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의 [한시감상] 45
- 渭川漁釣圖(위천어조도) -
風雨蕭蕭拂釣磯(풍우소소불조기)하니,
渭川魚鳥已忘機(위천어조이망기)를.
如何老作鷹揚將(여하노작응양장)하야
空使夷齊餓採薇(공사이제아채미)를.
- 위천(渭川)에서 낚시하는 그림을 보고 -
비바람이 스산히 낚시터에 일어나니,
위천(渭川)의 고기와 새들도 이미 세상을 잊어버렸네.
어찌하여 노년에 무왕(武王)의 날랜 장수가 되어
공연히 백이와 숙제에게 고사리를 캐먹다가 죽게 했는가.

◆지은이 김시습(金時習) : 세종과 성종 사이의 인물.
하루는 서거정(徐居正)이 태공망(太公望)이 낚시하는 그림을 가져와 지은이에게 보이고는 그림에다 시를 써주기를 부탁했다. 이에 곧바로 지어낸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지은이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자 문을 닫고 사흘을 통곡하다가 모든 서책을 불사르고 승려가 되어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했다. 이후로 승속(僧俗)을 드나들며 많은 기행과 시를 남기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사람이나 사건의 역사적 평가는 일반적으로 승자(勝者)의 입장에서 서술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평가가 꼭 정당하다고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은이의 이 시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태공망은 위천(渭川)에서 낚시를 하다가 노년에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에게 발탁되어, 나중에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쳐 주나라를 천자국으로 만드는데 큰공을 세웠다.

그래서 후세에서는 태공망을 현인(賢人)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나라에 반대하여 수양산에 은둔하여 고사리로 연명하다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입장에서 본다면, 태공망은 반란군의 앞잡이인 것이다.

그래서 3, 4구에서 지은이는 ‘어찌 노년에 은나라를 치는 무왕의 선봉장이 되어, 백이와 숙제로 하여금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 죽게 했는가’ 하고 태공망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의 이 시에는 실상 수양대군의 추종자들을 태공망에 비유하여 나무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역사의 진실을 꿰뚫는 지은이의 번쩍이는 안목이 담겨진 작품이다. 이 시를 보면, 지은이는 어려서는 ‘신동(神童)’, 훗날에는 ‘생육신(生六臣)’이라 불려질 만큼의 비범한 재주와 높은 기상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기의 [한시감상] 46
- 題山水屛(제산수병) -
描山描水摠如神(묘산묘수총여신)하니,
萬草千花各自春(만초천화각자춘)을.
畢竟一場皆幻境(필경일장개환경)이니,
誰知君我亦非眞(수지군아역비진)가.
- 산수화(山水畵) 병풍을 보고 짓다 -
산과 물을 그려낸 솜씨가 귀신의 솜씨 같아
만 가지 풀과 천 가지 꽃이 제 각기 봄을 만났네.
그러나 필경 저것들은 다 환영으로 된 경치이니,
누가 알리오, 그대와 나도 또한 진짜가 아님을.

◆지은이 김수온(金守溫) : 조선 태종 ~ 성종 사이의 학자.
이 시는 그림 속의 아름다운 전경을 보고서 존재의 실상에 대해 노래한 작품이다.
사람들은 그림 속의 산수(山水)와 화초(花草)를 보고 좋아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화공(畵工)의 손에서 그려진 것이기에 진짜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꿈속에서 울고 웃지만, 그러나 그것은 꿈꾸는 이의 내면 의식이 연출해낸 허구 속의 일일뿐이다. 그러나 잠시 착각에 빠져드는 순간, 그림을 보고서 실상인 줄 여기고 꿈을 꾸면서 현실인 줄 여기어, 우비고뇌(憂悲苦惱)의 감정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우리 인생 자체도 역시 그림 속의 경치요, 꿈속의 일일지도 모른다.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일체의 모든 일은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그리고 이슬, 번개와 같으니, 응당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리라”고 말했다.

만물들은 미세한 원자들이 환경에 의해 잠시 결합함으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물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다’는 이론으로 석가모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항상함이 없다는 것은 진정한 실체가 없다는 뜻이기에, 그래서 세상도, 나도, 너도 모두가 환영에 의해 만들어진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약 진짜라면 영원히 불변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금강경』과 현대과학에서는 물질 뿐 아니라, 마음이란 것도 끝없이 변해 가는 것이므로, 그 실체가 없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 시에는 불교적인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은이는 한때 출가하여 승려가 되려한 적이 있었고, 또한 세조의 명으로 『금강경』을 국역했으며, 그의 형은 ‘신미(信眉)’란 법명을 가진 고승이었다. 이 시는 지혜와 예술이 절묘히 어루러진 작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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