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고전번역가

김기의 [한시감상] 43
- 夷齊廟(이제묘) -
當年叩馬敢言非(당년고마감언비)하니,
忠義堂堂日月輝(충의당당일월휘)를.
草木亦霑周雨露(초목역점주우로)하니,
愧君猶食首陽薇(괴군유식수양미)를.
-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사당 -
무왕(武王)의 말을 두드리며 옳지 않다 충고하니,
그 충의(忠義)는 당당하여 일월(日月)같이 빛나네.
그러나 초목 또한 주나라의 우로(雨露) 먹고살았으니,
수양산 고사리를 캐먹은 그대들을 부끄러워하네.

◆지은이 성삼문(成三問) : 세종(世宗)의 총애를 받던 학자로서, 어린 단종(端宗)을 지켜달라는 세종의 부탁을 지키려다 순절한 충신(忠臣).
이 시는 작자의 투철한 의리정신(義理精神)을 엿보게 하는 작품으로, 지은이가 30세 되던 해인 1447년에 중국에 갔을 때,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사당을 지나면서 지은 시이다.

지은이는 충절(忠節)의 사표로 삼고 있는 백이·숙제에 대해 도리어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그것을 드러낸 것이 바로 이 시인 것이다. 즉 백이·숙제가 은(殷)나라 제후인 주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치려하자,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서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렸으나, 무왕이 듣지 않고 은나라를 쳐서 천하를 차지해 버렸다.

이에 백이·숙제는 불의(不義)한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이들의 충의(忠義)는 과연 일월처럼 찬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수양산의 고사리도 또한 주나라의 우로(雨露)를 먹고 자란 것이니, 그들이 수양산의 고사리를 캐먹고 산 것은 또한 부끄러운 짓이라는 것이다.

그 후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하자, 지은이는 동료들과 함께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 계획했었다. 그러나 계획이 발각되어, 세조에게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마침내 38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 비장함이 서린 한 수의 시를 남겼으니, 이렇다. “북 소리 목숨을 재촉하는데(擊鼓催人命), 머리 돌려보니 서산에 해 지려하네(回頭日欲斜). 저승길엔 한 채의 주막도 없으리니(黃泉無一店),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자고 갈까(今夜宿誰家).”

지은이는 ‘이제묘(夷齊廟)’라는 이 시에서 의리를 명쾌히 분별했다. 그리고 8년 뒤 단종 복위 거사를 통해 이제(夷齊)를 능가할 만큼 의리를 완벽히 실천했으니, 언행일치를 이룬 진군자(眞君子)라 할 것이다.

김기의 [한시감상] 44
- 男兒歌(남아가) -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이요,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파음마무)를.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이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리오.
- 남아의 노래 -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 닳게 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도다.
남아 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요.

◆지은이 남이(南怡): 조선 세종과 예종 사이의 장군.
이 시는 젊은 장수의 용솟음치는 기백과 하늘같이 원대한 포부를 백두산의 돌과 두만강의 물을 통해 드러낸 작품이다. 오늘날 남에게 의지만 하려하고 또 자기 것만 챙기려하는, 손톱만큼의 기백도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한 젊은이들은 이 시를 깊게 음미해봐야 할 것이다.

지은이는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또 건주위(建州衛)의 여진족을 물리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그래서 세조의 총애를 받아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兵曹判書)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세조가 죽고 예종이 등극하자 평소에 지은이를 시기하던 기존 세력가들이 병조판서 자리에서 그를 밀어내었다. 그리고 기존 세력가 편에 속하는 유자광 등이 옥사(獄事)를 일으켜, 마침내 지은이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으로 내몰았다.

유자광이 옥사를 일으킬 때, 빌미로 삼은 것이 바로 이 시이다. 유자광은 이 시의 제3구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이란 구절을 ‘男兒二十未得國(남아이십미득국)’으로 고쳐, 지은이에게 역모의 누명을 씌워 죽음으로 내몰았다.

즉 제6자인 ‘평(平)’자를 ‘득(得)’자로 고침으로써, ‘남아 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이란 뜻이 ‘남아 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빼앗아 얻지 못하면’이란 뜻으로 변하게 된다. 유자광의 간교한 재치는 귀신도 부릴만한 것이다. 글자 하나를 바꾸어, 충신을 역신(逆臣)으로 만들고, 산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이 시는 뜻도 좋지만 짜임새 또한 뛰어나, 노련한 문사(文士)의 솜씨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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