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한 글자 사색하여 깨달음을 얻어라

-勸學小詩(권학소시)-
讀書萬卷未了義(독서만권미료의)면,
何異平原走馬回(하이평원주마회)리요.
一字精微誰解得(일자정미수해득)고.
聖賢貴學不貴才(성현귀학불귀재)을.
-학문을 권하는 시-
만 권의 책을 읽어도 의미를 깨치지 못한다면,
들판에서 말을 타고 노는 짓과 무엇이 다르랴.
한 글자의 정미한 뜻을 누가 풀 수 있을 것인가.
성현은 학문을 숭상했지 재주를 숭상하지 않았네.

◆지은이 기대승(奇大升): 중종 22년에서 선조 5년 간의 성리학자.
이 시는 학문을 힘쓰기를 권하는 권학시(勸學詩)이다.
지은이는 호가 고봉(高峯)인데, 그는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더불어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논쟁을 한 학자로 유명하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리기론(理氣論)으로 해석하면서, 퇴계는 ‘사단은 리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요, 칠정은 기발이리승지(氣發而理乘之)’, 즉 ‘사단은 리가 발동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함에 리가 올라타는 것이다’면서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사단과 칠정 모두가 동일한 감정이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 모두가 ‘기발이리승지(氣發而理乘之)’, 즉 ‘기가 발동함에 이치가 올라타는 것이다’면서 기발일도설(氣發一途說)을 주장했다.
퇴계와 지은이의 사단칠정에 대한 논변이 있은 이후 조선의 성리학은 질적 도약을 이루었고, 지은이의 입장은 율곡(栗谷)이 계승함으로써 나중에는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양측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논하고 있기에, 시비를 가리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지은이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에게 배웠는데, 32세가 되던 해에 퇴계를 방문하여 제자의 예를 올렸었다. 그리고 선조(宣祖)가 퇴계에게 현재 누가 가장 학자다운 자세로 학문을 하는가를 물었을 때, 퇴계는 지은이를 지목했다. 지은이가 이처럼 인정받는 학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위의 시에서 드러나고 있다. 즉 천하의 이치를 알자면, 앞 성현의 생각이 담긴 저서를 눈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를 깊이 사색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학문이란 원래 재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간절한 의문과 깊은 사색과 예리한 관찰을 통해서만 이룰 수가 있는 법인 것이다.
지은이의 이 시는 학문의 요체를 적절히 지적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이, 노승과 나눈 문답

- 楓嶽贈小菴老僧(풍악증소암노승) -
魚躍鳶飛上下同(어약연비상하동)하니,
這般非色亦非空(저반비색역비공)을.
等閒一笑看身世(등한일소간신세)하니,
獨立斜陽萬木中(독립사양만목중)을.
-풍악산(楓嶽山)에서 암자의 노승에게 주다-
고기와 솔개의 몸짓은 다 도가 천지에 드러남이니,
이 경지는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네.
무심히 한번 웃으며 신세를 돌아보니,
석양녘 빽빽한 숲 속에 홀로 서 있네.

◆지은이 이이(李珥) : 중종 31년에서 선조17년 사이의 학자.
이 시에는 지은이의 철학적 비범성이 잘 나타나 있다 할 것이다.
지은이는 16세 때 어머니인 신사임당(申師任堂)을 잃고 인생무상을 느껴, 상(喪)을 마친 후 금강산(金剛山)에 입산하여 불법(佛法)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어느 가을 날 한번은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서 어떤 노승을 만나 여러 가지 철학적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여러 문답 끝에 지은이가 질문하기를,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고기가 연못에서 뛰는 것은 색(色)입니까, 공(空)입니까?”했다. “솔개가 하늘을 날아 이르고 고기가 연못에 뛴다”는 말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인데, 『중용(中庸)』 및 후세의 유학자들은 이 시를 도(道)의 본체가 천지간에 나타난 모습을 형용하는 시로 해석한다. 그리고 색은 존재를, 공은 그 존재가 실체가 없음을 지적해주는 불교용어이다.

이에 노승이 “이는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곧 진여본체(眞如本體)인데, 어찌 이 시로서 비유할 수 있겠소”라 했다. 이에 지은이는 “유가(儒家)에서는 묘한 도를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데, 불교의 도는 문자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군요”라는 말로 허를 찔렀다. 즉 노승이 색도 공도 아닌 궁극적 경지를 ‘진여본체’로 표현을 해버렸으니, 불교의 궁극적 경지는 문자로 표현이 가능할 만큼 낮다는 뜻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노승이 말하기를, “그대는 평범한 유생(儒生)이 아니니, 나를 위해 ‘솔개가 날고 고기가 뛴다’는 글의 의미를 시로써 해석을 해주시오”라 하기에 이른다. 이 시는 이런 배경 위에 지어진 것이다.
지은이는 시를 통해 천지간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은 도의 본체가 드러난 것으로서, 그 경지는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니기에 언어문자로는 드러낼 수 없다고 읊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석양에 홀로선 나그네로 형용함으로서, 시속에 사색적 분위기를 한껏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철학박사·고전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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