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문화재단 - 대전작가회의 공동 기획
부산식당-1

 

용주는 열네 살 봄을 대전에서 시작했다. ‘마린을 찾아서’에 나오는 한 문장을 인용해 본다. “대전은 산뜻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같았다.” 이 문장 하나로도 그가 조성에서 보낸 두 달이 얼마나 힘에 겹고 부쳤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실수를 할 때마다 맞고 도망치다 잡혀와 또 맞던 그 당시의 용주에겐 모든 어른들이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아이에게 힘에 겨운 일을 시키고 세상 화풀이를 했다는 것 자체가 믿겨지지 않는다. 그냥 그 시기에 모두가 살기 힘들어 그렇게 했다고 하기엔 너무 아프다. 70·80년대 수도 없이 많은 철없는 나이의 아이들이 열여섯·열일곱 살도 못 돼 공장이나 식당, 가정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돈 벌어 고향 동생들을 가르치고 자신은 야간학교에라도 가고 싶다는 꿈을 설움에 삼켰다.

두 달여간 지독히도 고생을 한 용주에게 대전은 희망이었다. ‘산뜻’하고 ‘정장을 입은 남자’라는 대전의 이미지는 용주가 그래도 세상에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었음을, 그래도 대전 생활은 뭔가 다르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음을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게 막연한 희망일지라도.

용주가 누나(업순)를 따라 간 곳은 누나가 일하는 ‘부산식당’이었다. 작가는 근 40년 만에 찾은 부산식당(지금은 구제 옷가게)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부산식당에서의 일은 조성의 중국집 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편했다.” 일도 일이지만 피붙이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용주의 몸과 마음을 안정되게 했을 것이다. 열네 살은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할 나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고 일을 해야 할 나이는 아니다. 작가는 부산식당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전에 와서 누나와 같은 곳에서 일을 한다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몸과 마음은 집 나온 뒤 가장 편했다. 식당의 허드렛일을 하며 바로 옆에 있는 대도레코드 가게(지금도 현존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이 행복했다.”

부산식당은 주메뉴가 삼계탕과 낙지볶음이다. 그곳에서 누나는 주방 일을 했고 용주는 청소를 했다. 손님들이 화장실에 쏟아놓은 토악질을 치우고, 화장실 변기를 유리구슬처럼 반짝반짝 닦았다고 현장 답사 중 작가는 이야기했다. 그것을 들으며 작가의 과거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글의 원천인지, 그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선이 세상을 어떻게 보게 하는지에 관한 생각을 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신 같은 사람을 어루만지고 핥아주고 울어주고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작가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현장에서 이은정 시인과 정재은 동화작가가 유용주 작가 인터뷰를 하고 필자는 사진을 찍고 있으니, 시장 상인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그 광경을 보고 작가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그때의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사람도 많았고 북적거렸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40년 전 중앙시장의 규모도 알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대형마트에 밀린 시장이 사양길에 접어든 현실에 씁쓸하고 답답했다.

어쩌다 우리네 아버지·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시장이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까. 그런 시장과 더불어 사람 냄새도 덩달아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더 큰 아쉬움이 찾아들었다. 예전에 비해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어들어 작가 역시 걱정을 했다. 잠시 작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기억 속에 남은 중앙시장이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소회가 느껴졌다. 40년 전, 열네 살 소년이던 그가 오십이 넘어 서 있었다. 상처라면 상처일 그 시간들이 작가와 우리가 서 있는 공간 사이로 흘렀다.

용주는 누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고 누나 역시 그럴 거라는 생각 끝에 ‘유림상회’로 일자리를 옮긴다. 누나와 부주방장과 싸움이 붙었을 때 어린 용주가 대걸레를 들고 돌진했던 일이 결정적 이유였다. 한 직장을 가족이 함께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불편하다. 필자 역시 동생과 함께 구로공단 완구공장에 다녔다. 동생이 먼저 취직을 했고 필자는 고교 졸업 후 뒤늦게 취직을 했는데 같은 일터에 가족이 일한다는 것이 실상 그렇게 마음 편하지만은 않아 작가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김희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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