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의상 산업 선도하는 젊은 기업 '해누리'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최대 화두는 ‘취업’이다. 하지만 취업빙하기는 좀처럼 녹지 않고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하는 이는 절대 소수에 그치고 있다.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비롯해 여러 가지 노력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은 여전하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 취업의 늪을 피해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있다. 특수의상을 제작·판매하는 해누리 대표 신해누리(30·여) 대표가 주인공이다. 이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진로부터 창업까지 오롯이 한 우물만을 파온 신 대표. 일에 대한 열정, 젊은이의 패기로 똘똘 뭉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해누리 신해누리 대표

#1. 아픔을 겪다
일본 대중문화가 우리에게 정식으로 소개된 지난 1990년대 중·후반, 신 대표는 ‘로리타(LOLITA) 패션’을 알게 됐다. 로맨틱하고 동화적 감성이 깃든 공주풍의 의상은 그의 몸과 마음을 매료시켰다. 신세계를 경험한 신 대표는 지난 2010년 사업에 뛰어 들었다. 사업을 시작함에 있어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시장조사도, 유통구조도, 생산구조도 모르는 주먹구구식 상태로 말이다. 결과는 뻔했다.

배꼽이 드러나 보이는 티, 짧은 미니스커트만 해도 주변의 이목을 끌던 시절,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의상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었다. 더욱이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제품을 생산했기에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일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실패는 늘 아프다.

“사업이라고 얘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소규모였고 사업에 대해 무지했던 터라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봅니다. 지금도 국내 수요는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당시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한정하고 일을 시작했으니 한계는 명확했어요.”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신 대표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장조사는 물론 성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를 말이다.

#2. 재기의 원천, ‘열정’
“좋아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이른 나이에 다른 직업을 찾아봤어도 무방할 시기. 그러나 신 대표는 이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좋아했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듯 한 우물만 팔 수 밖에 없었단다. 신 대표는 예술고와 예술대학교를 나왔다. 로리타 패션을 알게 된 후로는 한 가지만 바라본 셈이다.
이 열정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세상일에 쉬운 것이 어디 있으랴. 시장도 좁고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시각도 결코 녹록치 않다. 옷 한 벌 제작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이 걸린다.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시간이 아닌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기간이다.

원단은 무엇으로, 무늬는 어떻게, 디자인에 무엇을 포함시킬지 등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이 기간은 그에게 고통과 행복을 함께 선사한다. 머리를 쥐어짜듯 고생해 만들어낸 제품이 인정받을 때 그 보람이란 열매는 매우 달다.

“유명 작가의 그림이나 캐릭터를 매치시키는 경우도 있고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오는 경우도 많아요. 하나의 옷을 만들기 위해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합니다. 구매자들이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3. SNS를 타고 세계로
국내 시장에는 수요가 없기에 당연히 해외시장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는 신 대표는 SNS를 활용해 사업을 진행한다. 해누리 SNS의 팔로워만 해도 1만 9000명 정도로 시제품을 올리면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단다.
“SNS는 해외 구매자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구매자의 의견을 들어볼 수도 있고 반영할 수도 있어요. 융통성이 생기는 셈이죠. 그들이 남긴 말에 일일이 답변을 하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또 해누리는 기성복처럼 제품을 먼저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아닌 SNS에 시제품을 공개하고 선 주문을 받아 예약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다보니 재정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이다. 지난 5월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한 해누리가 세 달 사이 손익분기점을 넘었을 정도다.

“일반 대기업에 비하면 한없이 적은 양지만 면식이 없는 해외구매자들이 산다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서양문화를 많이 투영시켜 제품을 제작함에도 그들은 오히려 동양적 오리엔탈리즘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해요. 그것이 제품의 희소성을 높이는 데 한 몫 하기도 하고요.”

구매자들이 주문을 하고 제품을 받기까지 보통 한 달 반 정도가 걸린다. 제품의 가격은 대략 30만 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구매율은 상상이상이란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4. 더 가치 있는 ‘브랜드’를 위해
신 대표의 기본 가치는 ‘튀어야 산다’다. 여기에 ‘희소성’이 더해지면 말 그대로 불티가 난다. 더욱이 신 대표의 제품은 보통 50~100벌 정도 판매된다. 지금까지 가장 많았던 적이 약 150벌. 결국 전 세계에 많아봐야 150벌인 것이다. 과거 ‘에어 조던’ 시리즈 등 한정판에 목숨 거는 이들이 이해된다.

“구매자들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 몇 장을 보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저 그런 제품은 인정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고 있어야만 그들을 유혹할 수 있어요.”
로리타 패션은 분명한 매니아 문화다. 생각해보라. 파티에 나갈듯한 복장을 하고 일상생활을 즐기는 것을. 하지만 신 대표는 단호하다.

“아직까지는 분명한 매니아 문화이지만 점점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시대는 유행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패션은 유행을 타지 않아요. 그것은 즉 나만의 가치, 개성이 될 수 있어요.”
신 대표의 최종 목표는 ‘일본 시장 진출’이다. 아직까지 이 업계에서 최고봉은 일본이라는 고정관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패션이지만 그곳이 항상 최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시작됐다 하더라도 한국 제품이 더 우수하다는 말을 꼭 듣고 싶어요. 일종의 고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제품은 저렴하지는 않지만 믿고 살수 있다는 신뢰를 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것이다. 해외 시장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로리타 패션을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직은 해외시장에 몰두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사진 김상용 기자 ace@ggilbo.com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공주풍의 특수의상을 제작·판매하는 해누리는 올 5월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친 따끈따끈한 신생기업이다. 사업자등록만 5월일뿐 그전부터 이 업계에서는 주목을 받아 왔다.

지난 2012년 론칭 파티(Baroque & Dear. Magaret & HAENULI)를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한 해누리는 미국에서 로리타 콘벤션 FRILL, OTAKON 판매전, AWA 판매전, PMX 로리타 패션쇼 등을, 러시아에서 고딕&로리타 페스티벌, HAENULI와 함께 하는 신년 파티 행사 등에 참가했다.

지난해에는 다수의 해외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 화보촬영, 영상촬영을 진행했다. 또 Momocon 판매전, Frill 패션쇼, Xcon 메인 브랜드 패션쇼 Heroes Con 판매전, PMX 패션쇼, 로리타 콘벤션 패션쇼, Frok on 패션쇼 등에 참가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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