼 고로 어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시간은 황금과 같은 것이라 불요불급한 일은 마땅히 소장의 재량으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춘추에 기록하기를 <장수가 국경 밖에 나가서 사직을 편안하게 하고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전천(專擅)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지금 오를 평정할 때입니다. 기회를 잃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병서에 말하기를 <나가는데 명예를 취하여 전쟁하지 말고 물러 갈 때는 죄를 피하지 마라.> 하였습니다. 등애가 고인과 같은 절개는 없으나 국가에 손해를 끼칠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먼저 장계로 올리니 앞으로 시행하는 것을 두고 보십시오.’

사마소는 등애의 편지를 읽고 크게 놀라 곧 가충을 불러 의논하기를
“등애가 공을 믿고 교만방자하며 날뛰겠다 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임의대로 국사를 처리한다 하니 이것은 반역이 아니겠소. 이것은 등애가 보낸 편지이니 자세히 살펴보시오.”
가충이 등애의 편지를 읽고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왜 종회로 제어하라 명하지 아니하시고 근심하십니까?”
“그렇소. 종회를 이때 써먹어야 하겠구려.”

사마소는 가충의 진언을 받아드려 곧 조서를 내려 종회로 사도를 삼고 위관에게 친서를 주어 명하기를
“양로군마를 감독하여 종회와 함께 등애를 사찰 감독하여 변을 미리 막아라!”
또 종회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직위를 높이고 녹봉을 더하는 조서를 주어 보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진서장군 종회의 공을 치하하노라. 그대는 백전백승으로 국위를 드높이고 한중을 짐의 영토로 만들었으니 누가 그 공을 작다할 것인가. 하여서 짐은 그대를 사도로 삼아 현후로 진봉(進封)하여 1만호를 더 식읍으로 주고 두 아들도 천호정후를 봉한다.’
종회는 사마소로부터 봉작을 받고 편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강유를 불러오게 하였다. 종회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강유에게 종회는 사마소의 정치군사적인 행위를 숨김없이 다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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