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국 천하를 통일하다.①

진병이 우저를 함락하고 오나라 깊숙이 쳐 들어갔다. 왕준은 사람을 진왕에게 보내어 승전보를 띄우니 사마염이 크게 기뻐했다. 그러자 가충이 곁에 있다가 아뢰기를
“우리 군사가 오래 동안 밖에서 싸워 피로하고 지쳐서 환자가 많을 것입니다. 우선 군사를 소환하여 힘을 기르고 다시 큰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화가 곁에서 아뢰기를

“지금 큰 군사가 저들의 소굴로 들어가서 오국사람들이 간담이 떨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한 달이 채 못 되어 손호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런데 경솔하게 군대를 소환하는 것은 지금까지 세운 공을 폐기시키는 일이 됩니다. 조금만 더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라 믿습니다,”
그러자 사마염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가충이 장화를 꾸짖기를
“너는 천시와 지리를 살피지 못하면서 망령되이 전쟁을 충동질하여 사졸을 괴롭히려 하느냐? 비록 네 목을 참한다 해도 천하에 사죄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자 사마염이 가충을 타이르기를
“이것은 짐의 뜻이다. 장화는 짐과 뜻이 같을 뿐이다.”
그때 시자가 두예의 상소문을 가져와 사마염이 펼쳐보니, 급히 진병하여 오국을 도모한다는 상소였다. 이에 사마염이 즉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두예와 왕준은 진왕의 명에 따라 수륙으로 대군을 이끌고 나아가니 북소리 산천을 진동하고 군사의 행진은 바람같이 빨랐다. 오병들은 싸우지 아니하고 깃발만 보면 도망치거나 항복했다. 오왕 손호는 이런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고 말았다. 연전연패를 계속하며 몰리자 문무백관이 모여 손호에게 고하기를
“진병이 오는 곳에 강남 백성들은 싸우지 아니하고 항복부터 하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짐은 우리군사가 항복하는 연유를 알지 못하겠다. 어찌 백성이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지 아니하고 항복한단 말인가?”

“모든 신하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오늘의 화근은 모두 잠혼의 죄입니다. 폐하께서는 속히 잠혼의 목을 참하십시오. 그러면 신 등이 성 밖에 나가서 한 번 결사전이라도 벌여보겠나이다.”
“어찌 짐을 속이려 드오. 그까짓 내관 하나 때문에 관민이 등을 돌린다는 말을 짐은 믿지 못하겠소.”
“폐하께서는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르게 가지소서. 촉국이 망하는데 절대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은 내시 황호였습니다. 그런데 잠혼을 싸고 도십니까? 어서 죽이시오. 이 나라 사직이 위태롭게 된 것은 다 그 내시 놈 때문입니다.”

모든 신려들이 손호의 명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일제히 후궁으로 들어가, 잠혼을 잡아 칼로 난도질하여 죽였다. 그리고 살을 베어 날로 씹는 자도 있었다.
이때 도준이 오왕 손호에게 아뢰기를
“폐하, 신의 전선은 모두 작은 배 뿐입니다. 큰 배에 2만 군사를 태워서 싸운다면 적을 격파할 수 있겠습니다.”

“어서 큰 배를 내어 싸우라!”
손호가 허락하고 곧 어림군사를 도준에게 주어 적을 막게 했다. 그리고 전장군 장상에게 수병을 주어 하류로 가서 싸우게 했다. 두 부대가 행군할 때 갑자기 서북풍이 크게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병의 깃발이 동시에 쓰러져 배안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겁을 먹은 수병들이 각각 배를 끌고 제멋대로 달아나 버렸다. 오로지 장상과 그의 근위병들 수십 명이 남아 적병을 기다려야 했다.
한편 진장 왕준은 돛을 높이 올리고 삼산 앞을 지날 때 사공이 말하기를

“풍랑이 매우 거칩니다. 이러면 배가 나갈 수 없습니다. 풍세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잠깐 쉬었다 행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준이 칼을 빼어 들고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내가 석두성을 취해야 한다. 어찌 한 시진인들 머무른단 말이야!”

곧 북을 치며 물결을 헤쳐 나갔다. 오장 장상은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군사와 더불어 항복했다. 그러자 항복을 받는 조건으로 왕준은 장상으로 앞잡이가 되어 공을 세우라 했다. 장상은 뱃머리를 돌려 석두성 앞에 당도하자 큰 소리로 문을 열라했다. 오병들은 자기 편 대장의 얼굴을 보고 급히 성문을 열자 장상은 진병을 영접해 안으로 들어갔다. 오왕 손호는 진병이 벌써 입성했다는 소문을 듣고 목을 찔러 자진하려 했다. 그러자 중서령 호충과 광록훈 설영이 이를 보고 아뢰기를

“폐하께서는 어찌해서 안락공의 일을 본받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하십니까?”
“그래, 어찌하면 살 수 있겠는가?”
“관을 매고 스스로 결박하고 문무백관과 함께 왕준의 군전에 나가 항복하십시오.”
손호는 호충과 설영이 시킨 대로 준비하여 왕준 앞에 나아가 항복을 바쳤다. 그러자 왕준이 손호의 결박을 풀어주고 관을 불 질러 태운 후에 왕의 예로 대접했다.
이를 두고 당나라 시인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왕준의 누선 익주로 내려가니/ 금릉의 왕기는 암연히 스러졌네./ 천길 쇠사슬 강바닥에 잠겨있고/ 한 조각 항복하는 기 석두성에 날렸네./ 인간 세상에 상심된 지난일 몇 번이나 되는가./ 산 얼굴은 의구하게 찬 강물에 잠겼네./ 이제 사해가 한 집안 되는 날/ 옛 집터엔 소슬한 가을바람에 갈대꽃만 피었구나./’

이렇게 동오가 망하니 4주 43군 3백 13현 호구 52만 3천 군리 3만 2천 병 23만 남녀노유 2백 30만 미곡 280만 휘 주선 5천여 척 후궁 3천여 인이 모두 다 대진의 것이 되었다. 큰일이 모두 결정 되자 방을 붙여 백성을 안돈하고 부고창름(府庫倉廩)을 다 봉했다.
다음 날 도준의 군사는 싸우지 아니하고 저절로 무너져 버렸다. 낭야왕 사마주와 왕융의 대 부대도 당도했다. 왕준이 큰 공을 세운 것을 보고 모두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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