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 강사

<여설>누구나 참된 우정에 대해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귀감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참된 우정에 관한 故事(고사)를 살펴 보겠다. 역사 속에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말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고사(故事)는 바로 우정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 2700여 년 전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인 ‘관중’과 ‘포숙아’는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로서 둘도 없는 친구사이로 지내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순탄하게만 지내왔던 두 사람의 우정도 거센 정치풍랑에 부딪치게 되었으나 두 사람의 우정은 거센 정치풍랑에도 오히려 꿋꿋하고 아름답게 지켜졌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귀감이 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2700여 년 전의 ‘관중’과 ‘포숙아’가 되어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어 보기로 한다. 죽마고우였던 ‘관중’과 ‘포숙아’는 정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관중’은 당시 제나라 군주 ‘양공’의 아들인 ‘규’의 측근으로, ‘포숙아’는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의 측근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혼란한 정치상황 속에서 아버지인 ‘양공’이 죽자 두 형제간에 왕위 쟁탈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고 죽마고우였던 ‘관중’과 ‘포숙아’도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게 되었다.

두 형제의 왕위 쟁탈전에서 승리한 이복동생인 ‘소백’은 ‘환공’이 되어 제나라 왕위를 이어 받게 되었고 왕위 쟁탈전에서 패한 ‘규’는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규’의 측근이었던 ‘관중’은 압송되어 사형에 처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환공의 측근이 된 ‘포숙아’는 눈물로서 자기의 주군인 ‘환공’에게 간언(諫言)하였다. “전하,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 할 것이 옵니다.

하오나 천하를 얻으려 하시면 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관중’을 기용하시옵소서.” 이에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 들여 ‘관중’을 재상으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대정치가로서의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환공’을 춘추(春秋)의 첫 패자(覇者)로 만들었다는 것이 ‘관포지교’의 고사(故事) 줄거리다. ‘관중’과 ‘포숙아’가 나눈 우정의 고사를 통해 몇 가지를 성찰해 보기로 한다.

▲첫째, ‘관중’과 ‘포숙아’가 한 때 정적이 되었어도 두 사람의 우정은 정세에 흔들리지 않고 변치 않았다. 지금 나의 우정과 인간관계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지 않는지.

▲둘째, ‘포숙아’는 ‘관중’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혼신을 다 하였다. 나는 친구나 남의 어려움을 구제하는데 내 자신의 어려움처럼 혼신을 다 할 수 있는 의협심이 있는지.

▲셋째, ‘포숙아’는 ‘관중’이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남을 인정하여 아낌없이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추천하였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자신도 친구인 관중의 부하가 되었다. 나는 나보다 뛰어난 친구나 동료를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시기 질투하고 있지는 않는지.

▲넷째, ‘포숙아’로 인하여 목숨까지 구할 수 있었고 재상까지 된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해 이렇게 술회하며 ‘포숙아’의 진심어린 우정에 감사해 하였다. “내가 가난하게 살았을 때 포숙아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아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 쫓겼지만 포숙아는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아는 나를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숙아’는 자기보다 어려운 ‘관중’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어 양보하고 너그럽게 감싸주었다. 상대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보면 역지사지(易地思之)로서 이해하고 감싸 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나에게 있는지

▲다섯째, ‘관중’또한 자기가 이룬 공을 모두 ‘포숙아’에게 돌리었다. ‘잘못된 것은 남의 탓이요. 잘된 것은 내 탓이요.’라는 말처럼 남의 공을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는지. ▲훗날 ‘관중’이 ‘포숙아’에 대해 술회하기를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님 이지만 나를 알아 준 이는 ‘포숙아’”라 하였다. 그렇다. ‘지기지우(知己之友) 즉 나를 알아주는 친구는 과연 있는가.’하는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관중과 포숙아에 대한 평에서 ‘관중’의 빼어난 능력을 칭송하면서도 그를 끝까지 이해하고 우정을 보여준 ‘포숙아의 인간됨에 대해서 더 높이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손을 뒤집으면 구름이 되고 다시 엎으니 비가 되니 어지럽고 경박한 세상인심 헤아릴 길 없구나. / 그대는 보지 못 하였는가 ’관중‘과 ’포숙아‘의 어려웠을 적 사귐을 / 요즘 사람들은 우정 버리기를 흙 버리듯 하네. (두보)

- (인문교양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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