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학의 始原(28) - 대전문화재단-대전작가회의 공동기획

배달을 나갈 때마다 지나가는 다리가 목척교다. 지금은 보강공사를 해서 옛 모습이 아니지만 그는 목척교를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저 다리를 지나 배달을 갔다”고 얘기했다. 작가가 자전거를 몰아 건너던 그 다리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다. 편한 표정을 지어보라 했더니 살짝 웃는다. 아무리 좋은 것도 한두 번이다.

세네 번 하다보면 지겹고 지친다. 자전거만 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용주의 마음이 그 시절 어땠을까. 작가는 자전거를 그렇게 배우고 싶었는데 그 한을 여기서 모두 풀겠다는 듯이 일했다고 감정의 가감 없이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작가는 처음 알았다고 한다. 대전이 참 넓은 도시라는 것을. 아이러니다.

보통은 여행을 하며 그 도시의 특징을 알고 그 도시에 대해 오해했던 것을 깨우치는데 어린 용주는 또래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자전거를 타고 대전 시내뿐 아니라 멀리 신도안, 유구까지 시야를 넓히고 있었다.
유림상회는 추석을 쇤 후 두 달 더 일하고 그만뒀다.

주인아줌마가 가게 관리를 잘하지 못해 결국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주인아줌마를 ‘고모’나 ‘이모’라고 부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열심히 일을 했기에 가게 주인아줌마도 용주에게 잘한 것이다. 불성실했다면 그가 누가 되었든 받아주고 용서해 주지 않는 것이 사회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실수 한 번만 해라’ 하고 벼르는 인간들이 득실거린다.

용주는 이미 자전거 면허를 취득했다. 그렇다고 지금도 없는 자전거 면허를 국가에서 만들어준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전거 모는 솜씨를 보았을 때 이제 나에게 대형면허를 주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자전거만 잘 타면 어디에든 쉽게 취직할 수 있고 갈 수 있다는 마음이 완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자전거 솜씨로 대호상회에 취직을 했다. 대호상회는 주류 도매를 하는 가게였다. 소주·맥주·음료수 등을 취급하며 주인아저씨는 2.5톤 트럭을 직접 몰고 주문받은 물건뿐만 아니라 직접 가게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물어보고 대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

점점 용주의 발걸음도 넓고 커져갔다. 식당 청소에서 시작한 대전에서의 일이 식료품 가게를 거쳐 주류 도매를 하는 곳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대호상회에서 있었던 일화를 보문산을 오르는 언덕에서 이야기해 주었다. 배달을 갔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너무 속도가 빨라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 나무 사이에 자전거를 들이받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말이었다.

사고가 나고 주인집에 연락을 했는데 2시간이 지난 뒤에야 리어카가 와서 그걸 타고 부러진 어깨뼈를 치료하러 갔다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작가의 얼굴만 보았다. 시간이 지났으니 이런 일을 후일담처럼 말할 수 있지 그 순간이 얼마나 어린 용주에게 막막하고 절망적이었겠는가.

지금의 보문산은 젊은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유원지다. 예전 세대에겐 대전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였지만 젊은 친구들은 산책으로도 보문산을 잘 찾지 않는다.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젊은 데이트족을 만날 수 있고, 대부분은 60·70대 어르신들이나 50·60대 아저씨·아줌마들이다. 세월의 무게가 보문산에도 깊게 깔려 옛 추억만 남아있는 것 같다. ‘쓸쓸하다’, ‘적막하다’ 이런 단어보다는 ‘나이를 먹으면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생각만 스쳐갔다.

작가와 함께 보문산을 걸으며 주변 막걸리를 파는 집을 슬쩍 둘러봤다. 시간은 오후를 향해가고 있었지만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산책을 나온 아저씨·아줌마 몇이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식료품이나 술을 배달할 때는 지금의 어느 유명한 유원지 못지않게 사람들이 많았는데”라는 작가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사진 속에는 어린 용주가 아닌 작가 유용주가 서 있다. 40년 세월을 거쳐서 말이다. 인터뷰도 하고 문학답사도 하면서, 비록 한 나절 함께했지만 작가의 얼굴에서 이제는 삶의 여유가 읽혀지는 것 같아 궁금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지. 그 궁금증은 그냥 필자의 마음에 묻고 말았다.

유용주 작가가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기에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앞서서였다. 작가의 모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아직 필자는 이런 경지까지 가지 못해 미뤄 짐작만 할 뿐이다.

김희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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