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고전번역가>

-採蓮曲次大同樓船韻(채련곡차대동루선운)-
蓮葉參差蓮子多(연엽참치연자다)한데,
蓮花相間女娘歌(연화상간여낭가)를.
歸時約伴橫塘口(귀시약반횡당구)하야
辛苦移舟逆上波(신고이주역상파)를.

-대동루(大同樓) 현판의 운자를 빌려 지은 채련곡(採蓮曲)-
울쑥불쑥한 연잎에 연밥도 많고 많아,
연꽃을 사이에 두고 아가씨가 노래하네.
돌아올 때 횡당(橫塘) 어구에서 동반하자고 약속했기에
힘을 다해 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 올라가네.

◆지은이 이달(李達):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호는 손곡(蓀谷)이다.
이 시는 연꽃 핀 물 위에서 일어난 남녀의 연정을, 은근하면서도 자상하게 읊은 작품이다.
지은이는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린 시인이다. 이들은 송시(宋詩)를 따르는 그 시절의 시풍을 배격하고, 당시(唐詩)풍의 시를 짓기를 좋아했다.

이 시가 지어진 배경은 1580년 최경창이 대동찰방(大同察訪)이 되었는데, 지은이와 서익(徐益)이 함께 대동강 부벽루(浮碧樓)에서 놀게 되었다. 부벽루 현판에는 정지상(鄭知常)의 그 유명한 '雨歇長堤草色多(우흘장제초색다)', 즉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이 짙은데'로 시작하는 절구가 있었다. 최경창이 정지상의 이 시운을 빌려 시를 짓자고 제안했고, 서익은 제목을 ‘채련곡(採蓮曲)’이라 하자고 했다. 그래서 이 시를 짓게 되었는데, 이때 지은이는 이미 70대에 노인이 되어 있었다.
‘채련곡’은 연밥을 따는 가운데 일어나는 남녀의 연정을 주제로 하는 악부체(樂府體)의 시인데, 당나라 시인들이 읊은 적이 있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울쑥불쑥한 연잎들 속에 연밥이 많이 달려있는데,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며 연밥을 따고 있는 광경을 읊어 흥을 일으키고 있다. 3, 4구에서는 아가씨와 정을 나누는 총각의 존재를 은연중에 등장시키고 있다. 총각은 귀가할 때, 연밥 따는 그 아가씨와 횡당(橫塘) 어구에서 서로 만나기로 했기에, 그 약속을 지키려 물길을 거슬러 힘겹게 배를 저어 간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힘껏 노를 젓는 총각의 심리를 그대로 느껴지게 한다.

지은이는 이미 노인이었지만 청춘남녀들의 연정을 깊이 있게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시정에는 나이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 법인가. 이 시는 뒷날 허균(許筠)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이 되었다.

자연의 현상 통해 세속화를 경계

-題二養亭壁(제이양정벽)-
谷鳥時時聞一箇(곡조시시문일개)한데,
匡床寂寂散群書(광상적적산군서)를.
可憐白鶴臺前水(가련백학대전수)는
纔出山門便帶淤(재출산문편대어)를.

-이양정(二養亭) 벽에 짓다-
골짜기의 새는 때때로 한 번씩 지저귀는데,
너른 평상에는 고요하여 책들만 흩어져 있네.
애석하구나, 백학대(白鶴臺) 앞의 저 물결은
산문을 막 벗어나자 흙탕물과 섞이나니.

◆지은이 박순(朴淳): 중종 18년에서 선조 22년 사이의 학자.
이 시는 백학대(白鶴臺)란 이름을 가진 바위 앞에 흐르는 물을 통하여 맑음을 지키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다.
지은이는 서경덕(徐敬德)에게서 학문을 이루었다. 후에 이황(李滉)을 따랐으며, 이이(李珥)와 성혼(成渾)과도 절친하게 지냈었다. 지은이는 인품이 고매했으며, 성리학과 글씨와 당풍(唐風)의 시에도 능통하였다.
지은이는 15년 간 영의정(領議政)의 자리에 있었는데, 1586년 8월 이이가 탄핵을 받자 이이를 옹호하다가 지은이 자신도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게 되었다. 이에 지은이는 벼슬을 내어놓고 영평(永平)으로 내려와 은거했다. 이 시는 영평에 은거할 때 지어진 작품이다.

제1, 2구에서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읊고 있다. 골짜기의 새들만 간혹 지저귈 뿐 인적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적적하기 이를 데 없는 평상에는 보던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여기서 적적함은 자신의 처지가 한가함을 말함이요, 책이 흩어져 있음은 마음이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말이다. 지은이는 이미 한자연 속에 동화되어 있는 것이다.

제3, 4구에서는 자연계의 현상을 통하여 선비가 경계해야 될 바를 읊고 있다. 산중에 세워진 백학대라는 바위 앞에 흐르는 저 물은 지금은 맑게 흐르지만, 산문(山門) 밖으로 나간다면 금새 탁류에 흐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산문의 안에서의 맑은 모습을 산문 밖에 나간다 해도 물들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시는 자연 세계로의 동화 및 세속화를 경계하는 훈계를 읊은 작품으로, 지은이의 인품과 시재(詩才)를 함께 엿볼 수 있겠다. <철학박사·고전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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