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 종회 등애의 최후.(2)

살육전이 크게 벌어지고 나니 궁중에는 수백인의 시체가 즐비했다. 위관은 싸움이 끝나자 영을 내렸다.
“모든 군사들은 각기 자기 영문으로 돌아가 명을 기다려라! 종회의 반란은 끝났다.”
종회의 종말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군사들은 영채로 돌아가고, 몇 안 되는 장수들이 남아 강유의 시체를 거두어 촉국의 원한을 갚는다고 강유의 배를 갈랐다. 시뻘건 간 사이에 쓸개가 달걀보다 더 큰 것이 새파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아! 그놈 담 한 번 크네. 대단히 큰 담이야. 소 쓸개만큼 크네요.”
한 마디씩 하고 다시 이들은 강유의 집으로 달려가, 그의 가족들을 잡아다가 저자에 끌어내어 죽였다.
한편 등애의 부하 장졸들은 강유와 종회가 죽자, 등애를 함거에서 풀어주려고 면죽성으로 급히 말을 몰아 달려갔다. 그러자 이 사실을 급히 위관에게 알리는 사람이 있었다.
위관이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하며 말하기를

“등애는 내가 잡아 함거에 실었다. 만약 등애가 살아나면 나는 죽어도 장사지낼 땅도 없을 것이다.”
크게 걱정하자 곁에 있던 호군 전속이 말하기를
“저번에 등애가 강유땅을 취하고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 원수를 내가 갚겠소이다. 감군영감은 이 일을 나에게 맡겨 주시오.”
“고맙소. 그리하시오. 실수 없게 속히 처치하시오.”

위관은 곧 전속에게 경기 5백을 주어 등애 부자를 죽이라 했다. 전속이 급히 경기 5백으로 달려서 면죽성에 당도하자, 등애의 부하들이 먼저 와서 등애 부자를 함거에서 꺼내어 성도로 돌아가려했다. 등애는 본부 병이 자신을 호위하러 온 줄로 착각하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때 전속이 나타나 등애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자, 등애가 무슨 말인가 물으려 하는데 전속이 칼을 휘둘렀다. 번개 불에 콩 구워먹듯 등애의 목을 내리쳐 죽였다. 방심이 등애의 목숨을 가져간 것이다. 이런 불상사를 바라보던 아들 등충이 크게 놀라 맨손으로 전속에게 달려들었으나, 아무리 뛰어난 장수라도 무기가 없는 맨손이다 보니 칼을 맞고 분하게 죽었다. 후인이 시를 지어 등애의 죽음을 탄식했다.

‘어려서부터 계산이 빨랐고/ 꾀가 많아 용병도 잘했다./ 영롱한 눈동자 지리를 판단했고./ 하늘을 우러르며 천문을 보았네./ 말을 달리니 산부리가 끊어졌고/ 군사를 몰고 가니 돌길도 갈라졌다./ 공을 다 이루고 몸이 그만 죽었구나!/ 원통하다. 그 한은 한강 구름에 엉키었구려./’
종회를 탄식하는 시도 있으니 감상해 보자.
‘소년 때는 슬기롭다 일컬었고/ 일찍이 비서랑을 하였다./ 묘한 계교로 사마소를 움직였고/ 당시엔 장자방이라 칭찬했다./ 수춘에서 찬획한 일이 많았고/ 검각에서 위세가 당당했다./ 도주를 배워서 숨어 버리지 못하고/ 무주고혼이 되어 고향을 바라보며 슬퍼하네./’

강유를 탄식한 시는 이러하다.
‘천수땅에 영준이라 자랑한 사람/ 양주땅에서 나온 기이한 재주다./ 계보는 강태공의 후예요, 병법은 무후의 제자였다./ 담대하니 두려움이 없고 영웅의 마음 맹세코 돌리지 아니 했네./ 성도에서 몸이 죽는 날 한나라 장수들 남은 슬픔이 있었네./’

동이인의 후예인 한 사람으로써 삼국지를 개작하다 보니 강유에 대한 애착이 매우 컸다. 강유의 계보는 강태공의 후예라고 시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한족의 싸움판에서 동이족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강감참 장군의 시호에 天水천수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천수 땅에서 태어난 강유와 연관된 단어가 아닌가 하여 연구를 필요로 한다 하겠다.

다 아는바와 같이 위장들이 종회를 죽이고 강유도 죽이고, 그리고 그 가족들도 모두 다 죽였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역적은 삼족이나 구족을 멸하던 연좌형벌이 엄격하던 전국시대에 강유의 혈통이 어떻게 보존되어 어떻게 면면히 이어 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드날렸던 강감찬 장군의 시호에 천수라는 단어가 묻어 있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아무튼 세월은 흐르고 역사는 기록되기를 거듭했으나, 강유가 이 삼국지 후반부를 장식한 동이족의 따듯한 피라는 사실 만은 밝혀두는 바이다. 그리고 강감찬 장군의 시호를 적어 보면 <檢校太尉門下侍郞洞內史 門下平章事天水縣開國男 食邑三百戶>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여기에 묻어온 천수현(天水縣)은 무엇일까? 강유가 태어난 천수현은 아닐까? 강유의 태생지를 기념하여 강감찬 장군의 시호에 붙여 넣었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감히 한 마디 덧붙여 본다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동이족의 피에 대한 애착이, 그때 그 사람들은 훨씬 더 강했던 것이 아닐까?
세월이 흘러 무상한 역사 속에서 혈통의 중요성이 사라져가는 이때에, 조상들의 글자 한자 한자에 겻 드린 정성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쪼개지면 합쳐진다는 중원역사의 교훈을 두고 삼국지를 쓰고 읽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역사의 정의는 아니다.

세계사는 분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큰 것 보다 작은 여러 개로 나뉘고 있다. 중국땅을 제외한 모든 땅덩어리는 분열하여 더욱 행복해 지고 더 발전하였다. 중국도 머지않아 세계사조를 따라갈 것이다. 한국인도 동이족에 대한 애착이 없어진 것처럼 남북한의 문제도 국제정치의 이해관계 때문에, 어차피 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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