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가 사마씨의 것③

사마염의 위세에 눌려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조환에게 느닷없이 사마염이 나타났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연통을 하지 않고 후궁으로 들어갔다. 후궁에 있던 위왕 조환이 깜짝 놀라 용상에서 내려와 사마염을 맞았다. 염이 조환과 마주 앉아 물었다.
“위의 천하는 누구 힘으로 얻어진 것입니까?”
“진왕의 조부의 힘으로 얻어진 것이지요.”

“아하하하. 내가 보기에 폐하께서는 문에 있어 그 소양이 도를 논하지 못하고, 무에 있어 방국(邦國)을 경륜하지 못하시니 어떻습니까? 재덕이 구비한 이에게 나라를 양여 하시는 것이...”
“... ...”
조환이 입이 굳어져 할 말을 찾지 못하자 곁에서 황문시랑 장절이 염을 꾸짖기를
“진왕의 말이 틀리었소. 지난날 위의 무조황제께서 동탕서제(東蕩西除)하시고 남정북토(南征北討)하시어 천하를 얻으신 것입니다. 지금 천자께서는 덕이 있어도 허물은 없습니다. 무슨 까닭에 타인에게 나라를 양여하라 하시오?”

“이런 발칙한 놈을 봤나! 이 사직은 대한의 사직이다. 조조가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강박해서 스스로 위왕이 되어 한실을 찬탈한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위를 도와 천하를 얻은 것이지 조조가 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실인즉 위국은 사마씨의 힘으로 얻어낸 나라다. 내 어찌 오늘날에 와서 위의 천하를 양여 받지 못하겠느냐?”
사마염의 말에 장절이 다시 받아치기를
“당신이 만약 위국을 양여 받는다면 이것은 역적질을 하는 것이다.”
“네 이놈, 이 발칙한 놈아! 나는 한실을 위하여 원수를 갚을 것이다.”

사마염은 무사에게 명하기를
“저런 발칙한 놈을 몽둥이로 쌔려 죽여라!”
무사들이 조환이 보는 앞에서 우르르 몰려오더니, 장절을 전 아래로 끌어내려 금부은과(金斧銀瓜)로 박살을 내어 죽였다. 이런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던 조환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마염에게 고하기를
“그저 목숨만 살려주시오. 모든 걸 다 당신이 가져가시오.”
사마염은 조환이 그토록 애원하건만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전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 중얼대며 가기를
‘멀쩡한 놈이 좀 눈치가 있던가? 내가 들어대니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말을 조환은 듣지도 못하고 그저 살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가충과 배수를 청하여 묻기를
“내 일이 급하니 어찌해야 살겠소?”
“가충이 생각키에는 폐하께서는 큰 운수가 다 했다고 봅니다. 하늘의 일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한실 때 헌제의 일을 본떠서 수선대를 중수하여 대례를 갖추어 진왕께 선위하십시오. 이것이 위로 천심에 합하는 일이고 아래로 만백성의 뜻에 합당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시면 폐하께서는 생명을 보존하시고 근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경이 그리 주선해 주시오.”
조환은 징그러운 물건을 어서 속히 버리듯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가충에게 명하여 수선대를 쌓고 12월 갑자일에 선위할 것을 결정했다.

그해 12월 갑자일은 조조가 나라를 세워 조조의 후손이 위국을 이어가던 마지막 날이다. 그의 손자 조환이 위국을 들어 사마염에게 나라를 바친 날이다. 조환은 문무백관을 다 모아 서게 하고 전국옥새를 받들어 수선대 위에 섰다. 두 다리가 덜덜 떨려서 마치 사시나무가 떠는 것 같았다. 그런 조환을 사마염은 한 차례 보더니 당당하게 거보를 움직여 단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조환이 사력을 다하여 옥새를 사마염에게 넘겨주고 된 호흡을 몰아쉬며 겨우 단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 예에 따라 공복으로 바꾸어 입고 간신히 반열의 머리에 섰다. 수선대를 바라보니 사마염은 이제 당당하게 대상에 정좌했다. 주인 행세를 여유 있게 부리고 있었다. 가충과 배수 등등 열혈 중신들은 칼 짚고 왼쪽 줄에 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환이 두 번 절하고 땅에 엎드리자 가충이 고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 건안 25년에 위국은 한나라로부터 선위 받아 이미 45년이 되었다. 이제 하늘의 녹 줄이 끊어지고 이를 진나라가 잇게 되었다. 사마씨의 공덕은 높고 높아 하늘에 닿고 온 땅에 가득하다. 황제의 정위에 나가 위통을 계승하게 되었다. 너 환을 봉하여 진류왕을 삼으니 금용성에서만 제한하여 거주하라! 시각을 지체치 말고 일어나 가라! 조서를 내려 부르기 전에는 마음대로 도성출입을 금한다.’
조환은 고유를 받고 울면서 절하고 물러갔다. 이에 태부 사마부가 조환의 앞으로 나가 울며 절하고 아뢰기를

“신의 몸은 위국의 신하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 위국을 바라며 살겠나이다.”
사마염은 이와 같은 사마부의 행동을 보고 그 자리에서 당장 그를 안평왕에 봉했다. 그러나 사마부는 그것을 받지 아니하고 물러갔다.
이날 문무백관은 수선대 앞에서 재배하고 산호만세(山呼萬歲)를 불렀다.
사마염은 위통을 이어 국호를 대진이라 하고 연호를 태시 원년으로 반포하고 천하에 대사령을 내렸다. 드디어 위국이 망하고 대진이 일어난 것이다. 뒷사람이 위국이 망한 것을 보고 시를 지으니

‘위는 한실을 삼키고 진은 조씨를 삼켰다./ 하늘의 순환하는 이치 도망할 길 없구나!/ 가련타 장절의 충성된 죽음이여!/ 한 개 주먹이 어찌 태산을 막을 수 있으랴./’
대진국이 일어나니 진제 사마염은 조부 사마의를 추시(追諡)하여 선제로, 백부 사마사를 경제로, 아버지 사마소를 문제로 하고, 7묘(廟)를 세워서 조종을 빛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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