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의 [한시감상] 49

-寶泉灘卽事(보천탄즉사)-
桃花浪高幾尺許(도화낭고기척허)오,
狠石沒頂不知處(한석몰정부지처)를.
兩兩鸕鶿失舊磯(양양로자실구기)하야
啣魚却入菰蒲去(함어각입고포거)를.

-보천(寶泉)의 여울에서 짓다-
복사꽃 뜬 물결이 그 얼마나 불었는지,
뾰족한 바위가 물결에 잠겨 자취를 알 길 없네.
쌍쌍의 가마우지들 옛 터전을 잃어버려,
잡은 고기 입에 물고 물풀 사이로 날아드네.

◆지은이 김종직(金宗直): 성종 때의 학자로 당대 사림(士林)의 영수.
이 시는 가마우지란 새가 처한 상황을 보고서 인간 세상의 부조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지은이는 조선 도학(道學)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면서, 시문에 능통했던 문학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도학을 바탕으로 시문을 창작했으며, 또한 시문을 통하여 도학의 정신을 드러내고자 했었다. 그래서 그의 시문은 학문과 구도, 애민 사상에서 기인한 현실 비판과 강호산림(江湖山林)에 대한 동경이 그 주된 주제를 이루고 있다.

이 시는 애민 사상을 근거로 한 현실비판 사상이 투영된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학에서는 불의(不義)가 의(義)를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시에도 또한 그러한 정신이 드러나 있다고 할 것이다.
복사꽃 어여쁘게 뜬 물결이 세차게 모여드니, 뾰족이 솟은 바위가 머리까지 몽땅 물에 잠겨버렸다. 이에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가마우지는 다시 되돌아와 자기가 머물던 옛 바위를 찾아보았지만, 이미 물결에 잠겨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마우지는 잡았던 물고기를 입에 물고 머물 곳을 찾아 물풀 사이로 들어갔다.

이 작품은 무심히 감상하면, 자연계의 모습을 기묘하게 드러내었다 할 것이지만, 그러나 이 시는 자연을 읊은 게 아니라, 자연을 비유로 인간사의 비리를 풍자한 작품인 것이다. 즉 복사꽃은 요염하므로 간사함을 비유한다. 그래서 ‘복사꽃 뜬 물결’은 불의의 세력, ‘바위’는 선량한 이들의 근거지를 비유하고, 먹이를 구하러 간 틈에 불의한 물결에 터전을 잃은 가마우지는 선량한 백성에 비유한 것이다.

불쌍한 것이 백성이요, 미운 것이 불의한 권세가인 것이다. 지은이는 경(景)의 세계를 통하여 인간사의 부조리를 읊어낸 것이다. 허균(許筠)은 이 시에 대해 ‘당시(唐詩)를 방불케 한다’는 말로 극찬했다.

김기의 [한시감상] 50

- 題江石(제강석) -
濯足淸江臥白沙(탁족청강와백사)하니,
心神潛寂入無何(심신잠적입무하)를.
天敎風浪長喧耳(천교풍랑장훤이)하야,
不聞人間萬事多(불문인간만사다)를.

- 강(江) 바위에 짓다 -
청강(淸江)에 발을 씻고 백사장에 누웠으니,
정신이 고요해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갔네.
하늘이 풍랑으로 귓전을 울리게 하여
인간 만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주네.

◆지은이 홍유손(洪裕孫) : 중종 때의 시인으로 청담(淸淡)을 즐겼다.
이 시는 도가적(道家的) 색채가 강한 작품으로, 세상 밖에서 자락(自樂)하는 경지를 읊고 있다.
“淸斯濯纓(청사탁영)요 濁斯濯足(탁사탁족)이라”는 말처럼,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탁한 물에는 발을 씻으라는 것은 세상의 지당한 교훈이다. 그러나 ‘광진자(狂眞子)’란 호를 가진 지은이는 도리어 맑은 물에다 발을 씻었으니, 세상을 얕보는 그의 기개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른 바 청담파(淸談派)에 속하는 인물로,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이총(李摠), 한경기(韓景琦), 조자지(趙自知), 이정은(李貞恩) 등과 어울리며, 소요건(逍遙巾)을 쓰고 술과 시를 주고받으며, 반역과 찬탈로 얼룩진 당시 세상을 조롱하면서, 물외한인(物外閒人)이 되어 청담의 경지를 추구하며 살았다. 그렇기에 이 세상이 모두 아끼는 맑은 물에다 자신의 더러운 발을 씻고서, 백사장에 벌렁 누워 아득한 초월의 자리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으로 들어 가버린 것이다.

무하유지향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는 시비(是非)와 고하(高下) 등 모든 대립이 초월된 도(道)의 자리를 말하는데, 후세에서는 이상세계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한다. 백사장에 누운 지은이의 정신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 무하유지향에 이르렀다. 때마침 강물은 출렁거려 속세의 시끄러운 소리를 막아주니, 청담의 낙(樂)을 한껏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는 세상을 헌 신짝처럼 내버리고 맑음과 자유가 가득한 삶을 향유하는 지은이의 인생관이 잘 투영된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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