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벗 율곡에 대한 그리움

-有僧指詩軸來謁(유승시축래알), 軸中有栗谷詩(축중유율곡시)-
知音已去朱絃絶(지음이거주현절)하니,
山月孤來溪水悲(산월고래계수비)를.
偶與老僧尋舊話(우여노승심구화)하니,
天涯垂淚獨躕踟(천애수루독주지)를.
-어떤 스님이 시집을 갖고 왔는데, 시집에 율곡(栗谷)의 시가 있었다.-
지음(知音)이 이미 죽었기에 거문고 줄을 끊었는데,
산 위의 달이 혼자만 찾아오니 시냇물이 슬퍼하네.
우연히 노승과 함께 옛날 지은 시를 살펴보니,
하늘 한 귀퉁이에서 눈물을 뿌리며 홀로 머뭇거리네.

◆ 지은이 성혼(成渾): 중종 30년~선조 31년 사이의 학자.
이 시는 죽은 벗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감동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지은이는 율곡(栗谷) 이이(李珥)보다 한 살 연상인데, 일찍이 지은이는 이황(李滉)의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율곡은 기대승(奇大升)의 기발설(氣發說)을 지지하면서, 9통의 편지로 토론을 벌였었다. 비록 양측의 학설은 달랐지만,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또 아꼈었다. 그러기에 지은이는 율곡을 두고 '지음(知音)'이라 칭한 것이다.

지음은 원래 종자기(鐘子期)가 백아(伯牙)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다는 데서 나온 단어이다. 종자기가 먼저 죽자 백아는 자기를 알아줄 이가 없어졌다 하여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지은이가 일찍 세상을 뜬 율곡을 종자기로 비유했다는 것은 율곡의 죽음이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임을 의미한다.

율곡의 죽음을 겨우 잊었는가 했더니, 마침 객승(客僧)이 가져온 시집(詩集) 속에 율곡의 시가 실려있었다. 그 시가 도화선이 되어 다시 율곡에 대한 그리움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없이 그립지만 다시 볼 수 없다면, 그 절망감이야 어찌 필설로 다 형용을 하겠는가.

지은이는 한없는 슬픔을 제3구에서 눈앞의 자연물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山月孤來溪水悲(산월고래계수비)’, 즉 ‘산 위의 달이 혼자만 찾아오니 시냇물이 슬퍼하네’라 읊은 것이다. 벗을 잃고 혼자만 찾아와 얼굴을 비추자 시냇물이 슬피 울며 흐른다고 표현한 것이다. 슬픔을 절묘하게 드러낸 구절이라 하겠다. 그리고 끝 구절에서 ‘天涯垂淚獨躕踟(천애수루독주지)’, 즉 ‘하늘 한 귀퉁이에서 눈물을 뿌리며 홀로 머뭇거리네’라 하여, 남은 자의 슬픔을 회화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참된 우정은 그 어떤 정 못지 않게 깊은 그리움을 동반할 수 있는 것임을 지은이의 이 시에서 분명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의 사귐에서 얻은 흥취

-次環碧堂韻(차환벽당운)-
一道飛泉兩岸間(일도비천양안간)한데,
採菱歌起蓼花灣(채릉가기료화만)을.
山翁醉倒溪邊石(산옹취도계변석)하니,
不管沙鷗自往還(불관사구자왕환)을.
-환벽당(環碧堂)의 운자를 빌려-
한줄기 폭포수 양 언덕 사이에 떨어지는데,
여뀌꽃 핀 물굽이엔 연밥 따는 노래 들려오네.
산 속 늙은이 술에 취해 시냇가 바위에 누웠으니,
갈매기들 이에 상관 않고 제멋대로 오락가락.

◆지은이 정철(鄭澈) : 중종 31년에서 선조 21년 사이의 학자.
이 시는 환벽당(環碧堂)이란 정자에서 한가한 정취를 읊은 시이다.
지은이는 호가 송강(松江)으로, 김인후(金麟厚)·기대승(奇大升)·임억령(林億齡)·송순(宋純)에게 배웠는데, 문학 방면에서 대성을 하였다.

환벽당은 광주광역시 충효동에 소재하고 있는데, 김윤제(金允悌)가 지었다. 당시 환벽당 주위에는 배롱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아래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푸른 못이 있어, 선경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지은이의 가사(歌辭) 작품인 '성산별곡(星山別曲)' 중에 “짝 맞은 솔란 낚시터에 세워두고, 그 아래 배를 띄워 갈대로 더져두니, 홍료화(紅蓼花) 백빈주(白蘋洲) 어느 사이 지나관대, 환벽당 용 못이 뱃머리에 닿아세라”하여 환벽당이 등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환벽당에 있는 시의 운자를 빌려 지은 시이다. 제1구에서는 한줄기 맑고 힘차게 흐르는 폭포를 등장시켜 환벽당을 감싸고 있는 전경을 시각적으로 그려내었고, 제2구에서는 여뀌꽃 붉게 핀 못에서 연밥 따는 노래 소리를 지적함으로서 환벽당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청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3, 4구에서는 산중의 노인과 모래 가의 갈매기를 등장시켜 자득(自得)의 경지를 읊고 있다. 즉 산 중의 노인이 술에 취해 물가의 바위 위에서 마음대로 잠을 자는데, 갈매기는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자연의 품에 안기어 만물과 합일을 이룬 경지를 읊은 작품이다. 그래서 주로 자연과의 사귐에서 얻은 흥취를 읊은 그의 많은 가사 작품들과 정서의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하겠다.

<철학박사·고전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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