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네티즌들의 공분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본다

저녁 약속이 있거나 전날 술 때문에 사무실에 차를 두고 집에 왔을 때, 버스를 타고 출근하곤 한다.대전 갈마동에서 선화동까지 30여 분 걸리는 거리다.버스 타는 날 대부분은 몸이 피곤한 상태라 자리에 앉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때문에 자리가 나지 않을까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데, 운 좋게 한 자리 꿰차기도 한다.그런데 불편함은 바로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생긴다.할아버지나 할머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버스에 탈 경우, 일어서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자리를 양보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에 들어가는 것이다.피곤해서이기도 하지만, 좌석에 앉으면 일단 눈을 감는다.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실눈을 뜨고 자리를 양보해야 할 만한 사람들이 타는지 살핀다.하지만 정작 어르신들이 승차했을 때 엉덩이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누군가 유난 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면 어쩌지, 아직 자리를 양보 받을 나이는 아니라고 말하면 어쩌나….짧은 순간 오만 생각을 하다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시간적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그리곤 ‘그래, 어쩔 수 없었잖아’라며 자위한다.유치찬란한 이야기이지만, 실제가 그렇다.주변을 살펴도 자리를 양보하는 예전의 그 풍경들은 찾아보기 어렵다.어르신들도 그런 상황이 익숙해서인지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자리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어차피 양보 받지 못 할 거라면 눈총이라도 받지 말자는 듯한 느낌이다.버스를 탈 때면 항상 마음이 불편한 이유다.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에는 1주일에 한 번씩 폐지를 수거해 가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다.할아버지는 150㎝의 키에 몸무게는 50㎏가 안돼 보인다. 허리는 90도로 굽은 데다 걸음도 불편하다.퀭한 눈은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것만 같다.그런 노구로 어떻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까지 들 정도다.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매주 빼놓지 않고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할아버지는 폐지를 3층에서 1층까지 가져가는데, 끈으로 묶은 다음 어깨에 짊어지고 한 계단씩 힘겹게 내려간다.기회가 닿을 때 할아버지의 폐지를 들어다 드리곤 하는데,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그렇기에 자주 도와드려야지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건 할아버지의 일상이라는 생각을 하며 외면하는 경우가 상당하다.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 “더 내놓을 것(폐지) 없어요?”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지난 17일 ‘경X대 패륜녀’ 이야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여대생이 청소아주머니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했다는 것이다.‘네티즌 수사대’는 즉각 진위 파악에 나서는 한편, 실존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여대생에 대해 분노의 댓글을 날리며, 관련자 찾기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경X대’는 하루 종일 포털사이트 검색 1위를 달렸다.‘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행위에 대한 공분을 보며 아직은 우리 사회에 윤리적 가치가 죽지 않았구나 옅은 미소를 지어본다.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든 노인을 외면하는, ‘소극적 패륜’을 저지르는 내가 ‘경X대 패륜녀’의 ‘적극적 패륜’에 대해 손가락질 하는 것이 마땅한지도 곱씹어 본다.전진식(전 충청투데이 기자, 충남도청 공보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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