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고전 번역가

김기의 [한시감상] 39
- 大同江(대동강) -
雨歇長堤草色多(우흘장제초색다)한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를.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고.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녹파)를.
- 대동강 -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이 짙은데,
그대 보내는 남포(南浦)에서 슬픈 노래 불러보네.
대동강물은 어느 때나 마르려나.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 위에 더해지네.

◆지은이: 정지상(鄭知常)
이 시는 이별의 정을 노래한 시인데, ‘송인(送人)’이란 제목으로 학생들의 문학 교과서에도 소개되고 있다.
지은이 정지상은 고려의 12시인 중에 속하는 인물인데, 정지상과 김부식(金富軾) 사이에 이런 일화가 있다. 정지상이 “琳宮梵語罷(임궁범어파)하니, 天色淨琉璃(천색정유리)를”, 즉 “법당에 염불 소리 끝나니, 하늘빛이 유리같이 맑아졌네”라는 시를 지었는데, 김부식이 이 시를 보고 탐이 나서 자기에게 달라고 졸랐다. 정지상이 끝내 주지 않자, 이때부터 김부식은 정지상을 미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묘청의 난 때, 정지상은 마침내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했다.

비에 씻긴 풀들이 돋아난 강둑은 희망이 넘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강둑의 세계와는 달리 정인(情人)과의 이별을 맞이하여, 도리어 슬픔의 세계 속에서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희망이 넘치는데, 자신만 슬픔 속에 있으면, 슬픔이 더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에 지은이는 한 곡조의 노래로서 짙은 슬픔을 달래보는 것이다.

3, 4구에서는 과장법을 써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즉 만약 이별의 눈물이 이렇게 해마다 대동강 물결 위에 뿌려진다면, 아마 대동강은 영원히 마를 날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과장법을 쓴 것은 이별에 임하는 지은이의 슬픔이 그만큼 깊음을 표하기 위해서다.
이 시는 이별의 슬픔이 슬픔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슬픔 속에는 도리어 따스한 인정이 숨어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허균(許筠)은 이 시를 두고 절창(絶唱)이라 칭송했었다.

김기의 [한시감상] 40
-漁磯晩釣(어기만조)-
魚兒出沒弄微瀾(어아출몰농미란)한데,
閒擲纖鉤柳影間(한척섬구류영간)을.
日暮欲歸衣半綠(일모욕귀의반록)한데,
綠煙和雨暗前山(녹연화우암전산)을
-낚시터에서 저녁까지 고기를 낚다-
고기가 뜀박질을 하여 물결을 희롱하는데,
가는 낚시 바늘을 버들 그림자 속에 한가히 던지네.
저물어 돌아가려 하니 옷이 반쯤 푸른 안개에 젖는데,
푸른 안개는 다시 비와 섞여 앞산까지 감싸네.

◆지은이 이제현(李齊賢): 고려 말기 충렬왕(忠烈王)과 공민왕(恭愍王) 사이에 생존했던 문신.
이 시는 낚시와 안개를 통하여 자연과 합일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지은이는 산이 둘러쳐진 개천을 따라 가다가, 물이 모인 웅덩이 가의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물 속을 바라보니, 고기들이 서로 재주 자랑이라도 하듯이 펄쩍펄쩍 뛰면서 크고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은이는 가느다란 낚시 바늘을 끄집어내어 어디에다 던질까 둘러보다가 ‘柳影間(유영간)’, 즉 ‘버들 그림자 속’에다 던졌다. 낚시를 버들 그림자가 비치는 곳에다 던졌다는 이 표현은 이 시에 사실감을 더해주는 표현이다. 원래 고기는 그늘 속에 모여 숨는 버릇도 있는 것이다.

날이 저물어 돌아가고자 하니, 산에서도 물에서도 안개가 피어나 지은이의 옷을 군데군데 감쌌다. 지은이는 이 전경을 ‘衣半綠(의반록)’, 즉 ‘옷이 반쯤 푸른 안개에 젖었다'고 했는데, 이 시의 백미(白眉)는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한다. 지은이의 옷자락을 감싸던 안개 무리들이 비가 내리자, 다시 비와 뒤섞여서 앞산을 자욱하게 뒤덮어 산을 신비 속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의 낚시질은 결코 고기를 낚고자 함이 아니라, 자연세계와 호흡을 함께 하고자 함이요, 푸른 안개가 지은이의 옷을 감싸는 것은 결코 지은이의 옷을 적시고자 함이 아니라, 안개가 지은이를 친밀하게 느껴서이다. 지은이는 낚시와 안개를 통하여, 자연과의 합일감을 느꼈는데, 지은이는 그 경지를 이 시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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