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고전번역가

한국 한시 감상 - 35
- 金剛山(금강산) - - 금강산(金剛山) -
朝鮮金剛出(조선금강출)하니, 조선에 금강산이 솟아나니,

中原五嶽低(중원오악저)를. 중국의 오악(五嶽)이 낮아졌네.

仙人多窟宅(선인다굴택)하니, 신선들이 굴 속에 많이 살기에

王母恨西生(왕모한서생)을. 왕모(王母)도 중국에 태어남을 한하리.

◆지은이 14세의 여아(女兒): 자세한 인적사항은 알지 못하겠다.
이 시는 금강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금강산(金剛山)은 철마다 상이한 절경을 연출하기에, 철마다 그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기화요초가 아름다워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단풍이 좋아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기암괴석이 뼈같이 드러나므로 개골산(皆骨山)이라 한다.

또한 금강산은 경치만 뛰어날 뿐 아니라, 속세와는 다른 기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정신 수양이나 심적 위안을 얻으려는 이들이 많이 찾아드는데, 그 중에 더러는 신선이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중원(中原)의 오악(五嶽)은 산동성의 태산(泰山)이 동악, 섬서성의 화산(華山)이 서악, 호남성의 형산(衡山)이 남악, 산서성의 항산(恒山)이 북악, 직례성의 숭산(崇山)이 중악이다. 이들 산은 중국인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산이다. 지은이는 이들 산이 금강산에 비하면, 오히려 그 격이 떨어진다고 했다.

금강산은 신령스런 기운이 있어, 많은 선인(仙人)들이 곳곳의 바위굴에 깃들어 산다. 그리고 신비한 봉우리는 비록 속인일지라도 발길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속된 정신을 씻어준다. 그래서 왕모(王母), 즉 유명한 여자 신선인 서왕모(西王母)도 금강산에 살지 못하고, 중국 땅에 머물러 산 것을 후회할 것이라 한 것이다.
지은이는 14살 밖에 안 된 여자아이이다. 이 점을 참작하여 이 시를 본다면, 지은이의 타고난 시적 재능은 아주 높다 할 것이고, 또한 사대주의 사상에 찌든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금강산을 통해 국가적 자존심을 높이고 있다는 데서 기특하다 할 것이다.

한국 한시 감상 - 36
- 懷人(회인) - - 사람을 그리워하다 -
病葉風前語(병엽풍전어)하고, 병든 잎은 바람 앞에서 소리를 내고,

殘花雨後啼(잔화우후제)를. 지다 남은 꽃은 비 뒤에 눈물 맺었네.

相思千里夢(상사천리몽)하니, 천리 먼 길을 꿈속에서 그리워하는데,

月在小西樓(월재소서루)를. 달님은 소서루(小西樓) 위에 걸려있네.

◆지은이는 신익성(申翊聖)의 여종: 자세한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
이 시는 전경을 빌어서 그리움을 애절히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지은이는 노비의 신분인데, 노비의 신분으로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예사로운 노비가 아님을 짐작케 한다. 필시 지은이는 학문을 쌓은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자신의 회포를 함축적이면서 기교 있게 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가장(家長)이 나라에 대역죄를 지어, 가족 중 일부는 사형을 당하고, 지은이를 포함한 일부는 노비로 전락되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살아가는 신세가 된 것이리라. 그것이 아니라면 가세가 기울어 가족들이 흩어져 스스로 노비가 된 것이든지.

비운의 지은이로서는 잎을 보아도 병든 잎만 눈에 보이고, 꽃을 보아도 지다 남은 꽃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원래 사물은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달라 보이는 법인데, 그 예가 두보(杜甫)의 「춘망(春望)」이란 시에서도 보인다.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요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즉 “시국을 생각하니 꽃이 눈물을 흘리게 하고, 이별을 한하니 새가 마음을 놀라게 하네”라 했다. 나라는 난리 통에 파산되었고,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자, 꽃과 새들에게도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리운 이를 보고파하는 심정을 ‘꿈’과 ‘달’을 통해서 더욱 고조시켰다.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다가 어렴풋이 잠을 깨어 밖을 보니, 달님은 무심히 누각 위에 걸려있는 것이다. 이때 지은이는 아마 깊이를 알 수 없는 좌절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이 시는 지은이의 감정을 전경과 교묘히 합일시켜, 음미하는 자로 하여금 시공에 걸림 없이 공감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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