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의 [한시감상] 41
- 閒居(한거) -
臨溪茅屋獨閒居(임계모옥독한거)하니,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를.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불래산조어)한데,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를.
- 한가히 지내다 -
시냇가 띠풀 집에 한가히 지내노라니,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흥취가 가득하네.
손님이 오지 않으니 산새가 찾아와 지저귀는데,
대나무 밭에 평상을 옮겨놓고 누워서 책을 보네.

◆지은이 길재(吉再) : 고려 말의 충신으로 호는 야은(冶隱). 새 왕조인 조선에 벼슬하지 않고 금오산(金烏山)에 은둔하여 후학을 양성했다.
이 시는 은자의 생활에서 얻은 흥취를 노래한 시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 감정이다. 그러나 마음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동일한 상황에서도 희노애락이 다르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부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은자(隱者)의 삶을 살라하면, 그는 분노와 슬픔에 휩싸여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빈천한 신세가 되더라도 은자의 삶을 그리워한다면, 그에게는 은자의 생활이 도리어 즐겁고 기쁠 수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했는데, 이씨(李氏)들이 고려를 치고 조선을 세우자, 영원히 벼슬할 뜻을 버리고 고려에 대한 지조를 지키며 산림에 은둔하여 학문과 교육에 매진하며 여생을 보냈다. 만약 지은이에게 벼슬에 나가 부귀공명을 누리라 한다면, 지은이는 도리어 그것을 욕되게 여기고 불편해 했을 것이다.

지은이의 시냇가 초가집에 명월(明月)과 청풍(淸風)이란 두 벗이 찾아오면, 지은이는 무한의 기쁨을 느낀다. 인간 세상의 손님이 찾지 않기에 산새들만 마음껏 오가며 지저귄다. 이 한가함 속에 평상을 대나무 그늘 속에다 옮겨놓고 누워서 달빛에 책을 본다. 속세의 사람들로서는 고적하여 참기 어려운 이 순간들을, 지은이는 도리어 자기만의 흥에 젖어 은자의 낙을 한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부귀공명의 길에서 초탈하여 절의와 진리를 더 중시하는 지은이의 청아한 인품을 넉넉히 알게 하는 작품이다.

김기의 [한시감상] 42
- 漁夫(어부) -
數疊靑山數谷烟(수첩청산수곡연)하니,
紅塵不到白鶴邊(홍진부도백학변)을.
漁翁不是無心者(어옹불시무심자)라,
管領西江月一船(관령서강월일선)을.
-어부-
여러 겹 청산 여러 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하니,
세상의 티끌 백학(白鶴)의 곁에 이르지 않네.
고기잡이 노인은 무심(無心)에 이른 자가 아니라,
서강(西江)을 관리하면서 달빛을 배에 가득 싣고 있네.

◆지은이 성간(成侃): 조선 세종과 세조 사이의 학자.
시가 오묘하면 시속에 그림이 있게 되고 그림이 오묘하면 그림 속에서 시가 나오게 되는 법이다. 이 시는 마음의 세계와 전경의 세계가 함께 어우러져, 격조 높은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천지자연은 사람의 마음과는 달라,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고, 또 아무 의도도 없이 이렇게도 지었다가 저렇게도 지었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지자연을 보고 그에 대해 해석을 하거나, 느낌을 가지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다. 지은이는 시심이 풍요한 사람으로서, 시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산이 겹겹으로 둘러쳐져 있는 강가에 머물고 있었다. 운무(雲霧)는 여기저기 풀풀 날아다니며 산을 수놓고 있었다. 세상의 분잡함도 인간사의 고통도 찾아볼 길 없는, 그야말로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이며 강인 것이다. 그때 백구가 소리 없이 나타나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놀고 있었다. 이미 깨끗한 강산에 이르렀기에 백구의 주변에는 시비와 욕망의 티끌을 찾아볼 길이 없는 것이다.

맑고 고요한 이 강 위에 어옹(漁翁)이 저 멀리서 배를 저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배속에는 달빛이 가득 실려 있어 한없이 여유로와 보이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모습을 마치 어옹이 달빛에 욕심이 있어 일부러 달빛을 배에 싣고 있는 걸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달빛 속의 배가 너무나 좋아 보여 일부러 이렇게 표현을 한 것뿐이다.
이 시는 강을 중심으로 청산과 백구와 어옹과 달빛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작품인데, 특히 달빛을 싣고 오는 어옹의 모습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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