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 늘어진 나뭇가지에 하얀 열매 바글바글
함양 화림동 계곡에서 만난 때죽나무…봄엔 순백의 꽃 장관

며칠 후면 말복(末伏)이니 더위도 무르익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릴 듯 찌뿌듯한 날씨는 안개 때문인 것 같다. 이도 햇살이 퍼지면 하늘로 올라가야 할 텐데 한낮에도 흐리다.

차라리 운전에 지장을 주더라도 시원하게 한줄기 쏟아졌으면 싶다. 가뭄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는데 일기예보엔 아직도 비소식이 없다. 그런데 빗방울이 감질나게 차창에 한두 방울 흔적을 남기고는 이내 말아버린다. 야외활동을 하기엔 땡볕보다 낫지만 그래도 뭔가 좀 아쉽다.

거창의 표(表) 작가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무주 톨게이트를 나와 국도를 이용해서 가는 길을 택했다. 굽이굽이 넘던 신풍령은 빼재터널이 개통되어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그래도 거창으로 넘는 빼재는 구불구불 용틀임을 하며 드라이브 기분을 높여준다.

볼 일을 마친 후, 함양으로 이동하여 생전 처음 맛 본 여름별미인 초계탕을 먹고 농월정(弄月亭)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예로부터 이 화림동(花林洞) 계곡은 본래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고 해서 여덟 개의 소(沼)와 여덟 개의 정자(亭子)로 유명한 곳이다. 옛 선비들은 하계 휴양을 이곳에서 했는지 여부가 은근한 자랑거리였다고 표 작가는 소개를 한다.

널빤지 같은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가물지만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는 힘차다. 돌바닥과 바위틈을 헤매다 솟구치는 물에 휩쓸리면 위험할 정도다. 바위에 새겨진 옛 선비들의 한시(漢詩)도 풍치를 더한다. 함양의 안의(安義) 땅엔 선비들이 많았던 곳이라더니 이곳에도 풍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물가의 쉼터 위로 꽤 커다란 때죽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다. 휘 늘어진 나뭇가지를 올려보니 하얀 열매가 바글바글하다. 독특한 열매모양이 재미있는 나무다. 봄철에 꽃으로 만나면 그 향기에 더 취할 것 같은 분위기다.

계곡을 살펴보니 이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물가를 따라 자라고 있다. 그냥 무심코 보면 특색이 없는 그런저런 나무 같지만 지금은 관상수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봄이면 펼쳐진 가지를 따라 순백색의 꽃들이 떼를 지어 달라붙은 형상으로 장관을 이룬다. 화림동(花林洞) 계곡 이름은 아마도 때죽나무꽃을 일컬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전광역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